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있다.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는 백세의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바른 자세로 서서 강의하는 모습을 TV를 통해서 봤다. 한 세기를 살아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백세의 노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의 철학은 돈을 사랑하는 것보다 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행복의 조건을 소유에 두지 않고 행위에 둔 노학자다운 생각이다.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권력을, 또는 건강을,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향에 따라 목적이 다르다.
사회복지를 강의하는 교육현장에서 강사가 수강생들을 상대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낀 열 가지의 조건을 수강생들에게 질문했다. 대부분 서너 가지까지만 대답을 하고 더 이상은 없다고 말했다. 가장 평범한 삶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열 가지의 행복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행복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다.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과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에 행복하다고 말하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 조건이기 때문이다.
노인복지시설에서 근무한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라면 시설에서 생활하는 대상자들을 보고 많이 느꼈을 것이다. 고령의 나이에 기본적으로 몇 가지의 노인질환은 자연스레 대상자들을 따라다닌다. 잃어버린 과거 속에서 배회하는 사람,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반신마비로 혹은 전신마비로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고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는 사람, 가족들과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혼자 생활할 수 없어서 스스로 요양시설을 택한 사람, 휘청거리는 그들의 삶 속에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가슴속에 품은 분노를 불꽃처럼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 팔십 초반의 대상자가 휠체어를 타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 혼자서 걸을 수만 있다면 내 재산 다 줘도 아깝지 않겠다.”
젊음을 앗아간 세월은 그녀에게 찾아온 불청객 질병과 싸워야 했다. 그녀의 소망은 두 발로 걸어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걸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삶이란 걸 건강을 잃은 후에 절실히 깨달았다. 돈은 생활하는데 필요한 도구의 역할만 할 뿐, 건강이라는 진정 소중한 조건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우리는 자유롭게 마음껏 활동하면서도 건강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매 순간이 행복하지만 자기 욕심에 함몰되어 더 많은 것을 취하려는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다.
할아버지 한분이 은행 VIP 창구 앞에 혼자 정물처럼 앉아있다.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허름한 차림을 한 노인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외로움이 묻어났다. 구십 세 정도 된 거액의 예금 가입자였다. 그는 돈을 손수 관리할 만큼 총명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써본 적이 거의 없는 듯했다. 어렵게 살아온 과거가 그를 샤일록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좀 쓰고 살아도 될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보이네요.”
“죽도록 일해서 아낄 줄만 알았지, 움켜쥐고만 있다가 써보지도 못하고 자녀들에게 분쟁거리만 만들어 놓고 가신 분들이 많아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안면이 있는 창구직원이 자조 섞인 소리로 말했다. 돈 때문에 유산상속을 두고 자식들 사이에 갈등의 요인이 되어 소송으로까지 간 불행한 사람들을 봤다. 사람은 목적이 있는 삶을 원한다. 돈을 목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목적은 달성했을지라도 가치 있는 행복한 삶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돈은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노후에는 즐기는 삶이 아름답다. 욕심주머니를 줄이면 마음이 가볍다.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가족과 소통하는 긍정적인 사고가 행복지수를 올려준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행복한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건강한 몸이 있어 스스로 혼자 다닐 수 있다. 삶의 여백을 행복이라는 붓으로 채색해서 오늘도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김형석 교수는 일에 목적을 두면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고 했다. “100세까지 살아보니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