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침대 옆으로 다가선 할머니는 누워있는 남편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괜찮혀?”
남편은 아내의 말에 가는 눈초리로 힐긋 보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아무 반응이 없자 자신의 침대로 간 그녀는 순간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드는지 남편을 눈흘겨 본다. 할아버지는 정신은 비교적 맑은 기억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굳어버린 다리근육 때문에 걷지 못하고 거의 침대에 누워 지낸 지 오래된 그다.
부부가 요양원에 함께 입소해서 2인실 같은 방을 사용하지만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남편은 혼자서는 거동하지 못하지만 소통이 가능하고, 아내는 거동은 자유롭지만 과거 속에 멈춰버린 고장 난 시계를 안고 산다. 녹슨 기억 속에서 안갯속 같은 희미한 과거를 배회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치매가 심한 아내와의 동거는 남편에게 불편할 뿐이다. 가끔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면 침대 빈자리를 바라보며 아내는 손뼉을 치면서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하다가 마지막 단락 끝날 때는 “탁” 소리가 나게 크게 손뼉을 치며 끝을 맺는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들이다. “아들 어디 갔어?” 또는 “우리 아들 어디 갔어?”라면서 남편의 부재를 의식한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 자리에 남편을 잠시 올려놓은 건지, 아니면 아들만큼 남편을 사랑한 표현의 방법인지 수시로 할아버지의 빈 침대를 바라본다.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할머니의 아리랑은 흘러나온다. 퇴원한 남편이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반가웠는지 남편을 자꾸 바라보지만 남편은 참선한 도인처럼 주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다. 아내에게 한 마디쯤 할 법 한데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말을 해도 대화가 되지 않지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기본적인 말 한마디 없다.습관화된 고착된 아집인지 아니면 애써 아내를 무시하려는 자신의 고집인지 옆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다.
부부에겐 처음부터 사랑의 공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낙엽처럼 건조한 메마른 정서로 부부라는 틀 안에 갇힌 삶을 살아온 이들에겐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켜온 의무감이 존재할 뿐이라고 자식들은 생각한다. 시대를 맞춰가는 아버지와 문맹인 어머니가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부부의 삶의 흐름이 빗나가지 않고 정도를 지켜온 가장의 역활에 충실한 아버지에게
후한 점수를 준 딸들은 어머니를 이해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입장을 더 이해하는 편이다. 부부는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부부간에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스며드는 사랑이 아닌 깨어지지 않는 얼음장 같은 굳건한 벽이 존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젊어서 직업군인이었다. 자식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칼날처럼 주름 잡힌 말쑥한 군복을 입은 멋쟁이였다. 자녀들의 숙제를 직접 도와주고 필통에는 손수 깎은 연필을 항상 가지런히 챙겨주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세월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남편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몸을 침범했다.치매가 아내의 정신세계를 점령해 버렸다.자신의 건강은 안 좋아지고 아내는 치매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자 젊음을 보낸 함께 살던 보금자리를 떠나 요양원에 같이 입소했다. 그는 일 년 중 절반은 병원에 입원했다가 절반은 요양원에서 보낼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다.
점심밥이 들어왔다. 아내는 자기 몫의 불고기 접시를 가져다가 남편의 식판에 올려놓았다. “저리 가” 야멸찬 할아버지 목소리가 깨진 쇳소리처럼 차갑게 방안에 울린다. 조금 전에도 무시당한 앙금이 가시지 않았는데 얼음장처럼 차가운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아내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뭐시여? 썩을 놈!”신고 있는 슬리퍼 한 짝을 벗어서 할아버지 머리에 내려쳤다. 순간 기습폭행을 당한 남편은 머리를 좌우로 숙여 이리저리 돌려 날아오는 신발짝을 피하고 있다. 바쁜 점심시간에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신발테러를 당한 남편은 밥상을 앞에 두고 매질을 피하느라 정신없다. 가까스로 할머니를 데려다 침대에 앉혔다.
윷놀이 프로그램시간이다. 젊은 이쁜이 할머니가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남편은 젊은 여인에게 자꾸 눈길을 보낸다. 이를 지켜보던 아내의 눈초리가 매섭다. 뱉어내지 못한 욕을 우물거리며 남편 옆의 이쁜이 할머니를 째려본다. 평생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살갑게 군적 없는 그가 얼굴 예쁜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가시처럼 날카로운 매서운 눈초리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할아버지 옷을 갈아입힐 때 바지를 갈아입히면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요양보호사를 째려보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비록 현실 판단 감각은 없어도 여성의 본능은 살아있다. 수평관계로 살지 못하고 수직관계로 살아왔지만 굳건한 아내의 자리를 누구에게도 틈을 줄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이 확실하다.
큰 아들이 면회왔다. 아들이 사 온 과일을 손에 쥐고 싱글벙글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 아들이여, 나한테 참 잘했어” 하며 과일을 까서 아들 입에 연신 밀어 넣어준다. 사랑스러운 눈길이 아들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비록 세월이 흘러 혼미한 정신세계에서도 아들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은 여전하다. 아들이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리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났네.”
손뼉에 부딪친 탁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며 아리랑은 끝이 났다. 한 맺힌 아리랑을 들으며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조용히 놓고 등을 보였다.
그날 한밤 중 조명등 아래 거실 한복판에 그림자가 움직인다. 허리를 반쯤 구부린 할머니다.
“어디로 가야 혀?”
아들이 있는 집으로 가려고 나온 것 같다.
“어르신, 아드님은 집에 갔어요. 어르신은 할아버지 하고 여기서 같이 지내야 해요”
젊어서부터 부부 사이에 진 마음의 균열은 매워지지 않고 남편에 대한 아내의 해바라기 사랑은 정신 줄을 놓은 지금도 지속 중이다. 고요한 밤중에 희미한 조명등 아래에서 아내의 아리랑이 다시 울려 퍼졌다. 남편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며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노래가 마냥 구슬프게 들려오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