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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Oct 02. 2023

낙지 같은 손자사랑


  “쾅”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화장실 천정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마당에서 고구마 줄기 잎을 따던 할머니는 예견된 사고라며 변소가 무너지면 당장 어디 가서 볼일을 보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할머니 얼굴은 화가 잔뜩 올라 벌겋게 상기된 모습으로 아버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내가 며칠 전 부터 변소 석가래 무너지기 전에 손 보라고 누누이 말했는디 뭣이 그렇게 바쁘다고 신경 안 쓰더니 변소가 폭삭 내려 앉아 부렀당께, 내말 안 들어서 생긴 일이여.”

무너진 화장실 앞에 가보니 주변에 희뿌연 먼지가 퍼져있고 놀란 닭들이 집 옆 감나무위로 올라가더니 갑자기 홰를 치며 “꼬끼오” 울기 시작했다. 새벽에만 우는 닭들도 대낮에 합창하는 이상행동을 하는걸 보니 많이 놀란 모양이다. 화장실 바닥에 등겨를 깔아놓은 부드러운 재위에서 시간만 나면 앉아있던 송아지가 천장이 무너지자 놀랐는지 허옇게 재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무너진 잔해더미를 헤치고 나오려고 이리저리 몸을 허둥대고 있었다. 하얗게 분칠한 송아지가 무너지지 않은 벽 틈새로 겨우 빠져 나왔다. 다행이 송아지가 깔려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안심됐다.


  논에 가셨던 아버지는 삽을 어깨에 걸치고 오시다가 무너진 화장실을 보더니 어이가 없는지 빙그레 웃었다.

  “할머니, 변소 부서져서 아부지가 징하게 기분이 좋은가 보지라우”

속도 모르는 여동생은 폐허가 된 화장실을 보고 어이없어 웃는 아버지를 보고 신나는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시골 재래식 화장실은 흙돌담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인데다가 여름철 홍수가 나면 냇물이 화장실벽 아래까지 물에 잠겨서 언제부턴가 흙돌담이 평행을 유지하지 못하고 약간 곡선으로 휘어져 갔다. 날이 갈수록 수평이 틀어져만 갔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머리위에 석가래도 제자리에서 틀어져 간다고 생각하고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볼일을 보면 후다닥 나오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타박을 듣고도 아무소리 못 하고 우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흙 돌무더기를 치워서 임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놨다. 평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아버지도 화장실 서까래가 무너질 정도로 위험한 상태가 되도록 방치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아버지를 향해 화를 낸 이유가 있었다.  만약에 화장실 지붕이 붕괴되면 가족들이 다칠 것을 우려해서 몇 번 아버지께 무너지기 전에 고치라고 말씀하셨지만 손을 쓰지 않고 방치했다가 우려했던 지붕 서까래가 우지직 부러져 버렸다. 지붕이 폭삭 무너져 내리자 당신의 말이 무시 된 것 같아서 화가 잔뜩 나셨다.

 “내 말만 들었어도 요로코롬 무너지지는 않았으것인디 내말 안 들어서 생긴 일이여, 산에 가서 나무하나비어(베어)다가 서까래 받쳐놓으면 끝나불 일인디 인제는 아그들 고생하게 생겼당께”

전쟁터를 방불케 한 사건 현장에서 할머니는 펄쩍 뛰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만약에 사람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무너진 잔해에 깔려 변고라도 당했다면 어찌할 뻔 했는지 아찔했다.


 다음날부터 무너진 화장실 잔해를 치우고 새로 짓기 시작했다. 산에서 큰 나무를 베어다가 목수 아저씨가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석가래를 세우고 벽도 세웠다. 드디어 화장실이 완공되자 제일 좋아 하신 분은 할머니였다. 손주들이 불편해하면 당신 마음이 더 불편했었다. 할머니의 손자들 사랑은 유별났다. 할머니는 손자들을 무척 귀여워했다. 그 중에서도 큰손자인 오빠를 유난히 사랑스러워 했다.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은 다 보리밥을 먹어도 할머니 밥그릇은 놋그릇에 하얀 쌀밥이 담겨져 나왔다. 할머니는 오빠 밥그릇에 쌀밥 한 숟갈씩 슬쩍 얹어 놓는다. 우리들은 침을 꿀떡 삼키며 오빠 밥그릇을 힐끔거리며 봤다. 할머니는 5일장이 든 날에는 읍내 장에 갔다 돌아 올 때는 언제나 생선을 사와서 저녁밥상을 풍요롭게 했다.   


 그날도 장에 가신 할머니는 산낙지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하교시간에 같은 버스에  오빠를 할머니가 봤다. 버스 안에는 오빠 친구와 남녀공학인 관계로 여고생들도 타고 있었다. 버스 안에 같이 탄 여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오빠는 여학생들 틈에 있기가 멋쩍은 상황이라 할머니를 피해서 멀찍이 안쪽에 서있는데 갑자기 버스 안에서 할머니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메 내괴기! 내괴기!”

 창피한 생각에 슬며시 할머니 쪽을 봤더니 산 낙지가 양푼에서 기어 나온 바람에 도망간 낙지를 훔쳐 담고 있었다. 차안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할머니에게 모이자 감수성 많은 고등학생인 오빠는 유별난 할머니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얼마간 조용하다 싶더니 또다시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메 내괴기 도망가네”

 살아서 치마폭으로 기어나간 낙지를 손으로 집어서 양푼에 담아내자 버스 안에 탄 승객 들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재미있는 구경거리처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여학생들 속에서 양푼을 들고 “내괴기”를 외치는 할머니의 손자라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시방 남의 괴기를 그냥 가져 가것단거요? 택도 없는 짓 하지도 마쇼 잉”

양푼에서 기어나간 낙지소동이 있은 후 버스 선반위에 올려둔 할머니 낙지 양푼을 가지고 슬며시 내리려한 남자를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집 주변 정거장에서 할머니는 산 낙지 양푼을 들고서 버스에서 내려서 차에서 아직 내리지 않은 손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버스 안을 들여다보더니 나오지 않은 손자를 찾고 있었다. 마치 내가 아무개의 할머니라는 것을 강조하듯...

 “00야! 00야! 빨리 내리지 시방 뭣 하고 있다냐”

 벌게진 얼굴로 차에서 내린 손자 손을 덥석 잡고

“오메 내새끼 배 고픈디 빨리 집에 가서 괴기에다 밥먹자.”

손자의 손을 덥석 잡은 할머니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손자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은 옷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은 산 낙지 같은 끈끈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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