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콩 Oct 24. 2022

내 친구 미순 씨가 집을 샀는데...

3년 전에  미순 씨가 집을 샀다.

그녀와의 인연은 나름 거슬러 올라간다.

9년 전에 아파트 월세를 구하러 방문하여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어느 날 호박 부침개를 만들어 가져와서


 "나랑 동갑이지? 친구 하자!"


라고 해서 얼결에 친구가 되었다.

결혼이 많이 늦었는지 유치원생 잘 생긴 아들을 두고 있었다.      


나는 친구를 쉽게 사귈 정도로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녀의 붙임성은 마음에 들었다. 친구 하기로 했어도 우린 자주 만나거나 함께 밥을 먹거나 사적인 수다를 떠는 그런 평범한 친구는 될 수 없었다.       


나는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서 애초 의뢰인으로 만나 친구가 된 상대와 편하게 나눌 소재거리 찾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바빴다. 3교대 근무를 하느라 밤과 낮이 바뀌어서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보증금이 적은 월세로 거주하고 있었는데 월세를 자주 밀리다가 임대인의 요구로 이사 나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인근 아파트 월세를 구해달라고 해서 집을 찾아 옮겨주었는데, 다시 2년이 지난 후에 찾아와 집을 구해달라고 해서 또 옮겨주었다.


그녀는 착하고 밝고 정겨웠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착하고 성실한데 왜 저렇게 돈이 모이지 않을까 안쓰러웠다. 그러던 중 3년 전 방문하여 "이제 돈이 좀 생길 것 같으니 집을 사달라"라고 했다. '잘 됐다 그래 이제 정착해야지' 하고 마침 올수리에 급매인 집을 가격조정까지 하여 계약시켰다.


그런데 잔금 날, 잔금도 겨우겨우 치르더니 중개보수 줄 돈이 없다고 했다. 내일 줄게... 해서 알았다 하고 보냈다


그런데 내일이 돼도 모레가 돼도 연락이 없었다.

2주를 기다리다가 문자를 보냈는데 묵묵부답이었다.


그 사이 우리는 너무 자주 부딪쳤다.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다 마주치기도 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다가 마주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 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내 웃음도 어색했을 것이다.


예전엔 3교대 근무로 얼굴 보기도 힘들더니 요즘은 왜 이렇게 자주 부딪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런 궁금증에 관한 이야기도, 중개보수 이야기도 뻥긋도 못했다. 왜냐하면 항상 그 잘생긴 아들이 옆에 딱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빌려준 사람보다 빌려간 사람이 다리 못 뻗고 잔다는 말이 있던가..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부딪칠 때마다 나는 얼떨결에 어깨를 툭 칠 정도로 반가운데 그녀는 난감해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사심 없이 반가워할수록 그녀는 그 상황이 더 괴로운 듯했다. 망할 놈의 중개보수...   

 

그러다 어느 날 미순 씨가 전화를 했다.


미안해. 코로나 때문에 회사가 휴업해서 돈이 없어. 생활비도 부족해.


뭐 어쩔 수 있나 알았다고 했다.  손님이 중개보수를 안 줘서  지급명령 소송을 한 게 한 번인가 있는데, 왠지 미순 씨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린 친구 먹기로 했으니까..


그러다 올 3월에 아파트 단지 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다 보니 옆 자리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나는 얼결에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녀는 예의 그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집을 사기 전에는 친구 먹자 해서 친구를 먹었었는데 집을 산 후로는 그놈의 중개보수 때문에 지나가는 옆집 개보다도 불편한 사이가 되다니....


염색약을 바르고 뒤쪽 소파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중개사님. 요새 집 값 많이 올랐죠?"


라고 묻길래,


"네~ 많이 올랐어요. 1억 정도가 올랐네요.."


친구 먹었던 그녀가 거울 속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거울 속으로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뻐끔뻐끔했다. 너네 집도 1억 넘게 올랐어. 잘됐지? 집 사길 잘했지?ㅎㅎ


이틀 후 중개보수의 절반이 입금되었다.


그리고 다시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오후에 나머지 절반이 들어왔다.  

나는 3년 전에 집 사준 중개보수를 3년 후에 겨우겨우 받았다     


친구에게 고맙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나는 생각했다.

코로나가 끝나가서 다행이다. 미순이네 집값이 올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니 이제 우린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돈이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