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영향권 안에 들었다는 날씨는 음습하게 꾸물거리더니 바람을 타고 온 비가 유리창에 부딪친다. 일기예보와 달리 나뭇가지에 이는 바람이 요란스럽지 않다. 남쪽에서 위력을 떨치는 바람이 올라오는 도중 세력이 약해졌다. 기운이 쇠잔한 노인처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수명이 다했다. 다행이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면 유난스레 시끄럽게 반응하던 어르신들이 깊은 잠속에 빠져있다. 남자 어르신 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칠십대 중반 Y가 옆 침대 C와 둘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다. 무슨 일로 부르냐고 묻자 저녁밥 가져오란다. 저녁 식사했다고 했더니 무슨 소리 하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옆 침대 동료에게
“우리 저녁밥 먹었어요?”
묻는다. 그는 밥 먹은 적 없다고 대답한다. 그들의 세계에서 증인이 나오고 밥 먹지 않은 것이 확인된 순간이다. 우리가 밥 먹지 않았는데 왜 거짓말 하냐며 배고프니 당장 밥이나 가져오란다. C에게 저녁 식사 여부를 재차 물었다. 동료가 안 먹었다고 말하자 밥 주기 싫어서 거짓말까지 한다며 이제는 삿대질까지 하며 밥 가져오라고 난리 친다. 저녁 식사 남기지 않고 맛있게 다 드셨다고 하자 내말이 의심스러운지 다시 C에게 물었다. 저녁밥 안 먹은 게 확실하다고 말한다. 같은 수준의 증인까지 세웠으니 증인의 말이 진실이 된 순간이다.
“밥을 주긴 언제 줬어 에이씨 당장 밥 가져와”
거짓말하지 말라고 둘이서 협공했다. 어차피 진실이 통하지 않은 분들이니 달래는 수밖에 없다.
“주방선생님 퇴근해서 지금은 밥이 없으니 내일 아침에 밥 드릴 테니 그냥 주무세요.”
C가 삿대질하며 밥도 안 주는 X같은 곳이라며 특유의 고음으로 소리 지른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기억을 하면 안 먹었다고 박박 우기지 못하지만 둘이 다 안 먹었다고 생각하니 제때에 밥도 주지 않은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웬일로 비오는날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자다깬 두 분이 말썽을 피운다
언젠가 아침 식사 끝난 후 요양보호사들이 식탁에서 밥 먹는 광경을 보고
“당신들만 먹지 말고 밥 가져와요”
“지금 우리가 너무 배고파서 먼저 먹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빨리 먹고 갖다 드릴게요”
그 순간만 넘어가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감정은 순간순간 변하고 감정 상태는 검열되지 않는다. 진실이 통하지 않은 곳이 요양원 어르신들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그들 세계의 전부이다.
의학발달로 수명은 길어져 백세시대로 들어섰다. 예전에는 팔십 넘으면 장수한다 했지만 대상자들 대부분 구십 넘은 분이 많다. 건강해서 장수하면 축복이지만 무너진 정신세계는 치매로 제대로 분별 못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희미한 과거 속에서 배회하다가 현실을 살고 있는 자신의 남은삶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특히 비가 오거나 날씨가 안 좋은 날은 정도가 심하다. 아들 밥 차려 줘야 한다며 집에 가겠다고 배회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옷을 꺼내 보따리를 싸는 할머니도 있다. 지금 어두워서 집에 가는 차가 없으니 잠자고 내일 밝은 날 같이 가자고 달랜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노인들 삶은 여태 살아온 과거는 흘러간 시냇물에 불과하다. 바다로 흘러간 시냇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잃어버린 현실은 내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와있는지 무엇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지 인지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 나뭇가지에 대롱거리며 버석거리는 마른 낙엽 같은 그들의 삶은 요양원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에서 남은 삶을 살고 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오직 현실만이 존재하는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현실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