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사의 천태만상 현장일기(40)

블루베리의 추억

by 양콩

8년 전쯤 인근 아파트 소형평형 전세가 나왔다.


계약 시에 보니 임대인이 50대 후반의 여성분이었는데, 인근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블루베리 여사는 인근 아파트를 두채 소유하고 있었는데, 첫 계약을 성공시킨 후부터는 그녀 매물은 쉽게 계약이 되었다.


어떤 집은 꼭 계약하고 싶어서 열심히 광고하고 수십 번 들락거려도 안되는가 하면, 또 어떤 집은 한두 번 만에 쉽게 계약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쉽게 계약이 연결된 의뢰인과는 나름 잘 맞는 인연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녀는 계약 시나 잔금 시에는 블루베리를 들고 올 때가 많았다. 여름에는 막 따온 싱싱한 블루베리, 다른 계절에는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블루베리.


여름철 블루베리 계절이 되면 자꾸 전화해서 농장으로 와라 싱싱할 때 따먹으라 했고, 그러면 가서 몇 팩을 사다가 주변에 나눠주곤 했다.


또 블루베리 따느라고 식사 못해서 배고프다고 전화하면 빵을 사다 준 적도 있고, 농기계를 사려고 버스 타고 왔다며 농장까지 태워다 달라하면 바쁜 시간 쪼개 운송서비스까지 했다.



어느 6월.. 계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블루베리 여사가 들어오더니 손님들한테 블루베리를 사라고 영업을 하는 게 아닌가?


계약 중이라고 눈짓을 해도 '막 딴 블루베리가 더 좋니 어쩌니' 집요하게 영업을 해서... 결국 매수인이 10킬로를 구매했다. 그녀는 블루베리 팔았다고 신이 났지만 나는 어이가 없었다.


손님이 돌아간 후에 냉랭한 표정을 지었더니


"아유 당신은 정말 까칠해... 내가 아까 블루베리 팔면서 얼마나 눈치가 보이든지 으구... 융통성이 없어가지고..."


하며 혀를 툴툴 차고 갔다.


다음 날 출근하니 사무실 창에 '블루베리 판매'라고 붙어있고, 블루베리여사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흠.... 흠... 참자.. 뭐 블루베리는 한철이니까....


며칠 후 블루베리 여사가 전화를 해서 말했다.


"OO부동산이 와서 블루베리 싹 쓸어갔어. 통도 크더라고.. 그러면서 집 팔 생각 없냐고 묻대... 아유 당신도 그런 멋좀 배워. 영업은 그렇게 하는 거야~"


한 달 후 블루베리 여사 소유 아파트의 만기가 된 임차인이, 보증금을 증액하고 재계약서를 쓰게 됐다. 나는 그날 오후 큰 행사가 있어서 많이 예민하던 상태였다.


재계약서를 다 쓰고 나서 임차인이 중개보수가 얼마냐고 묻자, 블루베리 여사가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아이 중개보수는 무슨... 여기 중개사님이랑 나랑 잘 아니까 수수료 안 줘도 돼요."


라고 하면서 임차인을 등 떠밀어 보냈다. 사실 이 블루베리여사 계약 때마다 중개보수를 다 준 적이 없고, 항상 깎거나 블루베리로 대신했다.


임차인을 보내고 난 뒤에 블루베리여사가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행사 건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데다, 중개보수를 밥으로 퉁치려는 게 못마땅해서 거절했다. 두 번 정도 더 권유하는 걸


"내가 지금 속이 안 좋아서 점심을 못 먹을 상황이니 다음에 먹기로 해요"


라고 돌려보냈다.


그러고 나니 직원이, 조금이라도 먹자고 자기는 배고프다고 조르길래, 내가 안 먹으면 직원 혼자 먹기 애매하지 싶어서 식사를 배달시켰다.


막 한 숟가락을 뜨는데... 블루베리 여사가 불쑥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밥숟가락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 표정이 변하더니...


"나랑 밥 먹는 게 그렇게 싫었어? 나한테 어쩜 그러니?"


하면서 문을 꽝 닫고 가버렸다.
그리고 그날밤에 문자메시지로 섭섭하다 기분 나쁘다.. 사람 그렇게 안 봤다 등등,,, 사랑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밤새 귀찮게 하길래.,


나는 그녀를 버리기로 했다. 블루베리가 한철이듯 우리의 인연도 한철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가 그다음 해 블루베리 철이 되자, 그녀에게서 다시 블루베리 사라고 문자가 왔다.


이제 풀렸나?


해서 인근 중개사들 끌고 가서 블루베리를 보따리보따리 사들고 왔다.


그러나 그해 그 집 임차인이 만기가 되었다고 연락했길래 블루베리 여사한테 전달하려고 했더니, 전화를 안 받았다. 수신 거부... 문자 보내도 씹었다.


흠... 다시 버렸는데...


작년 여름 블루베리 철이 되자 또 문자메시지가 왔다.


블루베리 사세요.

1kg에 0000원 10kg에 0000원.


중개도 영업이고, 이 바닥에서는 나름 산전수전 이골이 난 "업자"인데, 블루베리 업계(?)는 못 당하겠다. 하하하


사람도 때로는 과일 같다. 막 따올 때는 신선하고 달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맛도 향기도 어느새 달라진다. 그래도 우리는 언제그랬냐는듯이 해마다 계절 과일을 찾는다. 과일은 역시 제철 과일이 최고라고 되뇌면서..


나도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람도 과일처럼 맛과 향이 변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제철 과일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그러니 해가 바뀌어 시절이 오면 다시 기대를 가져보자고..


이제 다시 블루베리 계절이 돌아온다


그래, 한철의 과일일지라도, 그 여름의 한 장면만큼은 달콤했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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