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일색 최 마담

by 샤론의 꽃

요양원의 밤은 고요하다. 환자들은 밤 9시가 되면 소등하고 TV를 끄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1호실 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 죽여 가만가만 갔더니 은자 할머니가 보따리를 싸고 있다.

“어르신 지금 뭐 하세요?”

“아들이 내일 일찍 데리러 온다고 해서 미리 짐 싸 두려고”

집에 간다며 날마다 보따리를 싸는 은자 할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진 지 5년이 됐다. 머리 앞쪽 한 부분이 수술 후 움푹 파여 있다.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왼쪽다리를 침대 바닥에 대고 연신 문질러 댔다. 왜 그렇게 문지르느냐고 물었더니 운동하는 중이란다. 빨리 치료해서 접었던 포장마차 영업해야 한다며 집에 간다고 날마다 짐 보따리를 챙긴다.

활달한 성격에 입담이 좋고 젊어서는 멋 좀 부렸을 것 같다. 밤에 자지 않고 있을 때는 심심하다고 가끔씩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무용담처럼 들려준다.



남편은 아내에게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 없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끔찍이도 아내를 사랑하던 남편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떴다.

“세상에 그렇게 갑자기 갈 줄 생각이나 했나 멀쩡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가버렸어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지. 아이들은 넷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슬픔에 빠져있는 것조차 사치야”,

뭐라도 일을 해야 아이들하고 살겠다 싶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 제일 좋은 정장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술과 과일을 사들고 마을 경로당에 갔다.

어르신들께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벌어야 애들하고 사는데 세상을 오래 사신 어르신들께 협조를 구하려고 한다며 노점장사라도 해야 하는데 장소 좋은 곳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단다. 할아버지 한분이 자신이 단골로 다니는 곳에 포장마차 하던 사람이 며칠째 나오지 않던데 소문에는 그 여자가 장사 그만둔다고 하던데 가보라고 해서 간 곳이 영등포 유흥가 뒷골목이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자리와 포장마차를 인수해서 장사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서 재료를 준비해 놓고 장사하러 오후에 나가서 영업 끝나면 새벽에 정리하고 집에 들어와서 자고 장사 나가는 바쁜 생활로 정신없이 살았다고 했다.

"술 취한 손님들 상대로 하는 장사라 어려움도 많았겠어요."

말해 뮈해, 술 잔뜩 취해서 와서 지들끼리 싸우다가 파출소에 가서 조사받으면 우리 포장마차에서 술 먹고 싸운 뒤라 나는 무허가 영업이라 벌금 물고 했지. 그런 일이 자주 생기다 보니까 나중에는 꾀가 생기더라고, 많이 취한 취객들이 오면 몸 생각해서 오늘은 그만 마시고 집으로 가라고 달래서보내면서 다음에 오시면 맛있는 안주 만들어서 드리겠다 하고서는 내 보내는 거야”

“어르신 그때는 젊고 예뻐서 취객들이 집적거리지 않았어요?”

“한 번은 밤늦게 취객이 와서 소주를 마시더니 배고픈지 가락국수를 한 그릇 달라고 하기에 국수 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탁자가 들썩들썩하는 거야 그 남자가 앉은자리 쪽을 봤더니 오른손으로 국수 건져 먹으면서 왼손으로 자기 물건을 꺼내놓고 흔들고 있잖아, 순간 어찌나 속이 뒤집어지는지 일어나서 국수그릇을 뺏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으면서 뭐하는 짓이냐며 빨리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그 남자도 놀랐는지 쫓기다시피 급하게 나가다가 문 앞에서 퍽 엎어지면서 구두 한짝이 벗겨진거야.신발짝 하나 손에 들고 도망가다시피 가버렸어. 나중에 화가 가라앉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 가게 단골이야 꽤나 매상을 올려준 사람이었는데 내가 심하게 했다 싶은 생각도 들었어. 단골 한 사람 떨어졌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 그러고는 한 이년 안보이더니 어느 날 포장마차에 불쑥 들어오기에 그때일은 모른 척 시치미 뚝 떼고 ‘아이고 사장님 요즘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요?’ 했더니 외국에 나가서 한 이년 있다가 들어왔다고 들러댄 거야 내가 그리 말해서 추태 부린 사람이 자긴지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야.”


얼굴도 예쁘고 장사 수완이 좋아서 영업이 안 된 날은 붕장어 같은 횟감은 남으면 신선도가 떨어져서 버리게 될까 봐 손님들에게 소주를 한 병 서비스로 주며 오늘은 신선한 붕장어를 특별히 싸게 드린다고 하면 먹는 손님들도 기분 좋아하고 재고 남기지 않고 다 팔았다고 한다.

손님 봐 가면서 돈 있는 영감에게는 소주 한 병씩 공짜로 주고 비싼 안주를 손님 앞에서 횟감을 손질하면서 “요놈 참 맛있겠다.” 하면 공짜로 생긴 소주 먹으려면 안주가 필요하니까 손님은 소주 한 병 얻었겠다 좋은 안주를 팔아서 매상을 올리는 영업수완 이 뛰어났다.

대가세지만 손님들에게 상냥했고 예쁜 얼굴 때문에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손님들이 붙여준 별명이 ‘천하일색 최마담’이었다.

어느 날 밤에 최마담이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왜 우냐고 물었더니 영감이 보고 싶다며 나한테 그렇게 잘할 수가 없는데 왜 그리 빨리 가버렸는지 단 한 번만 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영업이 잘돼서 꽤 많이 번 돈을 어이없게 부동산 사기로 날려 버렸다. 지인의 말만 믿고 개발지역이라고 투자한 땅이 아무 쓸모없는 산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충격으로 쓰러졌고, 치료한 후 다시 포장마차를 했지만 영업한 지 며칠 만에 뇌졸중이 재발한 바람에 요양원에 오게 되었다. 다시 포장마차 해야 하니까 퇴소한다며 날마다 집에 간다고 짐을 싼다. 어린 자식 넷을 키우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든 일이 포장마차였고 그 포장마차가 삶의 밑바탕이 돼서인지 유독 포장마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편마비로 혼자 서지도 못하면서 포장마차에 대한 영업은 포기하지 못하고 날마다 집에 가는 환상에 빠져있다. 그녀에게 요양원은 아픈 몸을 위해 요양을 위한 곳이 아니라 휴식을위한 쉼터 쯤으로 생각 한다.

“이 선생, 내가 퇴소해서 포장마차 다시 시작하면 놀러 와. 내가 국수를 아주 맛있게 말거든 꼭 먹으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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