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콩 Apr 30. 2023

나도 전세사기 공인중개사가 아닐까?


1~2년 전은 부동산시장에서 나름 호황기였다. 등락폭이 낮은 구축 20년 차 다소 외진 아파트인데도 집값은 정신을 쏙 빼놨다.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투자자들은 수도권으로 몰려들었고 수도권 요충지의 집값도 반등하자 다시 외곽을 뒤지기 시작했다. 2020년에 규제지역 지정이 잇따라 늘어나던 현상이 바로 그 반증이다.

조직적 투자클럽(?)이 전쟁 치르듯 휩쓸고 간 지역에는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감을 안은 개인 투자자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일시적인 현상이겠지 하며 관망하다 여느 때와 달리 상승곡선이 일정기간 유지되고 매스컴들의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지자

이러다 나만 하우스푸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젠 정말 아무리 안 쓰고 모아도 월급 가지고는 끝내 남의 집 살이만 전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진 부동산 소외계층이 하나 둘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구축 외곽인 이 아파트 단지도 연일 상승세로 인해 매물 품귀 현상이 일어났고 나날이 최고가를 경신했다.

사실 중개업 20년 차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기존의 부동산 상승기보다는 그 사이클이 조금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물이 나오기 바쁘게 계약이 체결되는 상황이라 중개사의 영업적 측면으로는 나쁠 게 없었지만, 왠지 편치 않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매물을 내놓는 매도인이

"유튜브랑 뉴스 보니깐 계속 오를 것 같은데 좀 더 있다 팔아야 할까요?"
라고 물으면,

 "계속 오르는 부동산은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오를 수도 있지만 하락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 하락기에 접어들지는 대통령도 모르고 하나님도 몰라요. 그러니 저는 더 모르겠어요."
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부동산 가격이 철저히 수요ㆍ공급의 원칙에 의해 좌우된다고 잘난 척(?)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이미 주구장창 읊어대던 그 주장에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였다.
왜냐면 말이다. 서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경기도 외곽까지 오르면서 집이 부족할 정도면 이건 수요ㆍ공급 차원이 아니잖아.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기엔 상승곡선의 주기가 너무 길잖아.

반대로 집을 사러 온 매수인이 집값이 얼마나 더 오를까라고 기대에 찬 질문을 던질 때도 나는 말했다.

"지금은 이 매물밖에 없어서 싸다 비싸다 말할 수 없지만 집값은 계속 오르지도 항상 오르지도 않아요. 부동산을 20년 해도 집값은 모르겠어요.
누구 말에 의존하기보다 본인이 신중히 판단하시는 게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요?"

물론 여우 같은 중개사의 보신주의적 발언이었다고 비판해도 수용하겠다.





 22년 6월 어느 날 그렇게 찾아온 사람이 K 씨였다. 그녀는 여러 차례 전화하여 전세 끼고 사둘 매물을 찾았다. 인근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며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는 그녀 옆에는 친구가 함께였다.

훗날 그녀는 말했다. 친구가 서울과 수도권 요충지에 갭투자를 하여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때마다 본인에게도 투자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먹고살기 급급했던 그녀가 엄두를 내지 못하던 차, 부동산 호황기가 오니 친구는 돈방석에 앉게 됐고, 반대로 본인은 동반상승해 버린 전셋값도 충당 못할 상대적 빈곤층이 되어서 결국 지금이라도 집을 사두자는 결심을 하게 된 거라고 했다.

당시에는 2020년 7월 말 시행된 <계약갱신요구권>이 딱 2년 차 되던 시점이라 전세매물이 귀해서 1.5 배선으로 급상승한 것은 물론, 대기자가 줄을 서 있던 상황이었다.

더구나 우리 지역은 인근 재개발 지역의 이동이 시작되던 터라, 만약 누군가 집을 사서 전세를 놓겠다 하면 거의 매매계약과 동시에 전세계약이 체결될 정도였다. 물론 매매가와 전세가의 갭 차이가 2000~3000만 원에 불과했다.

K 씨가 바로 계약하겠다는 걸 나는 하루 이틀 고민해 보고 오라 했고 며칠 후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원하던 금액에 전세입자를 맞춰주기로 했다. 역시 바로 전세입자가 나타났는데, 언제든지 이사 나가겠다고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세입자(거주자)가 갈 곳이 없어 만기일인 10월 말에 이사 나가겠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합의되었다. 월셋집을 구해나가야 한다는 세입자의 상황도 배려해 주기로 한 것이다.

어떤 배려는 어떤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입주기간이 길어지자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뜸해졌고 그 사이 부동산시장에도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결국 여름휴가철을 지나면서 매수세는 물론 전세입자의 이동도 현저히 줄었다. 매스컴에서는 거래절벽을 논했고 하락세가 감지되었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도 매매는커녕 전세 수요자의 발길이 뚝 끊어져서 중개사무소들도 개점휴업 상태로 돌입했다.

나 역시도 모든 매물은 순리대로 처리가 되었으나 K 씨 매물만은 숙제로 남았다. 하필이면 말이다. 생전 처음 친구 따라 투자를 하게 된 K 씨에게 이런 일이..

보통의 투자자들은 본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거나 하면 그걸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중개사를 원망하기도 하는데, 내 우려와 달리 K 씨는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그녀는

"그게 왜 중개사님이 미안해할 일이에요?
제가 사고 싶어서 결정한 건데요.
그래도 저는 다행이에요. 제 친구는 사둔 집이 1억 이상씩 떨어졌대요."

