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아저씨의 하루

by 샤론의 꽃



“당장 일어나, 왜 남의 자리에 누워있어?”

“아무나 누우면 내 자리지 주인이 따로 있나, 당신도 마음에든 자리 있으면 거기로 가면 되잖아?”


침대 앞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험상궂은 얼굴로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태세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로비를 왔다 갔다 하던 너구리아저씨는 끝내 자기 자리를 못 찾고 남의 침대 위에 누워 자고 있었다. 침대 주인인 정 할아버지가 길게 누워 자는 너구리아저씨를 보자마자 노발대발했다. 너구리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렸다. 어떨결에 끌려 내려왔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자기 자리는 아니라는 사실에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이다.

지남력 장애가 심해서 자기 방을 못 찾는 너구리아저씨는 쇼핑하듯 이방 저방 기웃거린다. 그는 치매는 있어도 몸은 움직이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한참을 배회하다가 결국엔 남의 침대에 누워버려 자리싸움까지 하는 불상사가 종종 발생한다. 그날도 비어있는 침대 위에서 늘어지게 누워있는데 당장 내려오라는 정 할아버지의 불같은 소리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겨우 일어났다.

부인이 한 번쯤 면회를 올 법도 한데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의 간식이 눈에 띄면 무조건 주머니로 들어간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부인한테 한번 다녀가라고 하세요. 면회 온 것으로도 힘이 되잖아요.”

“마누라 도망갔어.”

그는 부인이 가출했다는 말을 마치 남의얘기 하듯 자연스럽게 말한다. 묻지도 않은 자기 과거를 풀어놓았다. 그는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본인 말로는 첩보요원으로 북파공작 활동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겪었단다. 맡은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불사조처럼 살아났다고 했다.

국가에서 공인된 정식 활동이 아니라 군사정권때 블랙요원으로 활동하던 그들은 북파공작원이란 신분이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목숨을 걸고 위험업무를 맡은 요원들에게 국가에서 충분한 보상을 해주던 때도 아니었다.

북파요원 동료들 중 정상적으로 사회에 정착하지 못 하고 술 먹고 행패를 부리다가 술김에 자기 신분을 말해 경찰에 끌려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때 북파요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프로판 가스통을 들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일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지만 잊혀진 과거의 인물들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번은 밤에 목욕실에서 샤워기를 들고 있는데 문이 스르르 열렸다. “누구얏!” 하고 소리치자 놀랐는지 움칠했다.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사람은 너구리아저씨였다. 자칫하다가는 물바가지를 뒤집어쓸 것 같은지 슬며시 문을 닫았다. 그에겐 여자 샤워실을 훔쳐보는 관음증이 있었다. 샤워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는 볼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가 왜 여자 샤워실을 기웃거리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동료 요양보호사는 누구나 한 번씩 겪는 과정이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다. 밤마다 샤워실을 기웃거리는 그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해도 먹히지 않는다는 동료요양보호사는 얼굴이 너구리같이 생긴데다 하는 행동도 똑같아서 별명이 제대로 맞아떨어진다며 웃는다.

그가 요양원으로 들어오게된 동기는 문제는 술이었다. 이미 목숨건 다른 체제를 경험했고, 귀환후에는 사회적응기간을 거치지않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하는데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못 하고 술을 마시고 자꾸 말썽을 일으켰다. 파출소에서 전화 와서 가보면 술 취한 상태에서 낯선사람과 주먹다짐하다가 파출소에 와서도 경찰의 멱살을 잡는가 하면 파출소 기물을 부수는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부인이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그는 알콜성 치매로 집과 병원을 왔다갔다 하다가 나이들어 갈 곳 없어 결국엔 요양원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방마다 기웃거리는 그는 자기 침대를 찾기보다는 사물함에 올려져 있는 간식거리에 더 관심이 많다. 평범한 국민으로서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는 오늘도 할 일 없이 남의 방을 기웃거리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의 빈 침대위에 올라가려다가 침대주인에게 멱살 잡힌 채로 끌려 내려오는 그의 모습이 마냥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볼 수 없는 현실이 그가 살고 있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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