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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26. 2020

내가 곧 5억이 생겨!

신도시로 이사 가고 싶은 석이와 석이 할아버지

" 몇 달 전에 신도시 쪽  집 보셨던 할아버지가
오셨었어요. 꼭 대표님이랑  같이 집 사러 가야 한다고..."

그리고  이틀 후 석이 할아버지가 오셨다.

" 내가 말일쯤 한 5억이 생겨. 이번엔 확실해요. 그러니 신도시 쪽 집 좀 다시 보여줘요.
가격 너무 깎지 마. 돈 여유 있어요. 말일에 5억 먼저 들어오고 그 담부턴 연짱 들어올 거니까.."

신도시로 모시고 가서 매물 몇 개를 보여드린 후 간단히 점심도 사드리고 돌아왔다. 가는 길, 오는 길, 그리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말일께 들어온다는 5억 이야기로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다.

" 이번 일 같이 하는 김이사는  나한테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어. 그래서 요번에 외국 바이어랑 수백억짜리 계약을 하게 되니깐 내 덕분이라고 5억부터 준다는 거야. 다른 사람은 나중에 주더라도 형님부터 챙겨드린다고 우선 5억 넣어주고 바로 나머지도 주겠대. 이제 이사 갈 수 있다고 하니까 석이 놈도 좋아 죽겠대"

연 이틀을 모시고 다녔다. 고맙다고 돈이 들어오면 계약하러 오겠다고 하셨다.
말일쯤 실장님이 물었다.

- 석이 할아버지 연락처 좀 주세요~


- 왜요?


- 오늘쯤 돈 5억이 생긴다고 하셨으니
연락해봐야겠어요. 본 집들 중에  골라서 계약도 해야죠

- 안 해도 돼요!

- 왜요?  연락하신 거예요?

석이 할아버지는 70대 중반의 어르신인데, 할머니랑 같이  손주를 키우고 계신다.  그 손주 석이가 우리 아들놈이랑 같은 학년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1,2등을 번갈아가며 했다.

인연으로 따지면 더 거슬러 간다.

단지 내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들놈이 다쳤다고 연락이 와서 가보니 뒤통수가 조금 깨졌다. 부랴부랴 병원에 데려가서  꿰매고 왔더니 사무실로 웬 할머니가 쭈뼛쭈뼛 들어섰다.

우리 석이가 현이를 책상 위에서 밀었다네요. 아유 죄송스러워서 어쩌나...

두 녀석이 어린이집 책상 위에 올라가서 놀다가  석이가 장난결에 아들놈을 밀어서 넘어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상처가 심하지 않고 또 애들 놀다 그런 거니 괜찮다고 해도 연신 미안해하셨다.  

그리고 3일 후, 석이 티셔츠를 사러 나갔다가 현이 것까지 사 왔다며 들고 오셨다.  그 뒤로도 석이 주려고  샀는데  현이한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바지며 운동화를  들고 오기도 하셨다.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뭔가 드리려고 하면 한사코 거절하셨다.

남은 인생을 손주 석이를 위해서 사는 것처럼 보였던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인물도 좋고 풍채도 좋은 호기로운 분이지만,  변변한 직업을 가진 적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한번 이렇게 말씀하신  적은 있다.

" 현이 엄마같이 요렇게 조그만 거  아파트 상가 이런 건 안 하고 나는 엄청 큰 껀을 해요. 한껀만 하면 몇억씩 떨어져~"

가끔씩 좋은 토지 물건 있느냐~ 큰 손님이 있다~ 고 하시는 걸로 봐선
어느 중개사무소에서 똠방을 하시는 건지....
그러나 한 번도 일로 엮인 적은 없다.  아니 또 진짜로 중개 관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석이랑 현이가 소꿉친구인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오다가다 안부인사라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쨌든 할머니가 가내 부업을 하며 푼돈을 모아 똑똑한 손주 뒷바라지를 다.  2~3일에 한 번씩 부업 보따리를 이고 나가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마주치면 할머니는 손주 자랑을 하면서도, 에미 없는 자식이라 기죽을까 걱정된다며 마무리는 항상 눈물바람으로 끝냈다.


