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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Dec 31. 2019

페미니즘이 아직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만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혼자는 천직입니다만』북오션 출간 전 연재 ⑧


경력직으로 들어와 서른 중반을 넘긴 나보다 스물일곱의 신입사원이 사장의 비전을 현실로 옮겨주기에 더 적합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더 간절한 일에 더 많은 비용을 치른다. 나로선 화도 나고 배신감도 들었지만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칭찬을 마다할 사람은 없겠으나 사장은 남의 칭찬에 유독 약했다. 치켜세우면 그것이 진실인양 믿었다. 게다가 남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가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나와 신입직원을 남자와 여자란 성별로 차별해 월급을 책정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사장과 신입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사장은 현혹되어 있었고 신입에겐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사장이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학원 프랜차이즈에 대해 군말을 얹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성과도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셔대는 신입에 대해서도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은 사장의 귀가 얇아서 벌어진 일이고 허황된 욕심이 부른 참사다.

"사장님, 저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고 관두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무던히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뭐라고! 그건 안 돼!"

사장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

"왜 안 되는데요?"

나는 당돌했다.   

"관두려거든, 양 선생 대신할 직원을 구해놓고 나가!"

내 생각을 돌리지 못한 사장은 그렇게 노여움을 토해냈다.

내 마음은 이미 그곳을 떠나 있었다. 오년 동안 내 월급이 인상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경험도 없는 신입에게 나보다 많은 월급을 줘서도 아니다. 관둘 때가 된 거라고 스스로를 에둘렀다.      


나는 동네에 집이 몇 채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성장기의 나는 차별을 받는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랬다면 없는 형편에 엄마는 나를 굳이 도시로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엄마는 유학을 가겠다는 나를 딸이어서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할머니도 마찬가지셨다. 언니는 읍내에 있는 여상을 다녔고 내 아래로 남동생이 둘씩이나 있었다. 내가 도시로 가는 것을 반대했다면 그것은 당시의 집안 형편 때문이지 내가 딸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아는 우리 집은 적어도 교육을 앞에 두고 딸과 아들을 차별한 적이 없다. 내가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일에 능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대학에 다니는 나를 불러놓고 엄마가 하는 말은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네 친구들이 노래방에 가자하면 너도 가서 같이 부르고, 산에 가자하면 너도 따라가고, 술을 마시자하면 너도 같이 마시고, 춤을 추러가자 하면 너도 따라가서 춤을 춰!

엄마는 나의 대학생활을 보지 않았음에도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말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사교성이나 사회성이라고는 없는.

엄마의 우려와 달리 나는 내 방식으로 대학생활을 잘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원했다. 다른 엄마들 같으면 말렸을 것들도 엄마는 내게 적극적으로 권했다. 나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떨어지는 그런 것들을 제발 한번은 해보라고 등 떠밀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하는 것들을 나라고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태반이다. 학과 동기들은 무리지어 자기네들끼리 어울려 다녔다. 나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혼자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고 누구와도 무리지어 다니지 않았다. 내겐 나만의 놀이가 있고 그것을 즐기려면 나는 혼자여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후임을 구하는 광고에 문의는 없었다. 그렇다고 관두겠다는 말을 없던 일로 할 생각은 없었다. 나의 퇴사일은 새로운 직원을 구하지도 못한 채 빠르게 다가왔다.

퇴사 하루 전.

후임은 오지 않았다. 나는 신입직원을 불렀다. 그동안의 내 업무에 관한 모든 것을 그에게 인수인계했다. 내 컴퓨터 안에 저장된 모든 내용을 보여주고 설명하고 그 밖의 것들을 또 친절하게 별도의 글로 남겨 전달했다.

그리고 나의 퇴사를 사장에게 다시 보고했다. 글만 쓰고 싶은 나의 앞날이 말만 작가인 백수로 전락하게 될지라도 그런 것들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저 친구가 뭘 안다고 인수인계야!"

사장은 노발대발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도 참 못됐다. 그리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는 없다.  




P.S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 [혼자는 천직입니다만]

차례는 있으나 연재의 내용은 순서와 다르고 내용도 제 임의로 선택해 올립니다.

이야기 전체는 출간본으로 만나보실 있습니다.

제게 행복은 좋은 것이거나 기쁨의 순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상태일 것입니다.

평온한 행복도 있지만 긴장된 상황의 행복도 있다는 걸,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상황에서의 행복도 있다는 걸,

행복의 그림자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살면서 알아갑니다.    

소설 같은 에세이, 그 안에 담긴

저만의 유별나고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하나 더, 사진은 이미지용으로 글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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