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계신 Y할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어도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잡은 손을 꼭 쥐고 “퇴근하나요?” 뭐라고 대답 해야 할지 난감하다.
“어르신, 제가 몸이 아파서 치료하려고 좀 쉬어야 합니다. 몸 회복되는 대로 다시 오겠습니다.”
그녀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빠른 회복 바랄게요.”
육중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은 불편함에도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들의 사랑을 받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병원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중환자실에서 며칠 지내고 다시 돌아왔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올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다 선생님들과 병원 주치의 덕분에 어려운 고비를 넘겼어요.”
비교적 정확한 기억력을 지닌 Y할머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쪽보다는 항상 감사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다른 분들에 비해 비교적 케어 하기가 수월했다. 연세가 많으면 자연스레 숙명처럼 여러 질병이 따라온다.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지만 왜 내가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집을 떠나서 요양원으로 와야 하는지 모른다며 불만을 터트리는 분들도 있다. 핵가족시대에 일인 가족으로 살다가 혼자 생활이 불가능해지면 자식들에게 등 떠밀리다시피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S할머니는 해만 지면 아들 밥 차려 줘야 한다며 버스정류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쓴다. 주무시고 내일 함께 가자고 하면 혼자서 갈 수 있는데 안 데려다 준다고 야속하다며 돌아눕는다. 굽이굽이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사연 없는 사람 없고 걱정 없는 사람 없다. S할머니가 유독 아들 걱정하는 것은 혼자 사는 아들이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직장은 제대로 다니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미 남편과 젊어서 사별하고 노동판에서 험한 일을 하면서도 자녀들을 키워 결혼시켜 놨지만 그의 자녀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험한 세파를 거치고 살아온 사람답지 않게 고운 미모를 지니고 있어 젊은 시절에는 주위에서 재혼의 권유도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뿔뿔이 헤어지는 비극을 보며 어미가 재혼한다고 과연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겠냐며 얘기하는 것을 보면 과거를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C할머니는 자존감이 대단하다. 요양보호사들의 작은 실수라도 느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나 진명나온 사람이야. 학교에서 선생님 했고, 노인회 회장 했던 사람이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이 구십 넘은 분이 그 시절 명문인 진명여고 출신임을 강조한다.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그녀는 항상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다. 복용하는 약을 보니 백혈병을 앓고 있다. 본인의 병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 자존감 만큼은 대단하다. 많은 연세 때문에 병원치료 보다는 요양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려 하는 것은 오히려 항암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다.
여러 사연을 안고 요양시설로 들어온 대상자들은 각 가정의 경제적 사정도 다르고 생활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숙명처럼 그 일원으로 그분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게 요양보호사다.
언제부터 발목에 통증이 왔다. 종일 움직이다 보면 저녁에는 몸이 파김치가 된다. 병원에 갔더니 발목인대 손상이란다. 많이 고민했다. 치료를 받으면서 계속 일을 해야 할지, 아니면 퇴사를 해야 할지 여러 날을 두고 생각했다. 내 몸이 건강해야 대상자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할수 있을 것 같다. 결심하고 원장님께 사정을 얘기했다. 치료 잘 받고 다시 돌아오라며 격려를 해주었다. 이미 가족처럼 정들었던 대상자들을 두고 나는 사표를 작성하고 사인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사회는 혼란하고 날씨는 차갑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시설에 두고 온 대상자들의 얼굴이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