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죽는 빵 하나 줘요

by 샤론의 꽃


청소기의 소음이 요란하다. TV앞에서 모여서 오락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동료들 사이를 빠져나와 청소하는 내 옆에 휠체어를 세우더니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경식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패기 넘치는 청년처럼 우렁차다. 전직 대학교수였던 할아버지는 고급 두뇌인 물리학 교수였다. 과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해도 자신이 재직했던 대학교와 담당했던 학과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비록 치아가 없어서 약간씩 발음이 새어나가도 큰 소리로 외치는 천둥 같은 소리에 동료 할아버지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아줌마, 내 집이 있는데 내가 왜 여기 있어요?”

대상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 아무리 치매증상이 심해도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마음 다치지 않고 이런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 하고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어르신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어서 여기 오셨어요. 저희들이 돌봐드리고 같이 생활하니 좋잖아요.”

“?......”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은 모양이다.

60대 초반인 Y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서 세 살 정도 수준의 지능에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데다 휠체어로 움직이는 정도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Y에게 다가간 경식 할아버지는

“아저씨, 내 나이가 몇 살이요? 아마 내 가 죽을 때가 됐지요?”

유리창에 성에가 서리면 바깥풍경이 보이지 않듯이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지난 과거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Y는 입으로 “우우” 소리만 낼뿐 경식 할아버지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내 나이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남의나이를 아느냐는 표정이다. Y에게도 시원한 대답을 못 들은 경식 할아버지는 “내가 오늘은 죽어야겠소.” 의미 없는 삶을 산다고 느꼈는지 쓸쓸한 표정으로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돌리고 있다. 빵을 하나 가져다가 경식할아버지 손에 주면서 “어르신 세상살이 힘들죠? 이 빵 먹으면 죽는 빵인데 드실래요?” “안 그래도 오늘 내가 죽으려고 하는데 먹고나 죽읍시다.” 배가 고픈지 빵을 맛있게 드시자 Y가 “빵, 빵”하면서 달라고 할아버지께 손을 내밀자 “나는 오늘 죽으려고 이 빵을 먹기 때문에 당신 줄 수 없어 이거 먹으면 당신도 같이 죽어” 맛있는 빵을 나눠먹기는 아쉬운 모양이다. 못 주겠다고 아예 협박까지 한다. 아무리 텅 빈 녹슨 두뇌지만 먹으면 죽는 음식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판단력은 가지고 있다.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의 호칭은 선생님이다. 하부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해서 인지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호칭이다. 경식 할아버지는 절대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간호사가 “어르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한테 아줌마아줌마 하는데 그렇게 부르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하세요.”

“선생님? 허어 선생니임?,” 살다 살다 별꼴 다 본다는 어이없는 표정이다. 나 같은 명문대학교수가 허드렛일이나 하는 여자들에게 붙일 호칭이 없어서 선생님이냐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빈정거린다.

대학교단에 섰던 지난날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아무리 망각의 세월을 살고 있지만 학자로서의 자부심이 남아있고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언제가오십대로 보인 남자분이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할아버지 앞에서 공손하게 예를 갖추어 말하는 게 옛 제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았어도 위엄을 갖추려 했다. 아무리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어도 추한 모습을 노출하기에는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자 아무개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냐며 묻고 누구누구는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묻는 것을 봤다. 겨우 자녀들 이름정도만 아는 줄 알았는데 제자들의 근황을 묻는다. 희미한 안갯속에 모자이크 된 지난날을 끄집어내어 기억의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가끔 “내 나이가 몇이요? 내가 죽을 때가 됐지요?” 하면서도 한때는 틈만 나면 책을 들고 읽었다. 밤에 소등하면 주변이 컴컴해서 아주머니들 책 읽기가 불편하니 불을 밝게 켜두라고 요청한다. 내면의식의 습관화 때문인지 책 읽기에는 어두운 환경이라는 걸 얘기한다.

막내아들이 면회 왔다. “아버지 저 알겠어요?”

“00맞지? 내가 살던 아파트는 지금 누가 살고 있냐?”

아들은 아버지가 요양원 입소 전에 살던 대형아파트를 자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버지는 아들의 행동에 불쾌하게 생각한다. 자주 오지도 않은 아들이 빈손인 것이 서운 하다는 듯 아들을 향해 “여기서 오늘 일하는 아주머니가 여러 명이다. 일하는 아주머니들 눈에 안 보이냐?” 아들은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아버지 저 갈게요.” 아들의 말을 듣고는 아들 가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 휠체어를 반대방향으로 획 돌려 버린다. 아버지의 대형아파트를 차지하고도 간식 하나 없이 빈손으로 찾아온 아들의 행동에 대한 항의표시다.

“어르신 섭섭하세요?”

“우리나라가 원래 그런 나라가 아닌데,... 애비한테 오면서 얼굴만 내밀고 가버렸어. 내가 대학까지 가르쳐서 저희 살아가는데 걱정 없게 해 놨는데 애비한테 빈손으로 왔어.”

효를 중시하는 옛 풍습이 사라진 것에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늙어서 자식에게 대접받기 위해서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부모의 의무를 행할 뿐이지만 자녀들은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인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권리 만을 생각하고 자신들의 편리함만 추구한 세태를 두고 한탄한다. 휠체어 바퀴를 두 손으로 돌려서 방으로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가끔 내가 사는 방이 어디냐며 자야 하니까 방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밤에 배가 고프면 옆에 와서

“아주머니, 나는 늙어서 죽을 때가 되어서 죽어야 해요. 내가 오늘 죽을 거니까 먹으면 죽는 빵 하나 갖고 와요.”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노학자는 나이도 날짜도 생활공간도 모르고 살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적 욕구는 살아있다. 죽기 위해서가 아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두고 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