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햇살이 비친 곳에 원추리 꽃이 환한 미소로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산에서 자생한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일부러 심어놓은 것 같다. 물오른 풀숲에서 나비 한 마리가 힘찬 날갯짓을 하며 살포시 꽃 위에 앉았다가 인기척에 놀라 화르르 날아가 버린다. 산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군데군데 벤치가 있어서 산을 오르내리다 쉬어가기 좋다.
그날의 사고만 아니었으면 이시간이면 지금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있을 시간인데, 산속에서 한가로이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밖에 나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멀거니 유리창 밖만 주시하며 바깥세상을 동경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내 손길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계신 요양원으로 가려면 족히 한 달은 있어야 될 것 같다.
지난 5월 마지막연휴에 남편은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했다. 강원도고성으로 떠난 여행은 생활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날려버리고 재충전 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는 설렘을 안고 떠났다.
남편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생선회를 떠서 먹자고 함께 시장에 가기를 재촉했다. 시장에 도착하자 남편은 승합차에서 내리면서 승합차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순간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차안에 손을 넣고 있는데 남편은 차안에 손이 들어간 것을 미쳐 보지 못 하고 문을 닫았다. 오른손은 문틈에 끼었고 통증에 손이 으스러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움켜쥐고 있는 손을 움직여 보니 쥐락펴락이 되었다. 남편은 당황해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내 생각에 골절상은 아닌 것 같았다. 약국에 가서 약 사서 바르고 숙소로 돌아왔다. 바닷가에 가서 출렁이는 바닷물 구경나온 관광객들 속에서 놀며 모래밭에서 뛰노는 손자를 보니 상처 입은 손도 아픈 줄 모르고 시간이 흘렀다.
여행 끝나고 다시 생활 터전인 요양원으로 복귀했다. 대수롭잖게 생각했던 손은 퉁퉁 부어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어보니 골절 있었다. 다행히 골절부위가 크지는 않았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깁스로 할 수만 있으면 수술은 피하고 싶다고 했더니 손에 부목을 대주며 며칠 있다 결과보고 나서 결정하자고 했다. 담당 의사는 골절부위가 빗나간다고 수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손이 기형으로 변형될 수 있다며 수술 날짜를 잡았다. 직장에 휴가신청을 하고 어르신들께 한 달간 못 나올 거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수술 잘 받고 나오라며 위로와 격려를 해줬다.
담당 주치의는 간단한 수술이니 긴장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지라고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입원할 때 딸이 동행했고 수술실에 들어갈 때 까지 옆에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가 오른팔에 마취를 했다. 수술실 천장에 불이 켜지고 수술기구들의 달각거리는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담당의사는 다친 손 수술을 집도했다. 손에서 펜치로 철사를 끊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툭 툭” 두 번 나더니 수술 끝났다고 병실로 이동했다. 마취한 팔이 풀리려면 예닐곱 시간이 지나야 된다고 했다. 손이 붓지 않게 하려면 손을 베개위에 올려서 높이 올려두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침대를 세우고 베개를 쌓아서 팔걸이를 만들어 팔을 올려놓으면 스르르 떨어졌다. 왼쪽 손으로 팔을 들어 바로 올려놓으려 오른팔에 손을 대면 남의 피부를 만지는 느낌 이었다. 팔에 마취가 안 풀린 상태라 베개 아래로 팔이 떨어지고 구르는 게 몹시 불편했다. 아무런 감각 없는 오른팔이 거추장스러웠다. 내피부이지만 감각의 기능이 없으니 성한 손으로 끌어 올릴 때 마다 왼손에 와 닿는 무감각한 오른손이 섬뜩한 느낌이 들곤 했다. 요양원에서 마비 환자들이 불편한 쪽 팔을 성한 팔로 끌어안듯 붙드는 모습을 봤지만 그렇게 불편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아픈 환자를 내가 편한 방식대로 어르신들을 케어 했다는 생각이 들자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에 인색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잠시잠깐 겪는 불편함도 짜증스러운데, 좁은 침대에서 아픈 팔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살아야하는 어르신들의 삶이야말로 요양보호사의 따뜻한 돌봄이 어떤 약보다 그들의 아픈 마음을 녹여주는 진통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 환자들은 마비된 나무토막 같은 팔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의 아픔을 통해서 환자들의 육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것 같았다. 무심코 마비 쪽을 스쳐서 불편을 준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손 나아서 요양원에 복귀하면 그분들의 아픈 육신의 환부뿐만 아니라 외로움에 상처 진 마음까지 보듬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상자들을 돌보아야지...
집에 와도 오른손이 불편하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오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산이 높지 않으니 산책길처럼 갈수 있어서 부담감이 없다. 아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갈수도 있지만 자연 경관을 느끼려면 혼자서 천천히 산에 올라 자유롭게 산속을 날아다니며 평화로운 산새 우는 소리와 자생하는 야생화의 모습, 스치는 바람에 서걱거리는 나뭇잎소리,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나무의 기개를 보고 느끼며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한낮 더위를 피해서 오전에 산에 오르면 맑고 신선한 공기와 어우러진 숲속의 절경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해서 좋았다.
산으로 오르는 산책길은 마냥 호젓하지 만은 않다. 다양한 군상들을 만나기도 한다. 예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도 눈에 띈다. 귀와 꼬리는 핑크색으로 염색했고 목에는 구슬 목걸이를 한 모습이 마치 예쁘게 치장한 아기처럼 보였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숨을 고르며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다. 마비된 한쪽 팔을 성한 손으로 붙잡아 안고 걷고 있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다리를 끄는 발걸음과 붙들고 있는 한쪽 성한팔도 지쳐보였다. 안락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래도 힘든 등산길을 오르는 것은 부여잡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산에 올라 서서히 옮기는 발걸음에 고통스런 삶의 무게가 한쪽 어깨에 얹혀있는 것 같아 보였다. 건강한 사람이야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지만 편마비환자가 누구의 도움 없이 오르기에는 생을 담금질하는 고통스러움이 따르리라. 나뭇가지사이로 내린 조각난 햇살이 그의 아픈 몸을 비추고 있다.
산모퉁이한쪽이 벌겋게 파헤쳐져 신음하듯 붉은 토사를 피처럼 쏟아내었다. 농작물을 심기위해 파헤친 것 같다. 호박잎이 춤을 추듯 커다란 잎을 펼치고 노오란 꽃을 머금고 있다. 그 옆에 길고 하얀 밤꽃이 바닥에 수북이 수를 놓았다. 벌들에게 제 몸의 자양분을 주려했지만 벌들이 찾지 않아서 매달린 꽃들은 시간이 다하자 땅위에 떨어져 내렸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한낮의 평화로운 시간에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신선한 공기가 삶의 활력을 더해준다. 푸른 나뭇가지위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울창한 숲속 길목에 아기다람쥐 한 마리가 먹이를 찾는지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사람을 보고 피하지 않는 것을 보니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두렵지 않나 보다. 산은 등산객을 품듯 자연의 혜택을 안겨 준다. 하늘은 맑고 바람이 귓전을 스친다. 다람쥐가 나무 위를 다니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산속에서 자연의 혜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