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동행

지선할머니를 기억하며

by 샤론의 꽃




순백의 목련꽃이 소리 없이 땅 위에 수를 놓았다. 삼사일 짧게 피었다가 청초한 아름다움을 끝내고 바닥에 애잔하게 떨어진 목련꽃을 보면서 몇 년 전 어느 봄날 우리 곁을 허무하게 떠났던 잊지 못할 지선할머니를 떠올린다.


내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처음 취업한 곳이 노인요양원이었다. 출근첫날 심호흡을 하고 요양원 생활실에 들어갔다. 첫 시간부터 싸우는 왁자지껄 시끄러운 할머니들의 싸움소리가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 할머니 두 분에 싸우고 있었다. 최할머니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옆 침대 지선할머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저씨 못 들어오게 그렇게 앉아 있으면 어떡해, 빨리 자리 비켜줘!”

“여기는 원래 우리 집이야, 우리 집에서 세 들어 살면서 방세도 안 내고 나보고 왜 나가라는 거야?”

다른 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에게는 일상이다. 그들은 4인실 생활실이 서로 자기 집이라고 우기면 싸움이 끝이 안 난다. 두 할머니가 밤새 안 자고 눈동자가 반쯤 풀린 상태로 침대에 아침까지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보다 못해 서로 마주치지 않게 자리를 바꿔 놓으려 했더니 최할머니는 창가가 좋다는 이유로, 지선할머니는 휠체어 타기가 좋다는 이유로 자리를 안 바꾸겠다고 한다. 서로 자기는 옮기기 싫다며 상대를 다른 자리로 보내라고 하니 옆에서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치매 걸린 노인들의 특징은 10분 전의 일도 포맷된 컴퓨터처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식사하고도 왜 밥 안 나오느냐며 투정을 부리는 건 예삿일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옛날일은 거의 다 기억해 낸다. 지선할머니는 어린 시절 얘기를 가끔씩 했다.

“학교 다닐 때, 비 오는 날이면 우리 아버지가 도라꾸(트럭)에 태워서 학교에 데려다줬지, 친구들이 부러워서 다음번에 차 타고 학교 올 때 자기들도 꼭 좀 태워 달라고 난리였어.”

어린 시절에는 사업하는 부모의 장녀로 유복한 생활을 했다. 치매로 잃어버린 현실과 과거 속에서 헤매는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된 것은 할머니를 돌본 지 한참 지나서였다. 찾아오는 가족이 별로 없었다. 할머니를 많이 닮은 여자분이 면회 와서 간식거리를 사주고 가는 정도였다. 별로 나이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아서 동생이냐고 물었더니 그냥 아는 분이라고 얼버무린다. 알고 보니 동생이 아니라 단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나이에 비해 훨씬 늙어 버린 모습이 동생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잊을 만하면 종교 단체에서 과일을 사가지고 와서 할머니께 드리고 갈 때는 할머니 불편한데 없게 잘 좀 부탁한다며 깍듯이 인사를 하고 갔다. 의례적인 인사라기보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잘 보듬어 달라는 뜻 같이 느껴졌다.


비 오는 어느 날, 또 두 할머니의 싸움이 벌어졌다. 최할머니가 시비를 걸었다.

“우리 아저씨 퇴근 하는데 저렇게 옷 벗고 있으면 못 들어오는데 빨리 옷 안 입을 거야?”

“옷을 안 벗으면 군인 놈 들이 발로 차고 하도 때려서 안 맞으려면 차라리 이렇게 벗고 있어야 돼 “

그제야 할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이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추운 겨울날씨에도 틈만 나면 침대에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있는 것도, 종교단체에서 와서 할머니를 각별히 부탁한 것도, 할머니의 주변 친척이 안 찾아온 것도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오락가락 안갯속을 헤매다가도 어떤 날은 딴 사람처럼 멀쩡해질 때도 있었다.

작업 치료실에 갔다 생활실로 오실 때 꽃 한 송이 가지고 와서 꽃을 내 손에 쥐어 주고는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다.


