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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pr 18. 2021

Y아파트  108동 1003호

장례식장.
영좌에서 물러나 맞절을 하고 바로 서니, 상주가 누구시냐는 눈빛을 보냈다.


"이분은 고인께서 살고 계신 집의 임대인이시고, 저는 계약을 해드렸던 공인중개사입니다."

108동 1003호 임대인과 나는 임차인을 조문했다.




임대인 최씨는 9년 전에 집을 사서 세를 놓았다. 카지노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젠틀함이 체화된 50대 반의 신사였다. 딸 명의로 집을 사서 융자 없이 전세를 놓았는데, 어느 순간 사업에 문제가 생겨 급전이 필요하게 됐다.


차인에게 집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잠시 주소 전출을 해달라고 했고,  임차인이 임대인의 간곡함을 못 이겨 주소를 빼자마자 캐피털에서 거액의 근저당을 설정했다.(임차인은 입주시에 전입신고를 하고 퇴거 시까지 주소를 옮기면 안 된다. 중개사에게 상의하면 못하게 하므로 쌍방간에 협의하여 주소를 빼주는 경우가 있다. 임차인 주소를 잠시 뺀 상태에서 근저당이나 기타 제한물권이 설정되면 임차인은 후순위로 밀려나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

얼마 후, 임차인 김씨의 사업도 부도가 나서 집 보증금을 빼서 밀어 넣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임대인한테  이사 나가게 보증금을 빼 달라고 했으나, 임대인은 그럴 여력이 안됐고 캐피털 설정 대출이 많아서 새로 임대를 놓을 수도 없었다.

임차인 김씨가 거세게 항의하자, 임대인 최씨가 무릎을 꿇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돈을 마련하여 임대보증금 중 일부를 돌려주고 못 받은 보증금을  월세로 하여  재계약을 하였다.

나는 깡통전세인 집이 그나마 경매 넘어가 임차인이 거리로 나앉게 될까봐 걱정되었다. 임대인을 설득해  집을 매도하려 했지만 두 번이나 계약 직전에 틀어졌다. 임대인이 돈을 더 마련해와서 팔아야 하는 상황인데,  번번이 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임차인 역시도 갈수록 사업이 어려워지자 약정했던 월세를 연체하게 되었다. 상황이 반전되었다.

미안해진 임차인은 안절부절 못하였는데, 임대인은 그간 본인도 어려워서 폐를 끼쳤으니 밀린 월세도 갚지 말고, 앞으로 이사 나갈 때까지 한 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9년째 살던 중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졌고  집값도 회복되어, 드디어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
집이 팔리자 임차인께도 이사 나갈 집을 구해드렸는데, 어느 날  부동산 사무실로 방문하였다. 

"중개사님이랑 내가 벌써 10년도 넘었지?
10여 년 동안 집 문제 신경 써주고 알아서 해줘서 아주 편하고 고마웠어.  언제 신세 갚으리다~~"

점잖으시던 분이 그날따라 넉살이 좋으셨다.
말마따나 15여 년 전에 우연히 사무실에 들러서 임대계약을 한 뒤,  옮겨갈 때마다 어김없이 구해드렸다.
뭐든 한번 보면 "아~됐어!  중개사님이 보여준 집이면 다 좋지 " 하셨다.

처음 몇 년은 어디선가 양계장을 다고 닭 몇 마리씩을 손질해 들고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다 멋쩍게 쥐어주고 가기도 고, 그 후 양계장이 망했다고 양파농사를 짓게 되었을 때는,  이른 아침에 양파자루를 사무실 앞에 던져놓고 가기도 했다.

모쪼록 시간 내어 들른 그날은  대출상담사 불러 전세자금 대출 신청도 하고 이삿짐센터 불러 견적 뽑고 하느라 종일 우리 사무실에 머물렀는데, 유난히 이런 일 저런 일 살갑게 말씀도 많이 하셨다.  하는 사업마다 잘 안된다는 이야기, 꺼내놓기 어려운 가정사 등.. 그렇게  이일 저일 다 마무리되자

"오늘 내가 귀찮게 해드렸네~ 이삿날에 봅시다. 그리고 2년 후에는 나도 집 사주시오!  이제 이사 다니기도 귀찮네.."


하고 털털하게 웃고 가셨다.
다음날 이사날짜 조정하려고  여러 번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  그래서 사모님께 전화드려서

"사장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서 전화드렸어요ㅡ"  했더니

"네.... 안 받으실 거예요..
어제 오후에 돌아가셨어요.." 

부동산  사무실에서 원스톱으로 일 보고 가신 2시간쯤 후에,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하셨다고 한다.

그날 밤, 9년을 함께 시름하고 함께 고민했던
임대인ᆞ임차인ᆞ 중개사는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장례를 치르고 2주 후 매매 잔금일이 돌아왔다.
압류가 3건이  걸려있고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이 매매가의 80%에 육박하는 상태였지만 사전 준비로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임차인에게 건네줘야 할 임대보증금 중 27,558,160원이 부족하였는데  임대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대표님! 부탁해놓은 돈이 오늘 안으로  들어오기로 돼 있는데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나는 고민 없이 대납을 결정했다. 이젠 고인이 된 임차인의 가족들을 새집으로 보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대인의 인품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에 대납하여 잔금을 끝내고 흩어졌는데, 오후 5시쯤에 대납 금액보다 2,000,000원 가량이 더 입금되었다. 임대인이 감사의 뜻으로 중개보수의  두배를 보냈다고 한다.


임대인 최씨와  임차인 김씨는  108동 1003호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임대차 기간이 길어지면서 각각 생계를 위협받는 어려움을 겪었고  서로 원망도 하고 다툼도 하고 무릎도 끓어가며 관계를 지속해왔다.

드디어 집이 정리되어 인연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자  한 사람은 가족과 임대보증금만 남긴 채 고인이 되어 세상을 고,
한 사람은  깡통주택을  처분하는 시점까지도
금전적 어려움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임차인 가족에 대한 예를 갖췄다.

잔금이 끝나고 며칠간을  108동 1003호에 갇혀 있었다.  분은 저 세상에서, 한 분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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