요양병원의 아침은 늘 분주하다. 맞교대로 출근하는 요양보호사와 퇴근하는 요양보호사는 인수인계를 한 후 한쪽은 집으로 가고, 출근요양보호사는 환자들의 특이상황이 없는지 살핀다. 중환자실이라 환자들은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식 없이 누워있는 환자들도 변함없이 침대를 지키고 있다. 말하는 환자가 없으니 조용하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고 한 모금 입에 홀짝이는 순간 침대에서 고개를 반쯤 들고 손짓을 하는 k할아버지와 눈길이 마주쳤다. 목에 삽관을 하고 있어서 말을 하면 삽관 사이로 휘파람 소리가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나마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유일한 환자다. 옆으로 다가가자 그는 간절하게 무슨 말을 하지만 절개한 기도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가 웅웅 거릴 뿐 무슨 말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자 한 손으로 이마에서 턱 있는데 까지 쓸어내렸다 올렸다 를 반복했다. 세안해 달라는 표시다. 아침에 세수를 했지만 다시 해달라고 한다.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자 또다시 말을 해도 알아들을 방법이 없다. 입모양을 가만히 보니 “대가리” 한다. 어쩜 그 소리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제대로 표현했다. 머리 감겨달라고 한 말이라는 걸 겨우 알았다.
3년 넘게 투병생활하면서 치매까지 왔으니 가족이나 환자본인도 많이 지쳤으리라. 몸이 아파서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폐암 3기 진단이 떨어졌다. 언젠가 그의 아들이 말하기를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서 암수술을 받았지만 입원 중에 높은 혈압이 잡히지 않고 갑자기 뇌경색이 와서 기약 없는 병원생활을 하게 됐다는 거였다. 신참의사가 수술을 집도하고 치밀한 준비 없이 한 수술이라 의료사고라고 말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입원환자의 병원생활은 좁은 공간에서의 밀폐된 생활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시간과 날짜의 개념도 없고 계절감각도 없다. 때로는 밤낮구별이 제대로 안될 때도 있다. K할아버지도 만찬가지다. 지금이 무슨 계절이냐고 물으면 우리들이 입은 옷차림을 보고 대답한다. 환자의 삽관한 목에 석션팁을 넣어 가래를 뽑아내고 음식물은 코에 삽입한 레빈튜브를 통해서 영양을 섭취한다. 몇 년을 병원 침대에서 누워있었으니 팔다리는 굳어서 펴지지 않아 항상 다리를 ㄱ자로 세워놓는다. 섬망 증세 때문인지 환상과 환청에 시달린 것 같기도 했다. 이틀씩 잠을 안 자고 병실천장을 보면서 멍한 눈으로 뭐가 보이는 듯 허공에 손을 휘젓곤 했다. 틈만 나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왜 그러냐고 하면 무서우니 어디 가지 말고 자기 곁에 있으란다. 퇴근시간이 되어 옷을 갈아입으면 가지 말라고 손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때로는 퇴근하는 나를 따라가겠다고 하기도 한다.
중환자실이란 곳은 환자가 갑자기 세상 떠나는 돌발사건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노인들은 면역력이 약해서 멀쩡하다가도 미처 임종실에 못 가고 폐렴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는 환자들이다. 그들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두려움에 안절부절못한다. 임종이 가까우면 보호자들에게 연락해서 임종을 지키게 하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무더기로 나타나는데 그럴 때일수록 불안증세는 더 심해진다. 내가 있던 중환자실에서 가장 불안해 한분이 바로 k할아버지다.
그날도 병실에 들어오자 손으로 나를 불렀다.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 하자 종이와 펜을 주면서 글씨를 쓰라고 했더니 “지금 죽고 있는가?”라고 써서 나에게 줬다. 절대로 아니라고 손을 저었더니 옆 침대환자 보호자들이 무슨 일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냐는 눈빛으로 묻는 표정이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임종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로 생각한 모양이다. 옆 침대 할아버지 친척들이 문병 왔다고 말하자 안심된 표정이다. 욕심이 많아서 내가 다른 환자 옆에 있으면 눈을 흘기며 자기 옆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K할아버지 옆 침대 환자보호자인 할머니가 날마다 방문한 게 싫은지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오면 눈을 흘기며 “가”를 연신한다. 집에 가라는 표현이다. 샘이 난 모양이다. 아무리 가라고 해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오는 할머니가 싫은지 할머니만 보면 침대에서 떨어지겠다며 침대 난간에 성한 다리를 걸쳐서 항의 표시를 곧 잘했다. 기다리는 가족들은 오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아버지 옆에서 손잡고 쓰다듬는 모습을 보면서 씩씩거린다. 나를 향해 오라는 손짓을 하기에 갔더니 할머니를 손으로 가리키며 문밖으로 내 보내라고 복도 쪽으로 손가락을 돌렸다.
몇 년씩을 병실에서 생활하다 보니 집이 그리운지 집에 가겠다고 데려다주라고 졸랐다. 병원에 입원한 지 몇 년 됐는지도 나이가 몇 인 지도 모른다. 나이를 모를 때는 무슨 띠냐고 물으면 “토끼띠”하고 대답한다. 내가 “산토끼 띠죠?” 하면 “집토끼”하면서 눈을 흘기곤 한다. 나는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는 손을 머리 위에 하트 모양을 만들어 인사를 한다. 그럴 때마다 k 할아버지는 성한 왼쪽 팔을 들어서 반쪽 하트를 만들어 화답을 했다. 옆 병실 요양사가 병실에 들어서면서 두 팔을 머리 위에 올려서 하트를 만들아 보이자 못 본척한다. 다시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반복했더니 한 손을 들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한쪽 팔로 반쪽 하트를 만들더니 손을 좌우로 흔들며 가라고 손을 휘저었다. 사랑하지 않으니 빨리 가라는 표현이다. 옆방요양사가 머리 위에 만드는 하트를 k할아버지에는 남녀 간의 사랑의 표시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삶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기약 없는 병원 생활로 인생의 절벽에선 중환자실의 환자들. 그들도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내일을 향한 희망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