일본식민통치를 겪은 이 땅의 어른들이 겪은 나라 잃은 설움은 어느 개인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원치 않은 운명의 쓰나미에 휩쓸려 정신대에 끌려가게 됐다. 젊은 청춘을 이국땅에서 휘어지고 굴곡진 형벌의 세월 속에 갇혀있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 살아지는 나날이었다. 모진 성적 학대와 구타 속에서 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어서 죽으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아, 일본패망 직전 미군폭격기가 비행하면 나도 모르게 죽지 않으려고 몸을 숨겼어. 그때 죽음 이전에 삶에 대한 본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지, 이제 남은 것은 빈 껍데기 같은 병든 육신뿐인데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스러운 과거가 내 발목을 잡고 있어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내가 살아온 과거는 지옥의 세월이었어”

긴 숨을 뱉어내며 말을 마쳤다. 파르르 떠는 눈꺼풀 속에 눈물이 이슬처럼 맺혔다.


광복이 된 후에 같이 끌려간 동료들의 생사도 모르고 뿔뿔이 헤어진 채 생존자의 한 사람으로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다. 피폐하고 망가진 육신으로 차마 고향땅으로 가지 못했다. 서울에서 모진 고생 끝에 다방을 운영하다가 남편을 만났다. 가정을 이루고 딸을 하나 낳았다. 겨우 이룬 가정이었지만 행복은 그들 모녀 곁에 머물지 않고 안개처럼 사라졌다. 결국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영원히 곁에 있어줄 줄 알았던 남편과 헤어지는 또 다른 아픔을 겪어야 했다. 딸과 둘이서 살아온 삶이 쉬울 수는 없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딸이 있었기 때문에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맑은 정신으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지난 삶을 얘기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 맺힌 과거를 더듬어서 쏟아내는 할머니의 고백에 잠시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끔 침대에 앉아서 왼쪽 가슴이 아프다며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을 좀처럼 지우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있던 모습이 가슴 아팠다. 쭈글쭈글 주름 잡힌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등을 감싸주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가슴에 새겨진 주홍 글씨를 지우지 못하고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던 할머니, 평생을 고통스러운 어둠의 기억 속에서 헤매며 가슴에 맺힌 한을 안고 살아왔다. 울분 맺힌 과거 때문인지 때로는 상당히 공격적인 돌출행동을 하였다. 한밤중에 주무시다가도 잠결에 비틀거리면서 침대에서 자꾸 내려오려고 하였다. 내려오다 넘어지면 그대로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주무시라고 못 내려오게 하면 “왜 내 마음대로 내려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이놈의 집구석 불을 확 싸질러버릴 거야”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어느 날 작업치료실에 다녀온 후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작업치료사가 접은 종이비행기를 할머니께 준 모양이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하늘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동요를 부르는 할머니의 모습은 70여 년의 세월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 순수한 어린이의 표정이었다. 내가 본 할머니의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다.


멈추지 않은 기침으로 불청객처럼 폐렴이 찾아와 몸 안에 자리를 잡았다. 갑자기 열이 오르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병원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지선할머니 딸의 표정으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에 계신 어르신은 좀 어떠세요?”

“어머니 짐 챙기러 왔어요. 어젯밤에 조용히 세상 떠나셨어요. 어머니 모시느라 선생님들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딸은 지선할머니 유품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다가 다시 들어왔다. 가방 속 안경 밑에 놔둔 종이비행기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몸 나으면 다시 요양원으로 오겠다던 할머니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애닮은 삶에 종지부를 찍고 하늘나라를 향해서 먼 길을 떠났다.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는 켜켜이 쌓인 한을 실타래처럼 풀어놓고 봄날 목련꽃이 떨어지듯 내 곁을 떠났다. 어쩌다 식민지역사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던 할머니. 요양보호사와 대상자라는 관계로 만났다가 가슴 아픈 추억을 남긴 채 할머니와 마지막을 함께 했던 특별한 동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소멸된 육체를 통하여 그의 영혼은 천국을 향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린 시절,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어느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한 사람의 영혼이 별똥별이 되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다고 믿었다.‘또 하나의 별똥별이 떨어졌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가 꿈꾸는 평화로운 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주인 잃은 할머니의 빈 침대를 바라보았다.

“지선할머니! 고통도 눈물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 고인신상정보때문에 할머니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기림의 날'을 맞아서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다시 끄집어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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