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렇게 예쁜 양반들이 많이도 앉아있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 앞에 다가선 강할아버지는 한 사람 한 사람 할머니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스레를 떤다. 90초반의 나이에 검버섯이 얼굴 군데군데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젊어서는 꽤 잘생긴 외모에 돈 잘 버는 멋쟁이였다는 자기 자랑을 하곤 했다. 워커를 밀며 로비를 돌던 현할머니는 씨익 웃으며 재미난 모습을 구경한다며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저 영감 할머니들 앞에서 수작 부리고 있네. 아무튼 재미있는 영감이야. 내가 처음 이 요양원에 입소했을 때 나를 보더니 자기가 뭐 했던 사람인 줄 아느냐고 물어.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래. 고위 공직자인 줄 알았었지. 글쎄 마을 이장했던 사람이라고 으쓱 거리는 거야.”
“어르신, 맞는 말씀이에요. 마을 이장은 아무나 하나요? 어르신은 이장 안 해보셨죠? 남 안한 일 했으니 대단한 거 맞아요.”
한바탕 웃으며 말을 건네자. 현할머니는
“내가 마을 이장은 못했어도 학교 선생 했던 사람이요.”
품위 있고 점잖은 모습을 잃지 않은 현할머니는 과거 교사였다는 신분에 알맞게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다. 목욕 담당자에게 수고했다며 음료수라도 꼭 챙겨주시는 분이다. 어르신들이 주는 간식을 받아먹는 게 내키지 않아 아무리 거절해도 어머니 마음으로 주는 것까지 거절 하냐며 섭섭해 할 땐 도리 없이 받아놓지만,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사서 먹을 수 있는 우리와 처지가 다른 어르신들 간식을 받기란 불편한 마음이다. 오지 않은 자녀들을 기다리는 다른 분처럼 가족을 기다리는 초조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소곳이 성경을 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곱게 늙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할머니들 앞에 서 있는 강할아버지가 나타나자 할머니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비록 몸이 불편하고 기억력장애가 있어도 현실의 문제는 어렴풋이 판단한 할머니들이 불편한 생각이 들어 자리를 뜬다. 닭 쫓는 개 지붕 처다 보듯 할머니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응접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밤이 깊도록 앉아 있다가 앉은 자리에서 생리현상까지 해결까지 하는 일이 허다했다. 앉은자리에 물이 흥건하게 고인 곳 범인은 강할아버지였다. 그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어느 방에 들어가서 말썽 피우는지 찾아다녀야 했다. 가끔 젊은 남자환자 A방에 들어가서 젊은 놈이 집에 가서 벌어먹고 살아야지 언제까지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며 살 거냐고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제발 할아버지 좀 못 들어오게 막아달라며 A는 사회복지과에 와서 항의하곤 했다. A방 앞에서 서성거리는 할아버지에게 방에 가서 주무시라고 아무리 달래도 꿈쩍도 않은 뚝심 많은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팔을 끌면서 일으켜 세우려 해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 발로 걸어다는 것 까지 간섭한다며 화를 벌컥 내곤 하셨다.
“어르신, 팔짱 끼고 같이 걸읍시다.”
일으켜 세우면서 팔짱을 끼자 못 이기는 척 겨우 일어선다.
“팔짱 끼고 걸으면 기분 좋죠?”
“좋고말고 나도 좋고 그쪽도 좋고.”
이성에 대한 관심은 나이하고는 상관없는 것 같다. 생활실 문 앞까지 유인해서 침실로 모시려 해도 방에는 절대로 안 들어가신다며 버틴다. 방 앞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어깨 팔뚝을 손으로 쥐어보더니
“아이구 참 탄탄하니 좋다.”
“어르신, 왜 내 어깨팔뚝 만져요? 그렇게 함부로 만지면 안 돼요.”
“어깨 좀 만진다고 큰일 나나? 여기를 만지면 안 돼지.”
가슴 옆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내 반응을 보기 위해서 어깨를 슬쩍 만지다가 항의하는 나를 보더니 딴청을 피운다.
“함부로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면 큰일 나는 것 알죠?”
“그 가슴은 금덩어리 붙였나?”
느릿한 충청도 말씨에 느긋한 표정으로 가만가만 말 하는 강할아버지는 가끔 한참 아래인 환자들과도 큰 소리로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이놈아, 내가 너보다 나이가 스무 살은 더 먹었다. 어디다 대고 큰 소리냐.”
화장실에서 옆방 젊은 할아버지가 휠체어타고 지나가면서 비키지 않고 뭐 하냐며 소리 지르자. 젊은 환자에게 삿대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불같은 성격의 젊은 할아버지가 나이를 따지기 전에 똑바로 행동하라고 소리치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태세다. 겨우 뜯어말려서 모시고 나왔지만 씩씩 거리는 모습은 몸에 버틸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곧바로 주먹질로 이어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비록 힘없고 늙었지만 빛바랜 과거의 추억을 더듬으며 할머니들 방을 기웃거리는 모습은 본능적인 생존의 욕구가 그의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