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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27. 2020

이 풍진 세상에  이런 임대인

시세보다 파격적인 매매가로 임차인에게 집을 넘겼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던  중년 부부가 85m²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여러 번 방문하였다.

현재는 59에서 15년 정도 임대로 거주하였는데 평수 좀 넓은 내 집을 사서 옮기고 싶다는 것이다.

집을 구입하러 와서 한 번에 이거다 하기는 쉽지 않다. 집이 맘에 들면 돈이 안 맞고 가격이 맘에 들면 다른 조건이 성에 차지 않는다.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하던 중 어느 날 본인이 살던 집을 인수하는 문제에 대하여 상담을 요청하였다.

15년 동안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로 거주하였는데, 임대인한테

'이집을 사서 이사 나가겠다'

는 의사를 밝혔단다.  임대인이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였냐고 물었고 아직 못 구했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집에서 오래 살았으니 이 집을 싸게 주면 인수할 생각도 있다' 라고 했다.

그냥 던져본 말이라고 했다. 어차피 좁아서 큰 평수로 옮길 계획이었고, 또 아파트 시세가 빤하니 임대인이 싸게 줘봤자 얼마나 싸게 주겠어 하는 생각이었다.  싸게 던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러다 결국 합의가 되어 그 집을 인수하기로 했단다. 임대인이 '아는 중개사무소가 있으면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하여 나에게 연락한 것이다.

매매가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아파트 매매가가 저렴한 한적한 동네이기는 하지만, 해당 아파트 급매 시세보다도 30%나 싸게 인수하는 것이어서 인수가가 전셋값에도 못 미쳤다. 아니 급전세 금액에도 못 미치는 쇼킹한 금액이었다.

"네? 진짜예요?  
진짜 주인분이 그 금액에 넘긴대요?"

" 아유... 뭐 우리가 그동안 군소리 없이 집 관리 잘하고 살았거든요. 그러니 그렇게 줄 수도 있죠 뭐.."

임차인은 2005년부터  15년 동안 월세 한번 안 밀렸고, 또 이것저것 고쳐달라 어째라 주인을 귀찮게 한 적도 없으니  고마워서 그렇게 해주는 걸 거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각기 다르다. '내 마음 같지 않다'는 말이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효하다. 숱한 임대인과 임차인을 보았지만, 거의 모든 임대인들은 본인들이 참 잘했다고 이구동성이다. 모든 임차인들도 본인들이 잘했던 것만 기억한다.  모두 다 둘도 없이 좋은 임대인들이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임차인들이다.

그래서 이사 나가는 날 볼멘 소리가 많다. '나같이 세입자 원하는 대로 다 해준 주인이 세상에 어디 있어'. '저는요 집 여기저기 문제가 많아도 다 알아서 고치고 살았어요. 다른 임차인들 같았으면 못 산다고 했을 거예요'

같은 사건이라도 서로의 기준과 개념이 다른 이다. 그러니 임차인이 오랫동안 월세 한 번 안 밀리고 집 관리 잘하며 살아줬다고 전세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양도할 확률은.... 현실적으로 0%에 가깝다.
실제로 임차인이 살던 집을 인수하는 경우도 많은데, 임차인한테 시세보다 저렴하게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 차액은 크지 않고 보통은 제3자가 구매하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다.

임대인이 시세를 알아보지 않았나?
아니면 서울 산다는데  서울 집값이 고공행진을 해서 이 동네 집은 집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던지는 건가...

1주일 후 잔금 시간을 정해 만나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임대인 부부는  수수하고 선하게 생긴 50대 초반 부부였다.  만나기 전에는 서울 강남쯤의 고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경기도 변방의  초라한 집 한 채 정도는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어서 그런 인심을 쓰는 건가 했는데,  언뜻언뜻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냥 평범한 맞벌이 부부일 뿐이었다. 더구나 현재 살고 있는 집도 본인 소유가 아닌 임대라고 했다.  

시세와 큰 차이가 나는 계약을 할 때는 조금 불편한 기류가 흐르기도 하는데, 분위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임대인 부부를 자주 쳐다보았다.

