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기능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가 아니고 칼로 살베기다
흐르지 않은 물은 썩는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순기능의 역할을 못 한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말을 하지 않은 사람도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한 사람이 있고, 성격상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할 때는 자기표현을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한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은 말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언어전달을 제대로 설득력 있게 하지 못하고 말을 한 후에도 정작 해야 할 핵심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말 잘하는 것도 사람이 가진 재능의 하나이다. 나는 말을 잘하지 않은 편이다. 묻는 말에 대답할 뿐이지 말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다고 재치 있게 말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하는 능력도 없다. 차라리 글로 써서 전달하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쓰면서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고 쓰면서 실수하거나 상대방 마음 상하는 단어는 없나 걸러내기 때문에 부담감이 덜하다. 말로 대화를 하다 보면 중언부언할 때가 있고 전달할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치 혀로 사람의 몸을 벤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라는 말에 대한 속담이 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KBS 아침마당에 강사로 나온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부부로 살면서 신혼초기를 지나면 권태기가 온다. 그건 권태기가 아니라 처음 만났을 때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이 식은 게 아니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성품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는 설명이다.
법정에서 이혼소송조정 신청을 하는 부부 이야기를 했다. 판사 앞에 나온 부인에게 무슨 일로 이혼소송을 했냐고 물었다. 아내는 감자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자가 이혼을 할 만큼 큰 사건이냐며 사건의 개요를 물었다. 아내가 감자를 쪄서 남편에게 설탕과 함께 갖다 주었다. 남편은 소금을 가져오지 왜 설탕을 가져오냐며 아내에게 이상한 식성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아내는 남편의 질책에 이미 기분이 나빴다. 설탕에 먹는 게 뭐가 이상하다며 우리 친정에서는 모두 감자에 설탕 찍어먹는다고 응수했다. 남편은 화가 났다. 왜 찐 감자를 떡도 아닌데 설탕에 먹느냐며 “친정어머니 하는 것 보니까 다 똑같다. 너도 친정에서 그렇게 살았으니 똑같지.” 사람마다 먹는 기호나 식성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생각해 버린 결과다.
순간 아내는 머리가 핑 돌았다. 단순히 감자가 문제가 아니라 평소 남편이 처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해왔기 때문에 접시에 담긴 감자를 보고 무심코 처가를 비하했을 것이다. 여자는 남편이 친정을 비하하거나 비난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빠진다. 남자는 평소 처가에 우호적이지 않은 말을 하면서도 그게 치명적인 실수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그 시간이 넘어가면 잊어버지만 상대에게는 가슴에 못이 박힌다. 싸움 후에는 싸울만한 사건이 없는데 무슨 일로 싸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쌓이고 쌓인 분노가 봇물 터지듯 둑을 넘쳐린 상황판단을 못한 남편은 그까짓 감자 때문에 이혼소송까지 하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자들이 금기해야 할 말이 처가 비하발언이나 비난이다. 아예 살지 않기로 작정을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예의만큼은 지켜줘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행동에 속 좁은 여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금기사항을 건드리고도 깨닫지 못하는 남편의 어리석음의 책임이 더 크다. 평소에 처가를 비난해도 참고 참다 폭발한 아내의 심정을 알았다면 감자이혼 사건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집안에 태산처럼 큰 사건이 터지면 우선 해결부터 해야 하기 때문에 조그만 사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큰 사건이 생기면 부부는 결속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부부싸움의 핵심은 경제력 빈곤이나 신체적 질병보다는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칼을 들고 있으면서도 그게 무기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우禹를 저지르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말은 정보의 전달이기 때문에 사람마음을 감동하게도 하고 화나게도 한다.
남편은 밥을 먹고 난 뒤 “아주 맛있게 먹었네. 고마워”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음식투정을 하지 않고 뭐든 잘 먹는다. 특별한 음식을 해주지도 않지만 그 말을 식사 후에는 꼭 한다. 이제 철들어가는 느낌이다. 하긴 죽을 때까지 철들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저수지 둑이 무너지는 것은 많은 물이 넘쳐서도 무너지지만 조그만 구멍이 생겨도 무심코 놔두면 점점 커져 어느 순간에 제방이 터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구멍을 막던지 물이 흘러나가는 물길을 터놓으면 둑이 무너지는 참변은 막는다. 바로 소통의 기능이다. 물길을 터줌으로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 둑에 구멍이 생겨도 막지 않고 방치한 꼴이다. 남편의 툭툭 던지는 비난을 감수하고 살았던 아내의 심정을 모르는 남편은 애꿎은 감자 때문에 이혼하게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평소 남편의 가리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남편의 인격문제지 감자는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