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는 기억의 왜곡!
"1000만 원이 더 갔어! 그때 분명히 수표 2장을 들고 왔거든 내가"
1년 전에 주택을 매수한 노부부가 찾아왔다.
매매계약 시에 계약금으로 수표 2장을 지급한 것 같은데, 당시의 서류를 뒤져보니 수표 1장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려 1년이나 지나서 1000만 원이 더 지급됐으니 돌려달라는 주장.
결국 노부부를 모시고 수표 발행 은행을 방문했다. 계약 당일의 수표 발행 내역을 조회하였더니 계약서에 적힌 대로, 1000만 원권 수표 1장이 전부였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미안해~ 나이 먹어서 정신이 왔다 갔다 하나벼"
부동산 거래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이런 해프닝이 자주 벌어진다.
복잡한 제도와 잦은 법 개정 속에서, 사람들은 현실을 단순화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억의 왜곡'은 이제 부동산 거래 분쟁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5월 중순 어느 날 2년 전에 집을 팔고 나간 매도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도세가 비과세라고 믿고 팔았는데 고지서가 날아왔다는 것이다. 세금 낼 돈도 없는데 가산세까지 붙어 1000만 원 가까이 나왔다며 한탄을 했다. 그날 오후, 매도인의 자녀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중개사가 양도세 설명해줘야 하는 거 아시죠? 그래도 고생하셨으니... 가산세 200만 원만 부담해 주세요!"
헐~
공인중개사한테는 양도세 설명의무가 없는데 왜 가산세를 부담하라고 하느냐 했더니, 중개사한테도 양도세 설명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있다며 캡처본을 보내주었다.
확인해 보니 이미 알고 있는 판결.
< 통상 매도 의뢰인에게 있어 주택의 매도로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지 여부는 매도여부 및 매도가격을 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피고로서는 원고가 보유 기간 2년 도과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이기 때문에 이 사건 아파트를 매도하게 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고
더구나 원고로부터 이에 관한 확인까지 요청받았으므로 잔금 지급일을 정하기 전에 원고로 하여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세무사 등에게 정확하게 확인하도록 하거나 스스로 이를 확인하여 알려주어야 함에도 이에 이르지 아니한 채 잘못된 세무지식에 기초하여 잔금지급일을 보유기간 2년 내로 정하여 매도를 중개함으로써 원고가 예상치 못한 양도소득세 등을 납부할 수밖에 없게 되는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신의를 지켜 중개행위를 할 계약상의 의무를 위반한 자로 원고에게 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사정에 비추어 보아 피고의 책임은 30%로 제한하기로 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가단 5110987 판결-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중개대상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함에 따라 부담하여야 할 조세의 종류와 세율을 확인하여 이를 중개의뢰인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반대로 중개대상물을 처분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는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면 민법상 위임관계에 따라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그 "특별한 사정"이라는 것은,
예를 들면 양도세 때문에 집 팔기를 주저하는 매도인에게 '비과세니 걱정 말고 계약하자'라고 적극적인 부추김을 하였다든가, 양도세 세율을 잘 못 알려줘 피해를 입혔다든지 하는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사정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위 2017 가단 5110987 판결의 사건 개요를 살펴보면,
-A 씨(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무주택자였던 2014년 5월 14일에 중개사 B 씨(소송당한 피고)에게 아파트를 매수하여 2014년 8월 27일에 잔금 및 소유권이전등기를 완료하였다. 당시 중개사 B 씨는 "2년 지난 후 양도세 면제받게 된 때에 원하면 매도해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A 씨는 2016년 6월 1일에 B 씨에게 해당 주택을 매도의뢰하였고 당시 외국 출국 때문에 잔금지급일을 촉박하게 잡아야 해서, 중개사 C 씨에게 "2년이 넘으면 양도소득세를 안내는 것이 맞느냐"라고 물었고 C 씨는 "안 나오는 게 맞다, 그러나 자세한 세무 관련 사항은 세무사에게 물어봐야 한다."라고 답하였으나 둘 다 세무사에게 확인하지 않은 채 잔금일을 2016년 8월 9일로 정하여 소유권을 넘겼다.
