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씨가 가늘게 눈을 뜨고 침대 위에서 한쪽으로 몸을 돌린다. 옆 침대 선애할머니에게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조용히좀 하시라요. 시끄러워서 못 살겠음” 선애할머니는 상대 없이 혼자 말을 주고받는다. 평소 누구와 같이 말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식사 잘 했냐고 물으면 고개만 끄덕하고 가끔 물병을 달라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 침대위로 올려달라는 말을 할 정도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정도다. 치매가 있어도 어느 정도 판별력은 가지고 있다. 밤잠이 오지 않으면 혼자 무슨 말을 하는지 웅얼거린다.
정아씨는 오십대의 비교적 젊은 환자다. 바로 옆 침대 선애할머니 목소리만 들리면 소리부터 지른다. “늙은이가 시끄럽게 해서 못 살겠음 조용히 못 하겠음 이 미친 늙은이야” "엄마뻘 되는 분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되나요? 예의를 지켜야지 이런 무례한 말이 어디 있어요.” 나이가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대도 마구 대하는 그녀를 달래보아도 그녀의 거친 입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코를 골며 자다가도 선애할머니의 목소리만 들리면 소리부터 지른다. 밤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면 무슨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간호사가 병실로 뛰어 들어오기도 한다. 그녀의 막말은 제어하기 힘들다. 언젠가 선애할머니도 가족이 있는데 만약 이런 장면을 자식들이 본다고 생각해 보라며 도가 지나치다고 나무랐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돈 벌러 여기까지 와서 일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내 돈 내고 있는 곳에서 말도 못 하고 사냐며 항의했다. 돈 내고 있으니 관섭하지 말라는 그녀의 항변이다. 다 똑같은 입장인데 나이 많은 분한테 함부로 대하는 게 좋지 않게 보여서 한 말이니 말 좀 주의하라고 했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젊은 여자가 고생하는 게 안타까워서 되도록 귀에 거슬린 말은 안 하려 했다. 빨리 치료해서 다시 일했으면 좋겠다고 위로해 주는 요양보호사들에게 가끔 막말을 해대기도 했다. 좋게 대하는 것도 상대적인데 스스로 적을 만드는 그녀의 언행을 요양보호사들이 기피하려 한다.
그녀는 연변에서 돈 벌려고 한국에 입국했다. 열심히 일 했지만 자기 몸을 너무 혹사시킨 결과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피나는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빨리 일어나야 다시 일할 수 있는데 병의 속성상 빠른 치료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때론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아들과 함께 나와서 아들은 중국관광객들을 상대로 관광 안내원으로 일하면서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고 있다.
잊을만하면 선애할머니의 독백이 이어졌다. “이 미친 늙은이 조용히 하라 했지?” “듣기 싫으면 듣지 마.” 누구와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던 선애할머니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린다. “저 늙은이 이방에서 떠들지 말고 다른 층으로 내보내버려” “누구 마음대로 보내냐? 니가 다른 방으로 가면 되지” 혼자 중얼거리다가도 정아씨가 소리 지르면 뚝 그치던 중얼거림이 이번에도 생각지도 못하게 반격으로 되받아친다. “조용히 해라” “너 나이 몇 살이냐?” 한참 젊은 여자가 자기에게 막 대하는 모습에 예의 없다는 뜻으로 나이를 묻는다. 이번에는 같이 입씨름을 하기 시작한다. “내 나이 구십이다.” “구십이나 먹었으면 죽을 때가 됐는데 죽지도 않고 무슨 잔소리를 그렇게 하냐? 남의 일에 참견 말고 죽기나 해라”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평소 말을 안 하고 참았던 것이다. 젊은 여자가 나이를 구십이라고 한 말에 기가 찬 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죽으라고 맞장구를 치자 정아씨가 꼬리를 내린다. 대화가 불가능할 거라는 예단과 달리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대꾸하는 선애할머니의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던 할머니는 가끔 잠꼬대를 하면서 불만을 터트린다. “그래 니 신발만 사 왔냐? 나도 신발이 필요하니 내 것도 사와라” 자면서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이 들린다. 자식들에게 할 말은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노인의 나이 칠십 대면 건강한 사람은 경제활동도 가능한 나이다. 가끔 물리치료 보내려고 침대 위에서 휠체어로 옮기려 하면 주먹을 휘둘리려 한 적도 있다. 뭘 몰라서기보다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을 물리치료 고통에서 포기하려는 마음이 폭력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잃어버린 자신의 삶이 허무한지 입을 닫고 대화자체를 하지 않았던 선애할머니의 우울했던 날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화가 불가능할 거라고 예단했던 나는 판단할 만한 사고력을 지닌 할머니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할머니는 오늘도 무슨 소리인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철저히 혼자인 할머니의 일상이 침대 위에서 되풀이된다. 정아 씨가 뱉어낸 비상식적인 언어에 몰라서 말 안 한 것이 아니라 같이 부딪쳐 언쟁하는 것이 싫었던 속마음이 드러났다. 멀쩡히 대화가 가능한 할머니가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린 독백은 주변 환경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다. 따지고 보면 고향을 등지고 돈 벌러 와서 뇌졸중으로 반쪽마비에 꿈이 사라져 간 정아씨나, 젊은 날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희미해져 가는 기억력을 붙들고 자식들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날마다 가상세계에서 아들과 대화하듯 연극배우처럼 독백하는 할머니의 행복한 생활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가족을 보고 싶은 할머니는 마음속에서 아들과 혼자 대화를 나눈다.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그리운 자녀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침대커튼을 쳐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