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아들아”

by 샤론의 꽃

집은 비어있고 빨랫줄에 걸린 옷이 바람에 그네를 타고 있다. 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주인의 부재를 알린다. 집은 비어있어도 사람이 드나든 흔적은 있다. 빨랫줄에 걸린 것은 아들 옷이다. 홀로 집을 지키던 고모는 길게 오랜 기간 느긋하게 집을 비울 분이 아니다.

전화를 했더니 신호가 간 한참 후에 받는다. 어디 계시냐고 묻자 잠깐 밖에 나왔다고 한다. 재차 다그치듯 묻자 병원이란다. 시골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고모 집에 들렀다. 주변사람들 귀찮게 한다며 잠깐 병원에 있다가 퇴원한다며 번거롭게 오지 마란다. 고모는 오래전 수술받았던 다리 고관절 인공뼈가 탈골돼서 재수술을 받았다며 재활치료받으면 퇴원해서 집으로 올 거란다. 그러면서 넋두리하듯 푸념했다.

“팔자 도망은 못 한다더니..., 죽을 나이에 수술한다는 것도 거시기하고 젊은 아들 고생만 시키고 있네.”

고모의 삶은 기구한 운명이었다. 첫 결혼에 실패했다. 신혼 시절에 이혼했으니 마음고생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재혼 후 고모부와 4년간 살았던 게 결혼생활의 전부였다. 당신을 살뜰히 챙기던 두 번째 남편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모에게는

친자 남매 말고도 전처 자녀들 여러 명이 있었다. 친정에 오면 사춘기를 겪는 전처의 아들이 당신의 아픈 속을 제대로 썩인다고 푸념하곤 했다. 그래도 아버지 없는 아이들 상처받지 않도록 차별하지 않고 한 가정의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젊은 청춘을 자녀들을 위해 희생했다.

고종사촌 동생이 일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왔다. 고모가 집 가까이 있는 병원을 고집해서 일자리도 병원 가까이 있는 곳으로 일 다닌다고 했다. 간병인을 고용했기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굳이 오지 않아도 되지만 어머니 외롭다며 날마다 들르는 아들 효성이 감동할 정도라며 주변 환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다.

동생은 불행했던 어머니의 삶을 조금이라도 보상하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다. 병원비와 간병비로 적잖은 비용이 나가도 혼자서 책임을 지는 동생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엄마의 불행한 운명이 자신의 탓인 양 엄마는 여자로서 누려야 할 행복을 전혀 누리지 못한 불행한 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흔 넘은 연세인데도 정신이나 기억력이 정확했다.


병원을 다녀온 지 보름 정도 지났을까. 동생에게 전화했다.


“누나, 엄마가 예전하고 달라요. 담당의사가 그러는데 엄마한테 섬망증세가 있다고 하네요. 밤에 소리 지르고 집으로 간다고 난리예요. 다리는 거의 다 나았는데 섬망증세 때문에 퇴원을 못 하고 있어요.”

돌변한 태도 때문에 간병인도 더 이상 못 본다며 가버리고 주변 환자들 시끄럽게 해서 피해 준다며 병원에서는 퇴원하라고 했단다. 처음엔 자신 혼자 편하겠다고 어머니를 요양시설로 모시지는 않겠다고 고집했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도 혼자 있어야 하는 데다 이상행동증상까지 보이는 엄마를 두고 일을 하러 갈 수도 없으니 생각다 못해 동생은 요양원을 알아봐야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모는 예전의 고모가 아니었다. 동생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에미 싫다고 요양원으로 보내? 죽어야 나오는 곳이 요양원이라는데 내가 왜 거 기로가?” 하며 화를 냈다. 한밤중에 집으로 가겠다고 사물함에서 옷가지를 꺼내어 싸서 아무도 모르게 비상계단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멀쩡하게 걷는 모습은 대퇴부 수술받은 환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누가 잡으러 온다고 생각해서인지 계단을 겅중겅중 내려간 것을 병원 관리인이 보고는 고모를 모시고 병실로 들어왔다. 한밤중에 아들이 불려 왔다.

누가 봐도 고모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들을 붙들고 밤새 잔소리를 늘어놓는가 하면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호통을 쳤다. 지친 몸으로 잠도 못 자고 밤새 시달린 동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병원 입 퇴원이 잦았어도 맑은 정신을 가져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둑이 무너지면 물이 넘쳐 쏟아지듯 넘쳐 흐르는 흙탕물 속에 잠긴 기분이었다. 두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린 모습으로 서 있다.

주치의가 고모와 면담을 했다. 비록 굶고 살더라도 아들과 함께 살기로 굳은 마음으로 젊은 청춘을 바쳐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살았는데 어미가 병들었다고 책임지지 않으려고 요양원으로 보내려는 불효막심한 아들 때문에 살아온 인생이 억울하고 분하다며 하소연했다. 주치의가 환자의 가정사까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환자의 말도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이며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는 모양으로 봐서는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주치의는 보호자인 아들을 불렀다. 환자가 원하지 않는데 굳이 요양원으로 보낼 생각이냐고 물었다. 여태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한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로 위선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피곤에 쩐 모습으로 병실에 들어가면 엄마의 이상행동이 다시 시작되곤 했다.

섬망증세가 생기면서 아들에 대한 고모의 집착력은 더해만 갔다.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동생에게 당분간 엄마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전했다. 그간 복지시설에서 일하면서 멀쩡하다가도 가족만 보면 이상행동을 하는 환자들을 봐 왔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면 오히려 집으로 가려는 고모의 불안한 증세 때문에 결국엔 서로가 더 힘들다며 마음 안정 될 때까지 참으라고 했다.

며칠 만에 동생이 병실을 찾았다. 의외였다. 아들만 보면 날뛰듯이 소리를 지르며 이상행동을 보이던 고모가 조용해졌다. 예전처럼 정신도 맑고 차분한 모습으로 아들을 대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다. 그러고 며칠 뒤 아들 손을 꽉 잡고 마지막 작별을 했다. 놓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집착도 마지막엔 소유할 수 없는 헛된 욕망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묶었던 매듭을 풀고 영면의 길을 떠났다.

고종사촌 동생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린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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