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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ul 30. 2020

고3 아들에게 가르쳐준   '잡념을 없애는 방법'

상상실험 사고실험 그리고 형상화

고3 수험생 아들이 기숙사 뒤뜰에 쪼그리고 앉아 전화를 했다.


" 엄마..... 공부해야 하는데 자꾸 잡념이 생겨요. 아무리 생각 안 하려고 해도 머릿속에 온갖 잡념이 떠올라요."

세상에 수험생만큼 고달픈 인생이 있으랴... 또 수험생 자식의 전화만큼 조심스러운 통화가 있을까...
집을 떠나 머무는 삭막한 학교. 창문마다 회벽마다 경쟁과 강박의 시선들이 묻어있는 숨 막히는 기숙사 뒤뜰로 탈출한 아들의 요구는 평범한 아줌마인 엄마에게  너무 무리했다.  

" 잡념을 없애는 좋은 방법이 없나요?"

말문이 막힌다. 잡념이 사라진 머릿속이 있을까.  통화하는 순간에도 숱한 잡념들이 뒤엉켜 내 사고를 지배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런데 답을 해줘야 한다. 아들은 대화가 필요할 땐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답이 필요할 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한번 전화하면 답을 찾을 때까지 끊지 않았다. 마침 잠시 사귀던 여자 친구한테 수능 후에 만나자고 통보한 상태라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운 듯했다.

'잡념을 없애는 방법이라.....'

잡념이 올라오면 손으로 꾸욱 눌러.
몸에 상처가 나서 피가 배어 나오면 휴지로 꾸욱 누르듯이~
몇 번 눌러 닦다 보면 피가 멈추고 딱지가 앉잖아.
잡념이 떠오르면 눈을 감고 상상 속의 손을 만들어서 그 잡념을 꾸욱 눌러.

운동하고 난 후에 몸에 땀방울이 생기면 수건으로 꾸욱 누르듯이~
몇 번 땀을 닦아내다 보면 몸의 온도가 식어서 더 이상 땀이 안 나잖아.

아들은 말이 없었다.

"너 형상화가 뭔지 알지?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상상 속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거."

마침 언젠가 읽은 책 내용이  떠올라주었다. 형상화와 사고실험.  어떤 물리학적 상황을 실제로 형태가 있는 것처럼 보고, 느끼고, 조작하는 상상. 말 그대로 머릿속에서 상상만으로 하는 실험이다.

상상실험, 사고실험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 이유는 실제로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면 여러가지 오차나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만 굳이 그럴 거까지는 아니어서 (내가 이해하기에는) 상상만으로 실험을 재현하여 원하는 결과, 의도했던 결과를 도출해내기만 하면 족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너도 사고실험을 하듯이, 잡념이 어떤 벌레나 땀이나 피나 아니면 어디선가 굴러와 머릿속으로 들어온 공이라고 상상하고  그걸 꾸욱 누르거나 닦아내거나  밖으로 집어던지는 시늉, 상상을 해봐.

사람의 관념, 사고만큼 강력한 것은 없단다. 관념은 대단한 놈인데 이것이 생각했던대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사람 각자가 가진 의지야. 의지가 강한 사람은 생각만으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상상했던 것을 현실로 만들 수가 있어.  너는 할 수 있을거야.  


잡념을 구체화된 형상으로 만들어서 보기 좋게 집어 던져버려!

두더지 잡기 게임해봤니?
올라오는 놈마다 망치로 소리 쿵쿵 나게 눌러. 그러면 곧 타임 오버될 거야.

" 아~~~ 알았어요. 이제 끊을게요."

그렇게 수능도 끝내고 고교생활을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이 말했다.

고교생활 동안 엄마랑 대화하다 보면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가 됐어요. 가장 좋았던 상담'잡념을 없애는 방법'이었어요.

공부를 하다 잡념이 생기면 멈춰서 눈을 감고  손으로 머릿속의 그 잡념이란 놈을 꾸욱 누르는 시물레이션을 하고 그래도 안 없어지면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다른 일에 잠시 몰두했어요. 잡념을 무시하는 전법이죠 ㅎ 처음엔 힘들고 시간이 걸렸지만 자꾸 반복하다 보니 잡념이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지고 공부에 집중이 잘됐어요.  

반 친구들에게도 알려줬어요.  어떤 친구는 실패했지만 어떤 친구는 성공했대요.

마인드풀니스 명상법이란 것이 있다. 스트레스로 뇌가 피로해지거나 잡념이 떠오를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밖으로 내보내는 상상을 하는 명상법이다.  아들 녀석처럼 머릿속에 원하지 않은 불편한 생각이 끼어들면 그것을 바로 밖으로 내보내서 맑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론을 읽은 바 있고 아들한테는 궁색하게나마 요령 있게 설명을 해줬지만 내 머릿속의 잡념을 없애는데 활용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들이 일종의 사고실험을 통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그것 자체를 반성했다.

역시 아이들은 대단하다. 너희들은 모든걸 직접 해내는구나..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모두 내게 행복을 주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때때로 불필요하고 정신적 피로를 주는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내맘대로 잡념을 없앨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머릿속에  침투한 모든 것들을 내 스스로 관리하다가,  

어느 날은 한결 가볍고 어느 날은 한결 충만한 상태를 선택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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