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기위해 요양원문을 열고 나왔다. 흐릿한 아침날씨를 보고도 괜찮겠지 하고 나왔는데 심술궂은 바람이 휘몰아친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여의치 않자 헬스장 나가는 시간대신 출퇴근시간에 걷는 것으로 대신했다. 집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더 걸어야 하는데 중간에 비가 부슬부슬 뿌리고 있다. 출근시간이라 직장인들의 바쁜 발걸음이 부산하다. 말쑥하게 차리고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밤 근무를 끝내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을씨년스런 날씨와 비슷하다. 가는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더니 겉옷을 적시기 시작한다. 집에 가서 샤워하고 자려면 내리는 빗방울을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차분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 내 옆으로 젊은 여자가 바짝 다가와 우산을 받쳐 주었다. 둘이 같이 쓰기에는 작은 우산이었다. 괜찮으니 혼자 쓰고 가라고 했더니
“비 맞으면 감기 걸려요. 지하철역까지 같이 쓰고 가면 돼요”
딸 또래의 젊은 여자는 궂은날 비 맞고 걷는 모습의 여자를 자기 어머니의 모습으로 비쳤을까?
비 오는 날이면 이웃에 살았던 공원에서 푸드트럭으로 장사 하는 경희엄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는 작은 트럭에 떡볶이며 찐 옥수수 핫도그 등을 팔러 다닌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에 자리를 잡고 영업을 하고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들 모이는 곳에는 사연도 많고 이야기꺼리도 많다. 비오는 어느 날, 그녀는 영업을 하지 못 하자 우리 집에 놀러왔다.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면서 그 할머니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니면 세상을 떴는지 비오는 날이면 생각난다고 말했다.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서 노는 사람들과 운동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공원 벤치에 멀거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언제나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홀로 앉아있었다. 차림새로 봐서는 가족이 없거나 영세한 가정의 노인복장은 아니었다. 수심 가득한 모습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쳤다. 장사하는 자기를 유심히 보는 게 아니라 트럭위에 먹음직스런 간식위에 눈길이 멈춰 있었다. ‘아! 배가 고프구나.’ 따뜻한 찐 옥수수 하나를 드시라고 드리자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먹는 모습에 식사나 제대로 하고 사냐고 묻자 그녀는 한숨을 내리쉬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들추었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는 이 없고 무심이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은 듯 묻지도 않은 가정사를 실 꾸러미 풀어놓듯 풀기 시작했다. 눈물을 감추려는 듯 하늘을 쳐다보며 시작한 말은 땅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고해성사하듯 쏟아놓기 시작했다.
50평대의 큰 아파트에서 남편과 둘이 살던 할머니는 어느 날 남편이 세상을 하직하자 홀로 남게 되었다. 그녀는 세상사는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뼈저린 고독이 마음속에 가득 찼다. 가끔 길에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넋 놓고 쳐다보는 날이 많았다. 날마다 먼저 가버린 야속한 남편의 빈자리를 맴도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홀로 사는 외로움과 싸워갈 때 평소 잘 오지 않던 아들며느리가 자주 드나들었다. 외로운 어머니를 위로하는 아들내외가 그나마 고마웠다. 모처럼 한상에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 하는 시간은 세상에 자기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결혼과 함께 부모의 집에서 떠난 아들은 외로움과 함께 동거하는 어머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 아들은 어머니 혼자 큰 집에서 외롭게 살지 말고 어차피 부모를 모셔야 하는 부양의무가 있는 아들과 살림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혼자 큰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 보다는 아들가족이 들어와서 어머니를 모시면 외롭지 않고 삶의 질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들내외하고 같이 살면서 불편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살갑지 않은 며느리의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외로워도 가끔 한번 씩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같이 마음 맞추고 살려면 서로신경 쓰이는 점이 많아지기 때문에 마냥 좋을 것도 없다며 그냥 살던 대로 살자고 했다. 허지만 아들은 혼자 사는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두 집 살림을 합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며느리도 동조했다. 살림을 합치면 손자들과 함께 사는 재미도 있고 외롭지 않을 거라며 거듭된 설득에 자신의 굳은 의지도 어느 순간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과연 아들내외에게 남은 삶을 맡겨도 괜찮을까? 어차피 언젠가는 아들과 한집에서 살 바에는 늙어서 움직이지 못할 때 억지로 떠맡겨지다 시피 아들에게 가는 것 보다는 자기의 의견을 말 할 수 있을 때 아들의 뜻을 받아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살자고 성화를 부리는 아들에게 아들 뜻대로 하겠다고 허락하자 아들은 이삿짐을 싣고 어머니 집으로 들어왔다.
아들은 출근하고 손주들은 학교가고 낮에는 며느리와 단둘이 집안에 남았다. 이미 살아온 생활문화가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이질감과 좁혀지지 않은 거리감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며느리의 불평이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피신 나오듯이 공원벤치에 앉아서 자기의 잘못된 선택을 한탄하고 있었다. 남편과 자기의 손으로 일군 전 재산인 아파트는 아들내외가 차지했다. 아들이 출근한 것을 확인하면 그녀는 공원으로 흘러 들어오듯 공원에서 배회하다 아들퇴근 시간 직전에 집에 들어갔다. 공원주변에 봄꽃이 만발하여도 아름다운 꽃이 져도 느낌에 대한 감동이 없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더디기만 한 할머니는 한여름 공원에서 나무그늘아래 앉아있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면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할머니의 정신적 그늘이 되어 준 것 같은 생각에 경희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의 심리적 지지자가 되어있었다. 곁에 있을 때는 언제나 찐 옥수수를 하나씩 드렸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순식간에 받아먹었다. 어느덧 경희 엄마는 할머니의 삶의 언저리에 다가서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오늘은 왜 안 나오지? 어디가 아픈가 하고 기다려졌다. 어느 날 수척한 모습으로 며칠 만에 나타난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몸이 아파서 집에 있었더니 무슨 미련이 있어서 집안에 있느냐는 며느리의 구박을 듣고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데도 우산을 쓰고 공원에 그 시간 그 자리에 나타났다. 아들 출근시간에 맞춰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나타나던 할머니의 모습이 어느 날부터 공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돈이 아예 없어서 못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재산을 가지고도 재산권행사를 전혀 못하고 아들 며느리에게 얹혀사는 모습이 가슴 아픈 현실이라며 비 내리는 밖을 내다보며 맥없이 말했다. 지금쯤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요양시설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소중한 친구의 행방을 몰라 안타까워 하는 얼굴이었다.
역 지하철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젊은 여자는 예쁜 얼굴만큼 예쁜 마음을 가진 것 같다. 비 맞고 걸어가는 내게 살며시 다가와서 자기 옷자락이 젖는데도 우산을 같이 쓸 줄 아는 아름다운 심성을 가졌다.
공원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는 가족이지만 가족이기를 외면하는 가족 속에서 떠도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비록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살며시 우산을 씌워준 지하철역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갈 곳 없이 공원을 배회한 할머니의 모습을 걱정하던 경희엄마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아직도 비오는 거리를 배회하지는 않는지, 아니면 할아버지 곁으로 갔는지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