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의 대머리

완전범죄는 없다

by 샤론의 꽃

“여러분, 내가 이런 말 한다고 혹시 상처받고 일 그만두지는 마세요.”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매달 첫째 월요일 아침이면 원장과 요양보호사들의 미팅이 있다. 다혈질인 원장이 회의석상 앞에 서면 요양보호사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원장과 거리가 가까운 앞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 무슨 말이 나오나 하고 숨 죽여 기다리는 시간에 원장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지만 감이 잡히질 않는다. 오늘도 그는 반짝거리는 대머리를 손으로 스윽 뒤로 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완전히 민둥머리가 된 줄 알았어요.”

순간 요양보호사들은 무슨 말뜻인지 모르고 서로 옆 사람 얼굴만 쳐다보았다. 요양보호사가 근무 중에 실수 한 것을 가지고 말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쩐 일인지 알 듯 모를 듯 그의 얼굴에는 웃음을 참으려는 표정이 담겨있다.

“여러분들 노고는 잘 압니다. 여러분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때론 내가 여러분들한테 얘기치 못한 실수를 하면서도 내가 어떤 잘못된 행동 이라는 걸 깨닫지 못 할 때가 많아요. 되도록 여러분들과 오래 함께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합니다.”



요양원에 족욕기가 있다. 오랜 침대생활로 움직이지 못한 환자들에게 따듯한 물로 족욕을 해주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찌뿌둥한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 때문에 모두들 좋아한다. 족욕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이야 좋지만 족욕통을 씻고 말려서 소독하는 과정은 잔일이 많고 번거로워서 족욕 담당 당번은 골치 아픈 작업으로 생각한다.

소규모 직장은 어느 곳이든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다. 언행에 제약이 많고 되도록 그들과 마찰을 일으킬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해도 때론 예기치 않게 행동의 제약을 벗어난 경우도 있다. 문제가 된 족욕 사건도 환자들 족욕이 다 끝난 시점에 원장이 들어오면서 벌어졌다. 그는 족욕 하겠다며 따뜻한 물 받아 오라고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에 족욕 물을 받아 오라고 하는 원장의 지시를 거부 할 수는 없는 일. 요양보호사 N은 족욕통에 물을 채워오면서 입이 주먹만큼 나왔다. 대놓고 불평은 못하고 속이 부글거렸다. 원장은 의자에 앉아서 족욕기에 발을 담그고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있는 모습이 천하태평이다. 아무리 오너와 고용인의 관계라고 하지만 바쁘게 일하는 시간에 족욕물까지 바치려니 화가 날 만도했다. 불만은 드디어 원장 등 뒤로 가서 정수리에 대고 주먹을 빙빙 돌리며 주먹질을 하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그 때 건너편에 있던 동료 요양보호사들은 구석에 숨어서 배를 잡고 소리죽여 웃고 있었다. 대머리 위에서 주먹질을 몇 번 하고 나자 부글거리던 마음이 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족욕은 자기 집에서 하지 귀찮게 여기 나와서 할게 뭐야?’ 눈을 감고 앉아있는 원장 뒤에서 화풀이를 하고는 속으로 원장영감에게 복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원장이 알았다면 바로난리가 나겠지만 눈이 뒤통수에 달리지 않은 이상 알 턱이 없겠다 싶었다.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자신의 모습이 실내 대리석 벽면에 반사되어 그대로 원장에게 비쳐보여 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뜻밖에 인사말 첫머리를 듣고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어리둥절했는데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머리카락 몽땅 빠지고 아주 민머리 되려다 말았다는 뜻밖의 말에 그날 족욕 사건 현장에 있었던 요양보호사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N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예민한 부분인 말초감정을 건드렸기에 회의가 끝날 때까지 숨죽이고 앉았던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여러분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어요. 때론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하면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 오해는 없기 바랍니다. 혹시 이 일로 퇴직 할 생각은 절대 하지마세요.”

화가 나면 부인인 부원장에게도 누가 보든 말든 마구 소리소리 지른 다혈질의 원장 입에서 예상치 않은 말이 나온 것이다.

"오늘 사표 쓰는 날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로 보따리 싸는 일은 면했어. 원장님한테 어디에 그런 느긋함이 숨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네. 역시 대인이야”

N은 아찔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당사자가 없다고 함부로 말 했다가는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며 지난날의 실수담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록 가족끼리 경영하는 시설이지만 경영자의 숨어있는 또 다른 모습은 눈에 드러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그 후로 N은 함부로 행동하거나 말 하는 것에 조심성이 생겼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뒤통수에 대고 주먹질 한 것은 경솔한 행동이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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