할머니는 돈을 많이 벌어서 신도시로 이사 가고 싶다고 하셨다.  석이가 다니는 학원이 그곳에 있고, 또 ○○고로 진학할 예정이어서 학교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 나가고 싶다고....
이곳 아파트와 달리 신도시 아파트는 분양가부터가 달랐다.  몇백 원짜리 부업으로 언제 아파트 옮겨갈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아들이 석이 할머니의 부고를 알렸다. 석이 할머니는 수십 년을 쭈그려 앉아 종이 붙이는 부업을 하다가 치질이 생겼는데, 간단한 치질 수술하러 입원했다가 그만 의료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다.

할아버지가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부터였다.


곧 돈이 생긴다고~ 곧 큰 계약이 이루어진다고~ 신도시 ○○고 근처에 집을 구해달라고~

그때마다 모시고 다녔다.

실장님이 도끼눈을 떴다.

- 아니 그러면 한두 번이 아니었단 거예요?  
  그 할아버지 거짓말 치시는 거예요?

- 거짓말은 아니겠지.. 단지 뜻대로 안 되는 거겠지..

- 그럼 다른 손님은 저를 보내시면서 석이 할아버지 집 보는 날은 왜 직접 다니셨던 거예요?

-  못 사실 걸 아니까  실장님한테 미안해서지.  그리고 집 내놓은 매도인들한테도 미안하니까 실제론 아파트 주변 환경, 시세, 동, 층 위치만 대략 보여드리고 오는 거예요. 돈 입금되면 내부는 그때 보자고 말씀드리고...


하나 있는 아들이 결혼에 실패하자  갓난아기를 강보에 싸서 현관 앞에 두고 사라졌다. 할머니 눈에 피눈물이 흐르고, 손주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부업이며 뭐며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할머니만큼 일일이 내색은 안 해도 할아버지 마음이야 오죽하셨을까... 평생 번듯한 직업을 가져본 적도 흡족한 봉투를 내밀어본 적도 없는 초라한 가장인데,  그나마 금지옥엽 외아들이 결혼에 실패하고 사라지니 반딧불 같은 희망은 핏덩이 손주에게로 향했다.


돈 많이 벌어서, 단단히 한몫 잡아서 석이 저놈 눈에 피눈물 안 나게 해 줘야지.

'요놈아 너는 이 할아버지만 믿으면 된다!'고 큰소리치며 한몫 잡을 날만 기다리는 할아버지... 그 허세의 그늘에서 속울음 삼키며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할머니마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랑 손주만 남았는데...


아들은 소식 없고 할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하나 남은 피붙이 손주놈이 학교 앞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하니, 할아버지는 석이가 언제 이사 갈 거냐고 보채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동산으로 오셨다.


할아버지가 집 보고 올게....

핏덩이 때 버려져 부모 얼굴도 모르는 불쌍한 손주놈이  학교 앞으로 이사 나가자고 성화를 부리는데,
평생 고생만 하다가 겨우 치질 때문에 어이없이 사라져 간 할머니 소원도 손주놈 학교 앞으로 이사 가는 거였는데,

70대 노인에게 만만한 세상이 아니었다.

아들이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석이는 자기가 엄마 없는 걸 사람들이 다 아는 이 동네에서 살기 싫대요.
그래서 이사 가고 싶대요.
석이가 너네 엄마는 맘대로 집을 사고 파는 분이니까
우리 집도 하나 사주라고 하면 안 되냐고 했어요"

맘대로(?) 집을 사고파는 직업을 가졌지만  석이에게 새 집을 사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큰소리치는 것밖에 모르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등 떠밀려 집을 나서실 때, 잠시나마 동행해드릴  수는 있었다. 내 아들놈 친구 할아버지를 위해 그런 거라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잊어먹을만 하면  한 번씩 오셔서

"내가 곧 5억이 생겨. 이번에는 진짜야. 햐 그동안은 이것들이 약속을 안 지켜서 내가 현이 엄마한테 실없는 노인네가 됐는데, 이제 드디어 해결이 됐어.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중개보수도 많이 줄게. 곧 5억이 입금될거야!"

라고 하실 때마다 나는 여전히 건강하신 걸 확인하고 안도한다. 그리고 석이가 잘 있는지 안부도 물을 수 있어서 좋다.

부디 남은 여생에도 그 허세 잃지 않고 큰소리치며 살다 가시기를~
그 호기로 기운 내셔서 불쌍한 놈 석이가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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