쌍방이 합의한 금액이긴 하지만 중개사로서 시세에 대해 어느 정도 고지는 해주어야 하나 아님 그냥 끝까지 모른 척해야 하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민이 머릿속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임차인한테 월세 계약서를 달라고 하였다. 잔금 정산일까지의 월차임을 일할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계약서는 낡고 빛이 바래 있었다. 2005년 4월에 입주하여 한 번도 계약갱신 없이 지금까지 자동연장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갱신이 없었다니!


15년 동안 월세시장은 변화가 많았다. 초반에는 등락을 반복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금리의 지속적인 인하로 인해 10여 년 전 시세의 20% 정도 하향조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예전의 월차임 조건이  현재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중간에 한 번도 갱신한 적이 없다면 월세는 당연히 현재 시세보다  높게 주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동안 월세 시세가 내렸어도 조정 없이 많이 받아서 싸게 양도하나부다..

그러나 계약서를 받아 든 순간 나의 추론은 또 한 번 산산조각이 났다.   
월세가 현재 시세의 60% 수준... 훨씬 비싸게 거래되던  여러 해가 있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임차인은 이 주택에 거주함으로 해서 해마다 수백만 원씩, 얼추 계산해도 거주해온 15년 동안 대략 6000~7000만원 정도의 이득을 본 셈이었다.

인근에 시세 한 번만 물어봐도 그 금액에 살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 나라도 이왕 세 놓는 것 시세껏 받고 싶었을 텐데... 

정말 무던해도 보통 무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야 진짜 대박이다  정말 눈먼 집이네...

임대인은 왜 시세를 한 번도 알아보지 않았을까..... 흠흠... 헛기침이 나왔다.


일처리가 모두 끝나자 임대인이 말했다.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 아파트 시세를 알려주셨는데 알아보니
정직하게 실제 시세를 알려주신 거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한 마음에 이 금액대로 넘겨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임대인이 시세를 알아보지 않았거나 시세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임차인은 당시 아파트 동일 평형 시세를 정직하게 전달하였고, 하지만 본인은 돈도 부족하고 하니 시세보다 많이 싸게 준다면 인수할 생각이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제시한 금액에 당황은 하였지만,  인터넷상 시세 조회와 주변 중개사무소에 문의한 결과 임차인이 전해준 시세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임차인이 싸게 사고 싶은 마음에 억지를 부리거나 거짓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사실에 감사하며 파격적인 금액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시세도 모르는 깜깜이 바보 임대인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고....



 임대인은 이 아파트를 분양받고 초반에 4년 정도 직접 거주하였다고 한다. 직장이 서울로 옮겨지면서 세를 놓고 이사를 간 것이다. 15년 전 전세로 이사 갈 때와 달리 지금 서울의 집값은 천지개벽할 만큼 변동돼서 해가 갈수록 내 집 마련의 꿈은 한낱 꿈일 뿐이라고 했다.  

주거환경이 급속도로 변해가면서 서민이 느끼는 위압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출된다. 어떤 이는 서울은 저렇게 오르는데 그 동네는 아직도 그게 뭐냐고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서울이 이리 올랐으니 거기도 언젠가는 따라 올라올 거예요 애써 기대를 품기도 하고,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본인이 느끼는 집 없는 설움을 또 다른 이가 느끼지 않도록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선의를 베풀기도 한다.  

중개업 17년 동안 이렇게 욕심 없는 임대인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단지 다 만나보고 경험하지 못하였을 뿐... 돈에 인색하지 않다고, 돈에 욕심내지 않는다고 꼭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쩌랴... 이 사회는 갈수록 돈이 전부인 세상으로 되어가고 있고 돈이 진리고 돈이 인심이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언제부터인가 집이 그냥 집이 아니고 투기의 대상이며 한탕주의의 보루가 되었다. 정부는 소유자가 직접 거주하지 않고 임대를 놓는 집은 전형적인 투기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다. 갭 투자를 차단하기 위한 갖은 정책,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부동산 대책들로 인하여 부동산 시장이 어지럽다. 물론 집값 상승을 신분상승의 기회로 삼는 극단적 투기꾼들 책임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집은 그냥 집일 뿐인 국민이 대다수다.  

집은 그냥 집이었으면 좋겠는, 언제 오를까! 정말 오를까! 얼마나 오를까! 언제까지 오를까!

계산하고 오매불망하지 않는 그냥 집이었으면 좋겠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나는 그런 집을 중개한 것이다.
그리고 보았다. 이 풍진 세상에 이런 임대인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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