(보유 2년 차가 되려면 2016년 8월 27일 기한을 넘겨야 하나 20여 일 차이로 2년 기간을 채우지 못한 것. 추측이지만 중개사 C 씨는 보유기간을 계약 일로부터 계산한 게 아닐까 싶다. 소유권 등기 시부터 양도일까지 계산하여야 하는데 말이다.)
결국 1년 후 양도세가 부과되어 소송이 제기되었으며 중개사 C 씨에게 30% 손해배상책임이 부과되었다.
이 사건 손해배상 책임 부과의 근거는,
A 씨가 양도세 비과세가 된다고 믿고 이 아파트를 매도하려 하는 것을 중개사 C 씨는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또 이에 관한 확인까지 요청받았으므로 잔금 지급일을 정하기 전에 전문가인 세무사에게 정확히 확인하게 하거나 스스로 확인하여 알려주었어야 하는데, 잘못된 세무지식에 기초하여 잔금 지급일을 보유 기간 2년 내로 정하여 손해를 입혔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데 이 판결문을 근거로 나에게 양도세 가산세 부담을 요구하다니!
매도인의 자녀는 아마도 이 판결 내용을 단순하게 이해하여
- 중개사는 매도인이 묻지 않더라도 모든 매도 물건에 대해 비과세가 아닐 수도 있으니 정확한 세무 상담을 해본 후에 매도 의뢰를 하라고 적극 권유했어야 한다! - 고 단순화해 확대 해석했다.
즉, 취득세처럼 양도세도 중개사가 정확히 확인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오인하고 있는 것!
200만 원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틀 후 50만 원으로 감액하여 요구하였으나 역시 거절하였다. 정말 양도세에 대해 잘못 상담했다면 50만 원이 아니라 500만 원이라도 보태주어야겠지만, 기억에도 없는 부당한 사건의 비용을 지급할 수는 없었다.
결국 거부하자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였고,
절차에 따라 관련 자료와 소명서를 제출한 결과 문제없이 종결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하였다.
이 매도인은 집을 내놓기 전부터 3~4차례 방문하여 양도세를 물었다. 중개사는 양도세 설명을 못한다고 하고 세무사 번호를 알려줬지만 아랑곳없이 두세 번 더 찾아와서 양도세 계산을 해달라고 했고 그때마다 일관된 답변을 하였다.
2년 후 집을 팔았고 잔금 및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다.
잔금 날 아침, "양도세 신고도 알아서 해주죠?"라고 하길래, "양도세 신고는 세무사에게 의뢰하셔야 하고 양도한 달의 말 일부터 60일 이내에 신고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더니 세무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세무사를 연결해서 양도세 신고까지 마무리됐는데, 다음 날 다시 찾아왔다. 양도세가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것!
그러면서 하는 말, ‘매매계약을 한 후 구청에 가서 양도세에 대해 물었더니 공무원이 양도세는 1%라고 계산해 줬다. 그런데 왜 15%가 나오냐’고 황당한 항의. 구청공무원이 취득세를 설명했겠지 왜 양도세를 이야기했겠느냐고 해도 양도세가 맞다고, 공무원이 양도세는 1%라고 했는데 중개사는 왜 그걸 취득세라고 하고, 중개사가 소개한 세무사는 왜 양도세를 15%나 부과시키냐고 화를 냈다.
어느 공무원이 양도세가 1% 나온다고 계산을 해줬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며칠 후 세무사를 통해 세금내역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을 들은 후 착오를 인정하고 마무리되었다.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는 기억의 왜곡은 종류가 다양하다.
때론 모든 공인중개사를 매도하여 억울함을 안겨주지만, 그 뒤안길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다수 공인중개사들의 진정성이 밟히지 않도록 합리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중개 과정의 모든 책임을 중개사에게 묻고 싶을 만큼!, 부동산 거래 시의 모든 일을 중개사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요구할 만큼! 개업공인중개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한 번쯤은 공인중개사가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안전한 거래를 주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보완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