누굴 원망하기보다 뒤늦게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투자를 결정한 본인의 운을 탓하는 그녀의 착한 마음에 나는 아마 안도했던 것 같다. 이미 걸어둔 전재산인 계약금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대출이라도 받아 잔금을 치르려는데, 당시 대출규제로 부족분이 많다는 그녀의 걱정을 듣고 나는 망설임 없이 대납을 결정했다. 물론 이사 나가야 하는 세입자의 불안감도 해소시켜야 했으니까..

10월 말에 K 씨의 대출금과 나의 대납분으로 잔금을 치렀고 돈을 탈탈 털어 넣은 그녀는 중개보수 줄 돈도 없다고 다음 달 월급 때 주겠다고 했다. 수락했다. 사실 나한테는 중개보수가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중개보수의 수십 배에 달하는 대납금..

한 달 후 그녀는 중개보수의 50%를 송금해 줬다. 나는 그쯤 마음의 정리를 시작했다. 집값 동향으로 보아 원래 예정했던 금액으로 전세는커녕 매매도 힘든 상황인데, 수십 년 모아둔 목돈을 날리게 된 K 씨를 어쩔 것인가. 공인중개사가 공공의 적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대납한 순간부터 내 돈을 포기하고 있었다.

다 돌려받기는 틀렸고 일부라도 받으면 다행이고 한 푼도 못 받는 상황이 된다 한들 걸 가지고 K 씨한테 청구할 의지도 없었다. 돈이 없다는데... 그리고 그녀도 피해자 인 셈인데...

나는 나보다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냥 살던 대로 살지 왜  친구 따라서 막판에 뛰어든 거냐고..  

주변 중개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나를 만류했다. 무슨 소리야 니돈은 돌려받아야지. 네가 뭔 잘못이야. 포기하지 말고 최대한 돌려받고 부족한 돈은 민사로 받아내야지.

사실 바보는 나였다.

중개보수가 얼마나 된다고 잔금 대납까지... 연예인 걱정도 하는 게 아니라는데 무슨 투자자 걱정을 해. K 씨의 어렵고 난감한 상황에 지나치게 감정이입된 결과였다.

그즈음부턴 모든 계약에 의욕이 상실됐다. 수천만 원이 공중에 뜬 상황에 계약 한두건 해서 중개보수 몇십에서 몇백 받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포기하던 12월 중순경. 20평대 매매를 했더니 살고 있던 세입자가 월세를 구해달라 했다. 월세매물은 품귀현상이라 구하기 어렵다 했더니, 다음날 다시 전화하여 광고에서 보았다며 K 씨 집을 반전세로 조정해 달라 했다.

내심 솔깃하긴 했지만 근저당권이 있어서 반전세는 위험하니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좀 더 내는 게 낫다고 조언했으나, 그는 상관없다고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낮춰달라고 부탁했다.

이틀을 망설이고 있었더니 임차인이 왜 조율 안 해주냐고 독촉 전화를 했길래,  K 씨에게 전달했더니 동의하여 결국 반전세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날은 12월 25일이었다.
나는 착하게 살지도 않았는데 성탄절에 오랜 고통이었던 집을 계약하게 되었고 그렇게 묵은 시름을 덜고 새해를 맞을 수 있었다.

잔금은 1월 중순이었고, 나는 최소 50% 이상 손실을 각오했던 대납분을 모두 돌려받게 되었다.

사실 임차인의 안전을 위해 보증금을 낮춰 계약하면 내 대납분 중 일부만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세상사는 참 알 수 없다. 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의 요구로 내 손실이 줄어들었다. 내 손실이 줄어든 대신 임차인의 리스크는 늘어난 것이다.

잔금날 K 씨는, 그동안 돈 갚으라는 이야기 한마디도 안 하고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살고 있던 전세를 빼서 갚아야 하나 혼자 갈등했다고 하며, 50% 미납 중개보수와 이자조로 얼마를 더 계산하여 송금해 주었다. 나는 "이자는 필요 없다,  대신 세입자를 위하여 담보대출 이자는 연체하지 말아 달라!"라고 부탁했다.

K 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중개사님 제 첫 투자고 첫 집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집주인, 임대인이 된 거잖아요. 이자 잘 내서 좋은 임대인으로 살아보도록 할게요."

작년 6월경 매매 계약하고 올 1월 중순에 임차인이 입주하여 긴 장정을 끝낸 계약건이다.

그런데 그 뒤로 집값은 조금씩 더 하락하고 있다. 나는 가끔 K 씨를 생각한다. 그녀가 부동산 꼭짓점에서 없는 돈 끌어모아 집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아니다.

K 씨 집의 임차인이 리스크를 고지했음에도 임대료를 줄이겠다고 반전세 조건을 주장하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역시 나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간혹 내가 범죄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집값이 하락하니 매수인한테는 매매사기 공범자가 된 듯하고, 전세가가 하락하니 임차인한테는 전세사기 공범자가 된 듯하다.

그러나 집값, 전셋값을 올린 사람은 내가(공인중개사) 아니다.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진즉에 큰손이 되어 중개사 때려치우고 투자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었겠지.

집값, 전셋값을 다시 떨어뜨려 깡통전세를 만든 사람도 내가(공인중개사)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상승기에 집을 사고 전세로 입주한 세입자들 걱정에 잠 못 이루지 않겠지.

정책 변화와 경기 흐름으로 매매가가 하락하고 뒤이어 전세가도 하락하여 임차인이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하여, 그 책임마저 오롯이 개업공인중개사에게 돌리려는 듯한 사회분위기는 참으로 한탄스럽다.


그러면 고지식할 정도로 소심하고 원칙적으로 중개해 온 나를 범죄자 취급하고 잠 못 이루게 만든 책임은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