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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ul 29. 2020

진수가 죽었대요

산다는 건... 꼭  내 눈 앞에 보여야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엄마아....


몇 년 전 대선 무렵.... 저녁식사 후 방에 처박혀 있던 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 진수가 죽었대요.... 진수가..

 

진수는 아파트 상가 2층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강 선생의  아들이다.  딸과 유치원 때부터  어울려 다니던 아이라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내심 정겨웠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본지 오래됐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원이며 학교며 입시에 치이다 보니 사춘기 즈음부터는 어디에서고 마주치기가 힘들다.


- 며칠 전에 강원도에 화재 났잖아요 거기서..


중학교부터 학교가 갈렸으니 딸아이도 얼굴 본지 오래됐을 텐데,  몇 마디 끝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다.  어찌 이런 일이.. 일단 같은 상가의 소식통 세탁소한테 전화를 돌렸다.  


- 혹시 2층  진수네 무슨 소식 못 들었어요?

- 왜요?  오늘 낮에도 강 선생이 애들이랑 왔다 갔다 하던데요?  평소랑 똑같던데.. 무슨 일 있어요?

그럼 그렇지... 갑자기 무슨...

생각만 해도 흉측해서 딸아이를 불러 호통을 쳤다.


- 아니래잖아  무슨... 그런 일이 있었으면 벌써 떠들썩하게 소문이 났겠지.


눈물을 훔치던 딸은 금세 얼굴이 밝아진 대신 휴대폰을 흔들며 억울해했다.


- 아이들 페이스북마다 진수 명복을 빈다고 올려져 있어요.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도 명복을 빈다고 쓰셨어요.


 머야 이건... 망설이다 진수 엄마 강 선생한테 전화를 했다. 대여섯 번  신호가 가도 안 받길래 끊었는데  10분 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 어머~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특유의 밝고  상냥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래 아니네....

- 음... 아니 머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진수..
 - 진수요? ㅋ 진수가 뭐요? 진수 잘 지내요~

차마 당신 아들 진수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을 하기도 미안해서  서둘러 끊고 다시 딸아이를 혼냈다.


요즘 애들은 장난이 너무 심해.. 사람 죽고 사는 걸로 장난치면 못 써.
카톡이랑 페이스북에 진수 죽었다고 올린 애들한테 당장 내리라고 해.
진수랑 진수 엄마가 보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니?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지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그렇게 심한 장난을 치면 되겠니?
그리고 진수가 뭣하러 강원도까지 가서 사고가 났겠니.
애들도 참..

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1시간쯤 후  막 잠자리에 누웠는데, 다시 들어온 딸이 머뭇거리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  준호예요.  준호가 엄마 좀 바꿔달래요 "

준호도 진수랑 같이 어울려 다니던 딸의 어릴 적 친구다.  

" 저 오늘 진수 장례식장 다녀왔어요. 진수 아빠는 동생들이랑 앉아계셨고 진수 엄마는 누워계셨어요..
내일이 발인이래요.... 진수 죽은 거 맞아요 아줌마..."

통화하는 옆에서 딸이 훌쩍거렸다.

다음날 오후, 세탁소가 사무실로 와서 어제 전화한 거 무슨 일이냐고 강 선생이랑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강 선생은 좀 전에 아이들 우르르 싣고 와서 2층으로 올라갔단다.  나야 주로 사무실 안에 있어서  들고나는 걸 모르지만 세탁소는 상가 입구 초입이라 누가 오고 가는지, 2층 미술학원은 몇 시 타임에 학원생이 제일 많은지, 피아노 학원 강 선생은 무슨 옷을 입고 왔는지 다 안다.


오늘도 들른 이유가 있다. 간밤에 내가 강 선생에 대해 묻는 전화를 한 것도 이유이지만,  강 선생이 또  관리비 계산을 잘못했니,  공과금을 제때 안내서  연체료가 나왔니~ 거품을 문다.
세탁소랑 강 선생은 앙숙이다.  늘 소소한 관리비랑 청소비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다른 상인들은  대충 넘어가는 걸 유독 두 사람은  분쟁을 일으켰다.

