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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ca Jan 09. 2020

히말라야를 가려는 당신에게

몇가지 남은 이야기


1.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고, 조금 비싸도 믿을 만한 곳으로.


나는 절대로 내가 계약했던 에이전시를 지인들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가이드가 치명적으로 하자가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마치고 카트만두에 돌아와 뺀질거렸던 가이드에 대해 이야기하니 에이전시 대표는 안색이 굳어지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이후의 말이 놀랐는데, 사실 그 가이드가 이전에도 문제를 일으킨 적은 있었지만 내가 출발하던 날짜에 가용한 가이드가 그 친구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전과가 있었던 가이드를 나에게 붙여줬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한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잘 다녀왔으니까. 물론 시작하기 전에 얘기를 들었다면 들고 일어났겠지만. (당연히 알 수 없었던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또 화가 난다.)


 첫날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술 먹고 한참을 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히말라야에 찾는 사람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현지인들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다. 그중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1루피라도 더 뜯어내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와 현지인들 사이 정보의 비대칭은 불가피하며, 따라서 좋고 나쁜 사람들을 완벽히 가려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장 구글에 검색해봐도 셀 수 없이 많은 여행사가 널려있다. 타멜 거리에도 수십 개의 여행사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나 역시 출발하기 전에 여러 에이전시와 상담해봤다. 네이버 카페 회원의 추천을 받은 곳도 있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개인 가이드도 있었다. 하지만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고작 한번 다녀온 입장이기 때문에 말하는 거다. 산을 너무 사랑해 몇 번이고 다녀올 생각이 아닌 한, 여행사를 선정할 때는 비싸더라도 질문에 꼼꼼하고 명확히 대답해주는 곳을 위주로 고르자. 네팔에 입국하기 전부터 몇 차례 네고를 해야 하는 업체는 거르는 것이 좋다. 당신이 그렇게 세운 최저가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옵션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알더라도, 나는 분명 당신이 생각보다 돈을 더 쓰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어느 업체를 통해 어느 사람들과 가더라도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답은 대충 나온다.


사짜 냄새 맡기가 쉽지는 않지만 여러 군데 문의를 넣고 상담을 하다 보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비싸도 '그나마 조금이라도 믿을 만하고 안전해 보이는 여행사'가 있을 것이다. 현지 여행사와 호텔들은 많은 여행객들이 트립어드바이저와 구글맵 리뷰를 보고 온다는 사실을 옛적부터 알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자. (나에게도 하나같이 별것도 아닌 서비스로 생색을 내며 만점 리뷰를 부탁했다.) 돈만 있으면 히말라야에서도 뭐든 다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당신에게 오만가지 방법으로 바가지를 씌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떡고물 한 잔 받고 부탁 받은 리뷰들은 돌아오자마자 싹 지웠다


이런 스트레스를 받기 싫다면 ABC, 푼힐 코스처럼 스스로 다녀올 수 있는 곳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나는 정상의 풍경에 매료되어 목적지를 선택했지만 다른 곳도 다른 매력을 가진, 충분히 멋진 곳이다. 어디를 가든 사진으로 보는 감동 그 이상을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그 여정이 예상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그저 큰 일정의 변동 없이 잘 다녀오면 선방했다 생각하면 될 듯.


수요가 많아지면서 히말라야 현지의 물가가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모든 곳이 전체적으로 올라가면 그게 가격으로써 기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객들의 절실함을 돈으로 보고 바가지를 씌우는 현지인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간혹 네팔 여행하는 데 네고는 필수라며 순진한 여행객들이 잘못했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생각 좀 해보고 말을 하길 바란다.


생강차에만 얼마를 썼는지 모르겠네..



2. 체력은 생각보다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체력이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적응은 빠른 편이다. 오기가 있지만 포기도 빠른 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성격이 장기간의 산행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 빠르게 루틴을 찾았다. 모든 걸 가이드에게 맡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리한 판단은 지양해야겠지만, 자기 몸 상태를 기반으로 견적을 내보고 나름대로 사리분별을 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산을 잘 아는 사람이지 내 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가이드의 조언을 귓등으로 들으라는 말이 아니다. 체력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적당히 긴장해있고 그에 따라 완급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일을 하라고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당신의 사소한 부분까지 24시간 관리해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나보다 훨씬 건장하고 체력이 좋아 보이는데도 극심한 고산증세를 호소했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일정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음에도 마지막 날에 하루를 더 쉬고 내려왔다. 정상에 오르던 날을 빼면 8시간 이상 걸었던 날은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몸에 이상이 생긴 후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자신의 체력이 되는 데까지 한다는 생각보다는 몸 상태를 꾸준히 인지하고 남은 일정을 토대로 견적을 내보는 게 중요하다.


날고 기는 현지인들도 자칫하다 고산병에 걸릴 때가 있단다



3. 하기 나름도 있고, 운도 있고..


직원은 열흘 만에 복귀한 나에게 너처럼 빠르게 다녀온 사람은 드물다며 운이 정말 좋다고 했다. 실제로 날씨도 좋았고, 잠깐이었던 두통을 제외하면 아픈 적도 없었다. 준비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일들이 좋게 풀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분명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큰일이 날뻔했던 사건을 피했다는 사실은 카트만두에 돌아온 후,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카트만두에 돌아온 지 나흘이 지났다. 구글 추천 기사에 익숙한 사진이 올라왔다. 루클라 공항 근처에 내가 탔던 경비행기가 고꾸라진 사진이었다. 계류장에 있던 헬기를 들이받아 3명의 사망자와 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기사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일반 탑승객은 없었다고.


이 때까지만 해도 비행기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는데


그곳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때였다. 그래서 더 섬뜩했다. 루클라 공항은 내가 지금껏 본 공항 중 가장 작은 곳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중 하나로 꼽힌다. 내가 이런 곳을 너무 맘 편히 다녀왔구나 싶었다. 자칫하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구나. 산속이 아니라 마을 한복판에서 죽을 수도 있었구나.


고산병처럼 어느 정도는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고,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벌어지는 불가항력인 문제들도 있다. 만약 산속에서 날씨가 좋지 않아 며칠 더 머물렀다가 내가 저 비행기에 탑승했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히말라야에 다녀와 이런저런 말을 남긴 사람들은 나 말고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두자.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속버스 터미널 절반도 안되는 곳에서 참 잘도 뜨고 내렸다..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잘 다녀왔다. 처음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았고, 막상 다녀와 보니 그렇게 겁먹을 것까지는 없는 곳이었다. 자연은 내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에게만 이를 악물고 불친절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것들 안 하면 나름의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지인들이 물어보면 딱 이 정도로만 짧게 대답한다. 조언을 구한다면 뭐.. 안나푸르나 부근은 쿰부 지역보다 훨씬 환경이 좋다고 하니 그쪽을 권한다는 정도?


실제로는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곳이었다. 그저 낭만적인 기억으로만 남지는 않은 곳이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런 곳이었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엔 나는 정말 잠시 그곳의 티끌이었을 뿐이니.. 히말라야를 가려는 사람들이나 버킷리스트에 담아두고 꿈꾸는 사람들 모두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생각은 해볼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긴 글을 써봤다. 진짜 끝.



솔직히 사진만 보면 또 가고 싶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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