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따금 들리는 소리지만 신경이 거슬린다. 병실로 가봤더니 K는 침대 난간에 머리를 부딪쳐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심한 자학증세가 있었다. 종일 침대에 누운 채 괴성을 지르거나 머리를 부딪칠 때가 있다. 그의 운명이 이렇게 처참하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IMF전까지 K는 잘나가는 은행원이었다. 언제나 깔끔한 복장으로 출퇴근 하던 그가 하루아침에 요양병원 침대에서 삶의 끝 언저리에 와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있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돈은 자본주의 시대의 야누스같은 존재다. 한순간에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존재다. IMF시절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자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자본금 비율이 낮은 은행들은 다른 은행으로 합병되거나 퇴출되었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금융업체들로 인해 수많은 은행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실직자가 되었다. 다른 직종에 비하면 고액 연봉을 받은 은행원들은 많은 퇴직금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퇴직한 K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불투명한 미래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생업을 위해서는 뭔가 해야 했지만 재취업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노는 날수가 많아지자 가족들 얼굴 보기가 미안했다. 불안한 나날 속에 같은 직장에 있던 퇴직자들끼리 사업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옛 상사였던 부장 출신이 사업을 구상하고 청사진을 그렸다. 다섯 명의 옛 직장동료들은 사업자금으로 퇴직금을 모두 털어 넣었다. 저마다억대의 퇴직금을 투자했다. 그가 꿈꿨던 미래는 거기서부터 앞이 가로막혔다.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여럿이 투자한 돈으로 사업을 구상했던 옛 상사는 부인이 유방암에 걸리자 치료를 위해서 암 수술을 해주고 치료비로 써버린 돈에 대한 책임 때문에 가족들을 미국으로 피신시켰다. 동료들의 피같은 투자비용은 그렇게 몽땅 사라져버리고 본인은 홀로 남은 집에서 자살해 버렸다. 마지막 보루였던 가족들의 생명 같은 돈이었다. 여러 가정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옛 상사는 자기 혼자 책임을 마무리 하려는 듯 자살로 동료들과의 관계도 자기 자신의 삶도 끝내버렸다. 그와 연결된 끈이 떨어지자 뜻을 함께했던 동료들의 가정이 풍파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박탈감과 공황에 빠진 K는 그 충격으로 쓰러져 버렸다. 몸이 굳어가는 파킨슨씨병이 온몸을 점령해 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진행되는 병마가 그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며 자학 하는 증세가 심했다. 침대 난간을 스티로폼으로 감싸서 부딪쳐도 충격을 흡수하도록 싸두었다. 거미줄처럼 몸에 연결된 관이 복잡했던 그의 인생관처럼 늘어져 있었다. 말도 못 하고 아무 의식이 없이 누워있는 그는 분명 자신과 화해하지 못 하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질책하고 있는 듯 신음했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괴로운 괴성을 지르는 것과 몸을 침대 난간에 부딪쳐 자학하는 일 뿐이었다. 고통의 무게만큼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있었다. 바람에 표류하는 낙엽처럼 그의 삶은 그렇게 버석거리고 있었다.
부인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어깨에 걸머진 짐이 무거워 주저앉고 싶어도 현실은 바늘구멍만큼도 여유롭지 않았다. 아이들을 먹여 살리면서 남편의 치료비까지 떠안고 사는 삶이 쉬울 수는 없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 후 남편을 찾아오는 그녀 얼굴을 보면 눈물을 애써 참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퇴직과 사기의 배신 속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쓰러져 버린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과 먹구름으로 가득 덮여있었다. 너무 안쓰러워서 차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남편의 증세는 더욱 심했다. 그래도 그녀는 피곤에 찌든 몸으로 다가와서 남편의 손의 잡아주었다.
경제적 파탄에 몰린 수많은 기업과 회사원들이 비켜가지 못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인해 많은 가정이 표류했다. 잘못된 선택으로 한가정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 불행한 그 시대. K처럼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해 한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에 그의 짧은 삶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그에게 돈은 생명의 끈이었을까? 아니면 멍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