둘 사이에  분쟁이 나면 내 사무실로 와서 한바탕 하소연들을 하는데,  들어보면 대체로 2층 강 선생이 옳았다. 그래서 강 선생 편을 들어서  중재를 마무리하곤 했는데  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그동안 수도요금 단가 계산을 잘못해서 10여만 원을 손해를 봤니 어쩌니 하면서 한바탕 난리를 치길래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돌려보내고,  생각난 김에 봉투를 하나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내일이 발인이래요.... 진수 죽은 거 맞아요 아줌마...


준호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오늘이 발인이었다는데... 지금 시간에 2층으로 올라갔다면 서둘러 끝내고 온 것인가?  오늘 같은 날도 수업을 하는 것이 맞나?  살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걸까... 아니면 자식 앞세운 부모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어쨌든 위로하고 조의금이라도 전해주어야 할 거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조그만 아이들 두셋이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강 선생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까만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대뜸.

- 아니 근데 어제 진수에 대해 무슨 소문을 들으신 거예요?
- 음.. 아니 강원도 화재 난 데서... 안 좋은 일... 흠흠
- ㅎㅎ 아유 참내 무슨 그런 소문이 돌았을까  진수 잘 있어요 아무 일 없어요~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던 봉투를 끝내 꺼내지 못했다. 아니 무엇인가를 더 물을 수도 없었다.

실없는 사람처럼 꿈쩍거리다가  돌아서 나오는데  뒤에서  강 선생이 물었다.


참 유현이는 재수한다면서요. 공부 잘하고 있죠?


그래서 물었다.

근데 진수는 어디 학교 다녀요?

조금 주저하다 그녀가 말했다.
"강원대요....."

17년 전 부동산 사무실을 인수해서 이 상가로 왔을 때도 강 선생은 피아노 학원을 하고 있었다. 아들 셋을 키우며 억세게 살았다.  백수면서도 도박에  빠져 늘 사고만 치는 남편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시달리기도 하고.. 상가  보증금에 압류가 들어온 적도 있었는데  그때그때 위기를 넘기며 월세로 살던 집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밝고 씩씩했다. 아이 셋 키우며 열심히 사는 게 대견하고 예뻐서 동네방네 잘 가르친다고 홍보를 해주곤 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제버릇을 못 고쳐서 도박판을 전전하더니 결국 이혼하고 혼자 세아이를 키우는데.. 강 선생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진수가 내 남편이에요. 진수 보고 살아요."

그래서인지 집착이 강해서 진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고 있어도 1시간마다 전화해서 어디냐 언제 오느냐 하는 바람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마보이로 유명하다고 했다.  

대학도 부러 저 멀리  강원도 쪽으로 선택해 가서 기숙사로 들어간 진수는  친구들한테 이제 좀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고 한다.

다음날 슈퍼가 쫓아왔다.


"세탁소랑 강 선생이 싸움이 났어요!"


그동안 잘못 계산된 수도요금 10여만 원을 물어내라고 세탁소가 따지자 강 선생이 다른 때와 달리 막말을 하며 심하게 덤볐다고 한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강 선생이 나를 보더니 억울해서 못살겠다고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 강 선생이 옳다 강 선생이 맞다 돈 낼 필요 없으니 진정하고 그냥 올라가서 수업하라" 고 보냈다.


강 선생이 나가자 세탁소가 도끼눈을 떴다.
왜 부동산은 맨날 강 선생 편만 드냐고, 이번에는 정말 계산이 잘못됐다고...

"아니 그리고 돈 10만 원 잘못 계산됐다는데 그걸 가지고 뭘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친대요?  누가 죽기라도 했나 참내..."

나는 강 선생에게 주려고 했던  봉투를  세탁소에게 건넸다.

" 당분간 강 선생 좀 건들지 말아요.!"



'산다는 것' 이,   
꼭 내 눈 앞에 보여야만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함께 온종일을 붙어 있어도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대고  차라리 내 눈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다.  한순간도 잊지 못하건만 1초도 함께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떨어져 사는 사람도 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그립지만 내 눈 앞에 나타나 주지 않아도 그저 잘 살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삶도 있다.  내가 온전히 가지지 못해도 멀리서나마 손이 닳도록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관계도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의미가 없는 것일까

지금 나랑 함께 있지 않는다고 과연 없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이기적인 관념일 수도 있다.


우리 아파트 상가 2층에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강 선생이 있다.

씩씩한 그녀에게는 아들만 셋 있는데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큰아들 진수가 멀리 강원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지금은 어린 두 아들만  함께 살고 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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