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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Dec 31. 2019

쓸데없는 걱정을 미리 사는 건 좀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혼자는 천직입니다만』북오션 출간 전 연재 ⑨

 

안경 없이는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유난히 빨리 왔다. 시력 하나만큼은 자신했는데, 휴대폰 문자 하나도 안경을 쓰지 않으면 읽을 수가 없다. 큰 글씨와 작은 글씨를 동시에 봐야 하는 강의 시간에도 마찬가지여서 불편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개미가 기어가듯 모니터 안의 활자들이 아른거렸다. 읽을 수 없는 글자의 크기가 한 포인트씩 늘어갔다. 이러다 아예 못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안경을 쓴 다음에도 나의 눈은 해마다 안 좋아졌다.

의사는 내게 노안수술을 권했다. 안경 없이 나갔다가는 완전 눈뜬장님이 따로 없었지만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내 몸의 변화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역행하여 내가 얻는 것들의 가치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기도 했다.   

다만, 볼 수 없는 글자의 크기가 해마다 한 포인트씩 늘다 보면 나중에는 대문짝만 한 글자도 읽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시력을 잃게 되면 그땐 어떡하지? 책이야 오디오가 읽어준다지만 글을 쓰는 일은 어떻게 하지? 누구의 간섭도 없이 평생 내가 할 수 있어서 선택한 이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닌가? 자판을 외우면 원고를 쓰는 일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눈을 뜨고도 오탈자를 내는 마당에 매끈한 원고를 써내는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쓸데없는 상상으로 내 근심을 키워갔다.

그를 만난 것은 그 무렵이다. 나 자신이 앞을 볼 수 없게 되면 그땐 어떻게 하나,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던. 그는 지팡이 하나를 앞세우고 내 강의실에 나타났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당황했다. 멀쩡한 눈으로도 힘든 글쓰기였다. 매주 한편씩 글을 써내야 하고 동료들의 글을 읽고 분석하는 것도 매주 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다.

그 과정들을 그가 할 수 있을까?

그가 맨 앞의 자리를 찾아 착석할 때까지 내 안의 의문들이 서로 맞부딪혔다.      

나의 글쓰기 수업에 나오는 사람들은 십 대부터 팔십 대까지 다양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본인의 자서전을 꾸리고 싶어서. 글로 우울증을 달래고 싶어서. 문학이 좋아서. 그냥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서. 수업을 찾는 사람들의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세대 간의 격차에서 오는 갈등을 중재하는 일도 내게는 쉽지 않았다. 십 대는 십 대만의 패기로 다른 사람의 글을 신랄하게 분석했다. 육칠십 대의 어르신들이 십 대의 합평에 언짢아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고작 중학생인 네가 뭘 안다고 내 글을 난도질 해.  

직접적으로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불쾌함을 억누르지도 않는다. 그분들은 이미 오만 인상을 쓰는 것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학생은 단순히 글쓰기의 방식에 대한 의견을 말한 것이지만 그분들은 당신의 인생을 난도질당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는 것을 나도 모르진 않는다.

글쓰기 수업이 특정 대상을 수강생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전세대가 섞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대 간의 견해 차이는 글쓰기 수업에서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다.

세대 간의 이해는 물론 한 인격체로 대우해주지 않고서는 공정한 합평이 이뤄지기 힘들다. 그래도 글이 좋아서 오신 분들이니 몇 마디의 말로 기분을 풀기도 한다. 하지만 칠팔십 대와 십 대의 보이지 않는 충돌은 힘겨루기만큼이나 팽팽했다.

그 줄다리기 사이에서 나는 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 학생의 의견이 얕잡히지 않기를 바라고 칠팔십 어른의 말에 전적으로 동조하지도 않는다.

지위고하를 떠나 나이를 떠나 성별을 떠나 직업을 떠나 그저 내 수업에 글을 쓰기 위해 온 사람들. 그들은 글 앞에 모두 동격이다.

인생의 강을 건너온 그분들의 삶을 나는 누구보다 존중한다. 인생 굽이굽이에 박힌 우여곡절들을 이겨내고 살아서 여기까지 오신 분들이다. 아침이 되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거나 마흔쯤으로 나의 생이 점프해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날들이 내게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인생의 나이조차 거저먹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부딪치고 깨지고 단련되고 극복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유세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이를 먹다 보면 알게 되는 것 같다. 공짜 같은 그 나이도 허투루 거저먹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 수업에 온 어르신들의 나이 유세만큼은 귀엽게 받아준다. 그 연세에 내 수업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럴 자격은 충분하다.

그 유세가 어린 학생에게 건너가지 않기를 바랄 뿐.      

시각장애인 수강생의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나의 걱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을 먼저 밝힌다. 그가 잘 해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편견 없이 그를 대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시험대에 오른 것은 수강생인 그가 아니라 선생이 나였다.

그는 글쓰기 과제를 누구보다 잘 해왔고 남의 글을 읽고 평하는 데에도 뛰어났다. 보지 못한다고 해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란 내 생각은 턱없이 짧고 어리석었다.

나는 그가 써온 글을 읽는 게 좋았다.

어둠의 세상에서 건져 올린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땐 살이 떨리는 전율을 느꼈다. 이토록 생생한, 날것의 글이라니. 그가 아니라면 쓸 수 있는 독특한 글의 세계가 그 안에 오롯이 들어앉아있었다.  

그가 수업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내 걱정은 쓸데없었다. 그가 볼 수 없음에도 어떻게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어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알게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특수 자판이 있고 자판을 읽어주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글자를 입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동료들이 카페에 올려놓은 원고도 읽어주는 시스템을 활용하면 되는 거였다.

함께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글을 나눠 읽는 것만으로도 그의 글쓰기는 충분히 완벽했다. 내 수업에 재미를 붙인 그는 자신의 아내와 내 수업이 종료되던 그때까지 함께 다녔다. 그의 아내 역시 앞을 보지 못했지만 내가 걱정할 일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들 부부에게 집을 나서는 일은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그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휘젓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늘도 무사했다고 안도하며 식은땀을 닦아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언젠가 한 번은 동네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와 환담을 나누고 그가 먼저 자리를 뜨기를 기다렸다. 그가 머뭇거렸다.

"왜, 안 가세요?"
 "내가 왔던 방향을 잃어서요."





P.S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 [혼자는 천직입니다만]

차례는 있으나 연재의 내용은 순서와 다르고 내용도 제 임의로 선택해 올립니다.

이야기 전체는 출간본으로 만나보실 있습니다.

제게 행복은 좋은 것이거나 기쁨의 순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상태일 것입니다.

평온한 행복도 있지만 긴장된 상황의 행복도 있다는 걸,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상황에서의 행복도 있다는 걸,

행복의 그림자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살면서 알아갑니다.    

소설 같은 에세이, 그 안에 담긴

저만의 유별나고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하나 더, 사진은 이미지용으로 글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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