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추억 하나

by 샤론의 꽃


남편은 집을 나섰다. 오후에는 딸 집으로 출근한다. 딸이 일을 하면서부터 초등학교 1학년인 외손녀를 케어하기 위해서다. 손녀는 학교수업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또 거기서 태권도 도장으로 피아노학원으로 간다. 학원에서 이동할 때면 데리러 가서 데려오고 학원 끝나면 놀이터로 직행한다. 또래아이들끼리 모여서 조잘조잘 노는 모습이 자유 시간을 마음껏 즐기는 아이들 모습은 병아리들처럼 귀엽기만 하다. 학원수업 끝나고 손녀에게서 가방을 받아 든 순간 아이는 뛰기 시작했다. 마치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냥 무리 지어 뛰어간다. 놓칠까 봐 뒤따라서 쫓아가지만 역부족이다. 아이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남편과 함께 숨을 헐떡이며 따라갔지만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다. 놀이터마다 찾으러 다녀도 어디 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놀이터 벤치에서 쉬고 있을 때 손녀친구가 헐떡이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할아버지, 세희가 높이 올라간 놀이기구에서 못 내려오고 울고 있어요.” 가서 보니 놀이기구 층층대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못하고 떨어질 것 같은지 울고 있었다. 안아서 내려주고 아이들 노는 세계를 지켜보았다. 거칠 것 없이 놀고 있는 활발한 아이들 모습이 친진난만하다. 노는 모습이 톡 톡 튀는 탁구공 같다. 모처럼 맑은 날씨는 하늘에 하얀 솜털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옛날의 추억을 소환했다.


초등학교 삼 학년 겨울날이었다. 하교시간에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짝꿍을 따라서 옆 마을로 가고 있었다. 항상 같이 하교하던 친구 미자에게 옆 마을 작은엄마 집에 가서 자고 내일 학교로 간다고 우리 집에 가서 꼭 좀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짝꿍정희는 작은엄마 옆집에 살던 애였다. 작은아버지는 그해 가을에 옆 마을로 장가를 들었다. 결혼식을 치른 후 일 년 동안 처가에서 살고난 후 분가하면 어떻겠냐며 작은엄마 친정에서 우리 집에 요청을 했다. 큰딸을 시집보내고 나자 몹시 허전한지 딸 사위와 같이 있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마당에서 신랑은 사모관대 입고 신부는 족두리 쓰고 절하는 신부모습이 정말 예뻤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저렇게 예쁠까 싶었다. 예쁜 작은엄마는 우리 집에서 살지 않고 친정에서 사는지 명절 때는 떡과 과일을 잔뜩 싸서 온 후 하룻밤 자고 다시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남의 집 새색시는 시집오면 같이 살면서 누룽지도 긁어주고 고구마도 아궁이에다 구워주던데 얼굴만 슬쩍 비치고 가버린 작은 엄마가 야속했다. “느그 작은엄마 집에 안 갈래?” 정희는 엉뚱한 제안을 했다. 정희는 작은엄마 친정바로옆집에 사는 애였다. 정희를 따라서 보고 싶은 작은엄마 집으로 향했다. 세찬 겨울 찬바람을 맞고 손은 꽁꽁 얼고 얼굴은 빨갛게 익었다. 작은엄마를 부르자 방안에 있던 작은엄마는 깜짝 놀라며 나를 번쩍 안아주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을 비벼주며 어떻게 왔냐며 물었다. 정희 따라서 작은엄마 얼굴 보려고 왔다고 하자 잘했다며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날 저녁 진수성찬이 차려진 밥상이 들어왔다. 하얀 쌀밥에 구운 생선 한상 가득한 밥상은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풍성했다. 작은엄마네는 부잣집이라 날마다 이렇게 잘 먹고사나 보다 생각했다. 작은아버지가 보리밥만 먹는 우리 집에서 안 살고 작은엄마 집에서 호강하고 산다고 생각하니 부러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은아버지와 정희 큰오빠가 친구사이라서 그날은 정희오빠 저녁밥 대접하는 날이었다. 철모르는 아이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만 먹고사는 작은엄마 집에서 사는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다음날 집에 갔더니 가족들이 걱정하게 왜 집으로 안 오고 어디 갔냐며 물었다. 아이가 집에 오지 않자 집안 식구들이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해는 지고 아이는 오지 않자 마을을 뒤지고 다녔다. 장난하려고 일부러 숨겨놓고 안 왔다고 한 줄 알고 친구네 집에 가서 두세 번씩 가서 확인하고 오곤 했다.

미자네 집은 우리 집을 거쳐서 산을 넘고 한참을 가야 하는 산속에 사는 아이였다. 춥고 늦을 때는 우리 집에서 나와 같이 자고 학교 가는 날이 많았었다. 그 애의 부모는 학교에서 안 오면 으레 우리 집에서 자고 학교 간 줄 알고 찾지도 않았었다. 내가 작은엄마 집에 갈 때 미자에게 우리 집에 들러서 작은엄마 집에 갔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냥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아침에 미자가 등교하면서 우리 집에 들러서 내가 옆 마을 작은 엄마집에 갔다고 말했다며 하룻밤 지난 후에 소식을 들었단다. 집안 식구들이 많이 놀랐다. 말없이 집에 안 오면 되냐고 나무랐다.


하교 때는 책보자기를 허리에 둘러메고 달려서 집에 온다. 책보자기를 방안에 던져놓고 논바닥으로 향한다. 모여서 고기잡이놀이하고 숨바꼭질하고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해가져도 아이가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저녁밥 먹으라고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내가 집에 안 들어간 날 아이 잊어버렸다고 소동이 일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의 파편이 모자이크 되어 다가온다.


외손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다 보니 몸살이 날 것 같았다. 아이들끼리 노는데 보호자 없이 노는 아이는 없다. 보호자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아이노는 모습을 지킨다. 놀이시간이 끝나면 각각 손을 흔들며 부모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

어두워도 떼 지어 놀다가 손에 묻은 흙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기 집을 찾아가던 내 추억 속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추억이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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