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각자 자기 자리를 찾아 식탁 앞으로 모여든다. 자기 자리에 앉으려던 영태할아버지가 갑자기 식탁 반대편소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기 나이가 더 많은데 자기보다 더 젊은 창식 할아버지가 소파 쪽의 상석에 앉은 것은 불공평하다며 잽싸게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자리가 없어진 창식할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더니 “뭐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다가가서 예전에 앉았던 대로 각자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자 그렇게는 못 하겠다며 버티고 앉아있는 영태할아버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식탁에 내려쳤다. 그러자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창식 할아버지가 도끼눈을 뜨고 “야, 이 도둑놈아 남의 자리가 그렇게 욕심나냐, 빨리 네 자리로 가”
“야, 이 새끼 말하는 것 좀 봐라? 너 내 주먹맛 좀 볼 거야?”
일어서더니 주먹을 허공에 날리고는 창식할아버지 앞의 의자를 발로 걷어차버렸다. 며칠 조용하다 싶더니 기어코 싸움이 벌어졌다. 점심밥이 들어오자 서성거리며 멱살잡이를 할 것 같던 그들도 곧 조용해졌다. 역시 먹는 것이 좋긴 좋은가 보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TV앞에 모인 할아버지들이 언제 싸웠냐는 듯 TV시청을 하고 있었다. 생각과 분노를 분산하기에는 TV시청만큼 좋은 것도 없다. 우울하게 말없이 앉아있던 창식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지 않은지 자기 방으로 슬며시 들어가 버렸다. 그는 언제나 자기 침상에 누워있다가 밥 먹을 시간에만 거실에 나와서 식사를 하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다. 가끔 딸이 와서 젊어서 홀로 된 아버지가 혼자서 삼 남매를 고생하면서 키웠다며 노후라도 편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몸이 아파서 보행도 어렵고 우울증 증세까지 있어서 안타깝다며 마음 아파했다. 말없이 누워있는 그를 식사만이라도 동료들과 어울려 드시게 하려고 했는데 자리 하나를 가지고 싸움이 벌어졌으니 자리는 이제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그들에겐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한 사람은 먼저 입소한 기득권을 주장하고, 한 사람은 나이로 봐도 연장자인 자신이 상석인 자리에 앉은 게 순서라고 서로 주장한다.
휠체어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경호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 우리들 몰래 자기 침대로 가서 거미가 줄을타고 기어오르듯이 침대 위로 조심스레 살살 올라가곤 했다. 영태할아버지가 낮잠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기에 따라갔더니 큰소리가 들렸다. 경호할아버지가 큰 덩치로 영태할아버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있었다. 두 시간 전에 식탁 앞에서 자리싸움으로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는데 자기 침대에 딴사람이 누워 있는 걸 보고는 손에 짚고 있던 보행용 워커를 바닥에 내리쳤다. 자기 자리에 타인이 누워 있는 걸 보고는 어이가 없는지 당장 일어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겨우 잠잠해졌는데 또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서 남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자 아무나 누우면 자기 자리지 뭐가 잘못됐냐고 거대한 몸집을 꿈쩍도 않는다.
“남의 자리에서 일어나요. 그 자리에서 자려면 천만 원 내놓고 자요.”
보다 못한 요양보호사 L이 한마디 하자 “말도 안 돼, 무슨 자리하나가 천만 원이나 해?”
꿈쩍도 않하던 그는 천만 원이라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휠체어 앞으로 다가왔다.
전직 은행장 출신인 그는 돈의 액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최고학부를 나온 그는 고급 두뇌들이 모인 금융 그룹에서 최고경영자였다 포털 네**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인물정보에 그의 프로필이 뜬다. 이제는 자기 생각과 마음이 다섯 살 수준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버린 그는 자기가 누울 자리 하나에 욕심을 내고 있다.
젊은 날 바쁘게 살아온 그는 하루 종일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일이 거의 없다. 다른 층 생활실에 있는 부인에게 갔다 오자고 물으면 아쉬운 사람이 와야지 내가 굳이 갈 필요가 있냐며 거부한다. 가끔 부인이 방문하면 우리가 살던 집으로 가자고 말하는데 화려했던 과거의 흔적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그의 뇌리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인생은 짧다. 지나간 시간은 바람처럼 순식간에 가버리고 젊은 날의 옛 추억이 있는 집을 그리워하고 있다. 천만 원이라는 말 한마디가 침대에서 못 내려가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었다.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액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