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사람이야? 사람이 와도 못 본체하고 고개 숙이고 뭐 하고들 있어? 이런 빌어먹을 년들”
“어르신 왜 그러세요? 일 하느라 못 봤어요. 노염 푸시고 앉으세요.”
“뭐? 못 봤다고? 일하러 왔으면 똑바로 해, 사람이 앞에 있어도 니들 일만 하면 다냐? 에잇 성질나, 오늘 밤에 칵 죽어버려야겠다.”
뚝배기 깨지는 소리로 한바탕 소리를 지르는 강할아버지는 방금 전까지 새로 입소한 할머니하고 얘기하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옆에 서있다. 로비 소파에서 앉아 얘기하던 할머니가 자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혼자 남게 되자 심심했는지 업무일지 작성하는 우리들 앞으로 살며시 왔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자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태세다. 언젠가 자기 눈앞에서 요양보호사끼리 얘기하는 것을 보더니 자기는 안 끼워주고 지들 끼리만 시시덕거리고 정답게 얘기한다고 내 앞으로 오더니 주먹질을 하려했다. 다행히 몸을 피해서 맞지는 않았다. 화가 나면 젊은 환자들에게도 소리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구십 연세인데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젊은이 못지않다. 가끔 젊은 환자들과 말하다가도 수틀리면 삿대질을 하는 것을 몇 번 봤었다.
저녁 식사 끝나고 취침시간이 돼도 로비를 돌아다닌다. 착용한 기저귀가 허리춤에서 흘러내리면 앞에 있는 할머니들이 보건 말건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고 기저귀를 빼서 던져버린다. 놀고있던 할머니들이 기겁하고 도망가기 바쁘다.밤이 늦도록 안 주무시고 이방 저방 기웃거린다. 가끔 할머니들 방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한다. 힘센 남자 요양사가 팔을 잡고 침실로 들어가면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좀 봐라. 또 지랄한다.” 힘으로는 못 버티자 벼락 치듯 소리를 지른다.
한때는 젊은 환자인 A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는 육십 갓 넘은 환자다. 심한 아토피 질환으로 온몸 각질이 벗어지면 침대위건 바닥이건 각질이 하얗게 떨어진다. 1인실에 혼자 머물며 TV시청하는 A방에 밤마다 들어가서 그를 괴롭혔다.
“젊은 놈이 일해서 벌어먹고 살 생각은 안 하고 자빠져서 자기만 하면 되냐? 빨리 일어나 나가서 돈 벌어, 날이면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젊은 환자가 게을러서 놀고 있다고 판단하고 시간만 나면 A의 방을 찾아가서 괴롭혔다. 방문을 잠그고 있으면 게을러빠진 놈이 이제는 문까지 잠그고 잠잔다며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다. 저런 놈은 처음부터 버릇을 잡아놔야 된다며 그의 방에 가서 나가서 일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몸에 밴 생활 태도는 치매가 지배한 몸과 마음을 바꾸어 놓지 못 했다.
설상가상으로 또 한 사람이 A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치매환자 홍식씨였다. A가 언젠가 자기가 해병대 출신이라고 말했다며 로비 소파에 앉아있는 A를 순식간에 발로 걷어찼다. “이런 싸가지 없는놈. 니가 해병대였다고? 니가 어떻게 해병대야. 이새끼 내 마누라하고 바람난 놈이야” 홍식씨는 A를 볼 때 마다 시비를 걸었다. 흥식씨 부인이 가끔 면회 올 때는 사탕종류를 사와서 옆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가기도 한다. 아무래도 상대가 환자들이다보니 비록 몸이 불편하고 치매가 있어도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은 있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며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는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지나가다 A만 눈에 띄면 내마누라하고 바람난 가짜 해병대라며 발길질을 했다. 사실 A는 홍식씨 부인의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한데 한순간에 불륜남이 돼버린 꼴이다. 아직 요양원 구석 침대에 누워 있기에는 젊은 나이다. 경제활동도 못 하고 있는 처지에 몸이 불편한 것은 둘째고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이 더 문제였다. 치매로 세상 분간 못한 할아버지하고 싸울 수도 없고 역시 치매로 과격해진 홍식씨하고 싸울 수도 없다. 우리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강할아버지가 그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밖에 없다. 되도록 홍식씨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조언하는 길밖에 없다. 그의 방에 쫓아다니며 나가서 일하라고 괴롭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들과 어울려 놀면서 부터는 A를 괴롭히는 일을 잊어버렸다. 새로 관심거리가 등장하자 돈 벌지 않고 노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노래강사가 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신청곡을 받겠다고 하자 흥식씨가 나가서 팝송을 부른다.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All for the love of a girl)을 눈을 지그시 감고 흐느끼듯 부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분위기에 취한 듯 허스키한 목소리로 기타반주에 맞춰 호소력 있게 부르는 그는 가슴 저미게 슬픈 멜로디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노래교실이 있을 때마다 한 곡조씩 뽑아내는 그가 경쾌한 노래를 부른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바람을 타고 내리는 비오는 날의 음악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흥식씨였다. 요양보호사들이 환호했다. 그날 박수갈채를 받은 후 흥식씨의 과격함은 완화된 것 같았다. 홍식씨도 A를 보고도 예전처럼 발로 차거나 때리려 하지 않는다. 칭찬은 역시 명약이다
거실 소파에 드러누운 할아버지를 방으로 모시려고 내가 팔을 끌며 할아버지처럼 잘생긴 사람을 아직 못 봤다고 하자 헤벌쭉 웃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방금 전에 죽어버리겠다고 큰소리친 일은 잊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치매 환자들의 수준에 맞춰 생활한다. 그때마다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헷갈린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그들의 정신세계에 이입되어 연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서툰 연기에 빠져든 치매 환자들을 보며 오늘 하루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