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수의 아내

남편의 일탈

by 샤론의 꽃

요란한 소리가 꼭 싸우는 소리 같다. 살금살금 보름 할머니 방으로 가 봤더니 침대에 걸터앉은 보름 할머니는 TV리모컨을 움켜쥐고 옆 침대 경희 할머니를 향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남의 집에서 세 살면 얌전히 있어야지 시끄럽게 하기는... 여기가 당신 집이야? 한 번만 더 시끄럽게 텔레비전 틀면 그때는 당신 짐 보따리를 집밖으로 내놓을 거야.”

3층에 있던 경희 할머니는 바깥풍경이 잘 보인다는 5층으로 자리를 바꿔달라고 원장님 볼 때마다 졸랐다. 말이 바깥풍경이지 사실은 같이 생활하던 동료가 몸이 안 좋아 병원으로 이동한 지 한 달 만에 자식들이 어머니의 소지품을 찾으러 왔다. 어머니 어떠냐는 동료 할머니들의 질문에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사물함 서랍에서 생신잔치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물 글썽이는 아들의 표정에서 상황판단을 한 것 같다. 말없이 떠나버린 동료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앓이를 했다. 주인 잃은 빈 침대를 볼 때마다 같이 웃고 생활하던 동료의 모습이 생각나서인지 자리를 옮겨 달라고 한 달 전부터 원장님한테 부탁을 해놨던 차에 5층 빈자리가 난 바람에 원하던 5층으로 왔지만 오는 그날로 구박을 받아야 했다.


보름 할머니는 치매 증세가 있어서 2인실 방을 자기 집으로 착각한다. 기억력 정확하고 자존심 강하고 현실 판단이 확실한 경희 할머니는 어안이 벙벙했다. 같이 맞대응하기에는 두 사람의 수준이 같아지고 참고만 있기에는 즐겨보는 TV를 못 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일주일도 못 견디고 짐 보따리 싸서 예전에 있던 방으로 다시 가버렸다. 보름 할머니의 입담은 알아준다. 동료들과도 같이 앉아서 시간 간 줄 모르고 지난날을 더듬어서 얘기한 걸 보면 치매증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분위기를 재미있게 끌고 나가며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재주가 있다. 큰 키에 머리카락은 단풍 든 소나무 잎처럼 다 바스러지고 머리 한가운데 머리카락이 다 빠진 자리에는 시커먼 더덕개비가 똬리를 틀고 있다. 머리에 일명 쇠똥이 앉았다고 한다. 머리가 왜 이렇게 생겼냐고 물었더니 젊어서 떡 장사 하면서 뜨거운 떡을 머리에 이고 이 십리 길을 다니면서 장에 가서 떡을 팔아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던 삶의 흔적이란다.


남편은 소를 사서 장에다 파는 소장수였다. 장에 갔다 오면 전대에 돈이 가득 들었어도 겨우 먹고 살만큼의 돈만 줬지 벌이에 비해 아내에게는 인색한 남편이었다. 어느 날 방물장수 아주머니가 날이 어두워져서 잠잘 데가 없다고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기에 재워줬다. 아침에 웬걸 아내에게 인색하게 굴던 남편이 전대에서 한 움큼의 돈을 꺼내더니 아내 보는 앞에서 돈을 세더니 방물장수 여자에게 건넸다. 다음에 또 오라는 말까지 하면서...


여자가 간 다음에 그 여자가 뭔데 당신이 그 여자한테 돈을 주냐며 따지자 오죽하면 머리에 물건이고 팔러 다니겠냐며 불쌍해서 준 돈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생판 모른 여자 고생한 것은 그토록 마음 아프고 나 고생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느냐며 퍼부으려다 여자는 이미 가버린 뒤였다. 굳이 싸움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속으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 있다 잊을 만하니까 방물장수 여자가 다시 찾아왔다.

“그래 니 서방이 몸 팔아오라고 하든?”

다짜고짜 여자를 몰아세웠다.

“아주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오늘은 절대 재워줄 수 없으니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며 내 쫒다시피 보내버렸다.

돈 잘 벌던 남편도 젊은 날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떴다. 비록 다정다감하진 않았지만 가장이 없는 집에는 쌀 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현실에 1남 3녀의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서 떡을 만들어서 장마당에 가서 팔고 와야 하는 고달픈 삶이었다. 집에서는 해가져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절대 빈곤에 시달리던 그는 떡 그릇을 머리에 이고 장마다 팔러 다니는 바람에 그때 한가운데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딱정이가 더덕개비처럼 앉았다. 요양보호사 H가 깍정이 진 부분에 오일을 듬뿍 발라서 불렸다가 살살 떼어내자 지난 과거의 훈장처럼 들어앉은 딱정이가 떨어져 나가자 머리에 이고 있던 짐을 부린 것 같다며 좋아했다.


딸 셋을 시집보내고 아들과 둘이 살았다. 늦은 나이에 겨우 결혼한 아들부부와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세 사람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일일이 간섭하는 시어머니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며느리에게 생활경제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하고 주도권 싸움을 하다가 암투를 피해서 친정으로 간 아내 따라서 처가살이하는 아들이 한심했다. 그래도 이혼한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며느리가 들어와서 아들과 같이 한집에서 살라고 하고는 요양원으로 들어오셨다. 부족한 아들을 위해 며느리에게 자존심을 굽혔단다. 두 사람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를 원 한다는 할머니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단다. 환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다녀간 딸이 언제 왔다 갔는지 제대로 기억하진 못해도 젊은 날 남편이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어도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든든했었다는 말을 곧 잘한다. 남편 생전에 일탈된 행동을 원망하기보다는 가장 없는 빈자리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는 사실을 가장이 된 후에 간절하게 느꼈단다. 그녀는 겨우 아룬 자식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양보할 줄 아는 현명한 실용주의자다.


남편이 그립지 않느냐는 물음에 젊어서 남편이 혼자 벌어서 혼자 마음대로 쓰고 다닐 때는 경제력만 있으면 남편 내쫓고 혼자 살 것 같았다. 막상 남편 없는 세상살이가 그렇게 고달픈지는 살아오면서 깨달았다며 웃는 모습이 인상 깊다. 멈춰버린 시계는 희미한 과거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옛날로 회귀하고 있다. 오늘도 놀러온 옆방 할머니들 붙들고 소장수 남편이 집에 온 방물장수 여자에게 준 돈은 결코 불쌍해서 준 돈이 아니라 줄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며 지금 같으면 그 여자 패대기를 쳐서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며 입담을 자랑한다. 자신은 질투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은 다는 할머니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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