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결국은 끝났다.
함 사익과 우 상길의 대결은 일방적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반격은 고사하고 균열된 틈이 파열될 위기에 처한 우 상길은 약화 된 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김준석의 상태를 겪는 중으로, 분모인 김준석의 쇠퇴가 곧 분자의 에너지 상실인 관계였으니, 즉, 기운의 고갈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그-그-그-긍!”
상대적으로 강화된 함 사익의 상승 에너지는 무쇠솥을 깨는 쇠망치의 위력으로 연속해 방어막을 때렸다. 그때마다 균열의 범위가 커지는 방어막 타격의 반 발음은 둔탁하게 깊어졌다. 더 늦기 전에 결정해야 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그 순간, 그의 뇌리는 두 번이나 죽임을 당한 장인옥과 연길 거지들이 스쳤다.
‘과연 바뀌었을까? 되기만 하면 가디언은 구할 수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오히려 냉정하게 향후를 가늠한 우 상길의 실행은 즉시 이어졌다.
‘한 번뿐이다!’
사력을 다해 팔꿈치를 엑스자로 당겨 모은 그가, 가슴을 크게 부풀려 벼락같은 기합을 내질렀다.
“우-와-아!”
최후를 각오한 쩌렁쩌렁한 기세는 방어막에 불꽃 파장을 일으켜 순식간에 잔여 에너지 전부를 흡수했다. 반면, 스스로 방어막을 걷는 위험천만한 순간이기도 했다.
“펑!”
흡수되는 에너지를 물고 덮친 함 사익의 극강 에너지가 찰나의 간 극 없이 우 상길을후려친 것도 그때였다.
“헙!”
묵직한 단발의 신음은 상길이 결계 밖으로 튕긴 충격으로 시뻘건 핏덩이가 터져 날아가는 중에 차원 벽에 막혀버렸다.
“쩌-정!”
치명적인 내상을 감수하고 차원의 빙벽을 뚫은 우 상길은 주사위처럼 어두운 시장 바닥에 나뒹굴었다. 세상의 새벽은 깊어 있었다. 고깔 유리 천장의 시장 내 유일한 원형 바닥, 2층으로 연결된 계단에서 초록색 인간이 비상등에 박혀 있었다.
“컥!”
목구멍에서 솟은 피가 넘쳐 흘러나옴에도, 그는 원뿔형 천장 구조물 유리 사이로 반쯤 찬 달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거긴 너무 춥고 어두워서 지겹더라. 큭큭!”
뿌연 빛의 입자. 유리 흠집의 조각 빚이 아스라이 달무리 지는 그때, 달빛 속 그림자가 허공에서 스며 나왔다.
“크! 차라리 더러운 시장이 낫다? 하긴, 그러고 보니 아주 엿같은 곳이었네? 거긴 이승도, 저승도 아니고, 죽기 애매하기는 하다.”
우 상길을 쫓아 결계를 나온 함 사익이었다. 하지만 차원의 빙벽 안에선 멈췄던 피가 움푹 팬 옆구리를 적시는 것을 의식한 그는, 파이프 기둥에 기대 입꼬리를 말았다.
“끝은 봐야지?”
여유로웠다. 옆구리 통증으로 순간 미간을 꿈틀거리긴 했어도 강자의 넉넉함을 즐기는 듯했다.
“그러게, 걱정했잖아. 안 오면 어떡하나? 하고.”
“크크! 헛소리하는 걸 보면 드디어 죽을 때가 온 게 맞아.”
겨우 일어나 계단에 걸친 상길을 보면서, 점포의 광목을 찢어 옆구리를 싸맨 함 사익이 쩔뚝거리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 춤의 쇠꼬챙이를 꺼냈다. 장춘호와 도 민수를 환생이 없는 영원한 어둠에 가둔 악독한 물건이었다. 함 사익은 쇠꼬챙이의 사악함이 몹시 흡족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늘 그래왔듯, 상대의 눈과 마주하고 심장에 흉기를 박는 것. 그는 굴복한 대상의 공포를 직시하는 희열에 중독돼 있었다. 이젠 우 상길은 저항하지 못할 무력한 존재였다.
“죽어서도 애비와는 다른 곳일 테니 상봉은 못 하겠구나. 좋아! 내 나중에 지옥을 가게 되면 애비도 보내주마, 그 간의 정을 봐서 해줄게.”
위로랍시고 떠버린 그의 악독함은 인간이 누릴 최소한의 죽음마저 속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가선 함 사익은 쇠꼬챙이의 끝을 그의 가슴에 겨눴다. 서푼의 힘만으로도 끝날 상황은 쇠꼬챙이 끝의 푸른 화염으로 시작됐다.
“크크-크-크!”
마지막 안간힘으로 허리를 비트는 그에게 기대했던 희열을 가진 함 사익의 만족스러운 웃음이 나오고, 쇠꼬챙이를 쥔 손등에서 힘줄이 불거졌다.
“탕!”
“헉!”
“탕! 탕! 탕!”
창졸간이었다. 함 사익의 턱을 관통한 총알이 후두엽의 뇌수를 터뜨린 순간, 한 단어를 연상한 눈동자가 부릅뜬 채 끝이 났다.
‘어..이.가 없...네?’
“크큭! 큭! 크하하! 아-하하하하!”
미친 듯 웃음을 터트린 상길이 지탱하는 글록 19 권총의 총구가 바닥을 찍고 떨렸다.
그는 가까스로 끈 다리로 쇠꼬챙이를 집어 쓰러지듯 함 사익의 가슴 위에 앉아 심장에 찔러 넣었다. 반쯤 들어갔다. 다시 한번 자세를 추스른 그는 상체를 실었다. 칼날의 손잡이가 닿았다. 눈물이 왈칵했다. 진정되지 않을 격정이 일었다. 비록 온전하진 않았지만, 미련이 남지 않을 삶이라 생각됐다. 벅수의 소멸은 어쩔 수 없어도 미래에 절대 선을 대신할 가디언, 오주희를 지킨 것만으로 위로됐다.
우 상길이 방어막 붕괴 직전의 결정은 함 사익의 살인 습성인 소위, 손맛을 반영한 것으로써, 상대의 눈을 감상하는 사이코패스 성향이었다. 만약 함 사익이 결계 밖으로 따라 나오질 않았다면 차원의 빙벽 안에선 오주희마저 절정의 그에게 당했으리라. 글록 19는 장인옥을 죽인 함 사익이 캐이런에 영혼을 잠식당할 때 떨어뜨린 것을 챙겼으나, 차원의 빙벽에선 쇳덩이에 불과했기에 결계 밖이 유일한 기회였다.
“네 말대로 무엇으로도 환생할 수 없는 어둠의 늪이 있길 바란다. 아니, 이것만은 캐이런을 믿고 싶구나.”
왠지 허허로움이 가득한 우 상길은 천장 유리 너머 달빛의 아련함 속에 죽는 것을 감사했다. 그리고 때는 곧이란 걸 알았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