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에 작은 거품을 올리고 있는 라떼가 먹음직스럽게 향을 뿜어내고 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있기에, 평소 커피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라떼향의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바리스타가 뽑아낸 커피가 아니라도 집안에서 작은방 창가에 앉아서 미풍에 조심스럽게 흔드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것은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내 생활 속에서 함께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얼마 전에 j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북어찜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헤어지려 할 때 j가 커피 한잔 마시고 가자고 했다. 밖에서 외식해도 식당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식사 후에 입가심으로 커피 한잔하는 정도지 굳이 커피전문점까지 가서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그 많던 커피전문점은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 앱에 있는 ‘길 찾기’를 통해서 길을 안내하는 스마트폰이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사람이 기계를 부리는 게 아니라 기계가 가르쳐 준 대로 기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다. 남편에게 동서남북도 모르는 길치라는 심한 말을 듣고도 방향을 몰라서 목적지 못 찾아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고 큰소리치지만 나 같은 길치에겐 스마트폰은 퍽 고마운 존재다.
커피전문점매장 안에 들어서자 젊은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다. 꽉 찬 홀 안이 독서실을 연상케 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과제물을 하는지 손이 노트북 자판기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더러는 취업준비생인지, 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노트북을 앞에 놓고 두 손을 열심히 움직인다. 찻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생경한 풍경이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노트북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스마트폰을 보며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다. 커피전문점인지 독서실인지 분간이 안 된다. 앉아서 기다리면 주문한 커피가 나온다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얼마 후에 스마트폰의 문자 알림이 뜨자 카운터 쪽으로 가더니 1회용 컵에 담긴 컵 두 개를 들고 왔다. 차가운 커피위에 생크림을 얹어서 마시기 부드러운 커피다.
언젠가 동창 친구들과 만나서 점심 먹고 난 후 내가 커피 사겠다며 커피전문점에 갔다. 자리에 앉아있어도 주문받으러 오지 않아서 사람이 들어온 것 보지 못 했나 하고 카운터 쪽을 힐끔 봤다. 카운터에 여자가 서 있다. 먼저 주문하고 계산하면 커피가 나올 거라고 친구가 말했다. 옛날 다방에서 주문받아가고 나온 커피 마신 후에 나갈 때 계산하던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에 밀려 나게 돼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딸과 소통이 잦은 j는 신세대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이야기했지만 작은 소리라도 작업하는 그들 귀에는 소리 공해로 들릴 텐데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인내도 알아줄 만하다. 요즘은 시에서 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머지않은 곳에 있는데도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다. 한참을 이야기하며 주변을 둘러봐도 선 듯 자리를 비우고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조용하고 눈치 볼 필요 없는 도서관을 놔두고 굳이 영업하는 장소에 앉아있는 그들은 작업이 제대로 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생각에 몰두하거나 컴퓨터작업을 할 때 부스럭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는 소음공해에 익숙한 그들이 부럽다. 글을 쓰려 해도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생각이 모아진다. 글을 쓰거나 정리할 때는 혼자 있는 시간만이 가능하다. 집안에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이상한 건지 주변의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곳에서도 잘 적응하는 젊은 층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많은 것 같다.
집 앞에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 장애인단체에서 도서관 내에서 일주일에 한번 목요일에 카페를 연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로비로 나와서 부드러운 커피 한잔으로 피로를 풀며 앉아있다. 커피전문점에 앉아서 오고 가는 손님들 속에서 책이나 노트북을 펼치고 있는 학생과 취업준비생, 아늑한 로비에서 한잔의 커피로 여유를 즐기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취업준비생과 만남의 공간으로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은 젊은 세대와의 사고의 벽이 높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