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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16. 2022

이삿짐 소개비 20,000원

8km가량 떨어진 중개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그 지역의 아파트 전세를 광고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본 기억이 있어서 나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OO아파트 호 중개하신 거 맞죠?"

 

느닷없이 그런 걸 왜 물을까 의아해했더니


"그 집에 이삿짐센터를 소개해준 중개사를 찾는대요."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아무 문제없이 잘 이사 나가고 들어오고 했는데...


그리고 30분쯤 후 불편한 걸음걸이의 이삿짐센터 직원이 방문했다.






 직원은 나에게도 낯이 익다. 왜냐하면 그는 10여 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개사무소는 다양한 직업들과 연결되어 있다. 주거생활에 필요한 여러 업체들, 예를 들면 열쇠공, 막힌 곳 뚫어주는 설비업체, 누수 관련 업체, 에어컨, 설비, 붙박이장, 보일러, 싱크대, 도배 장판  등의 인테리어 업체, 입주청소 등 여러 직업군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사람들이 이사를 오가면서 발생하는  일거리들을 연결받기 위해서다.  중개사무소에는 그렇게 수시로 영업을 위해 드나드는 직업군들의 명함이 수북하다.


이 직원도 이삿짐 연락처를 찾는 손님들을 연결해달라고, 한 달에 한 번씩 명함과 과자 한 봉지를 들고 방문했다. 사실 한동안은 그가 불편했다. 어느 업체도 이렇게 정기적으로 방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냥 명함만 넉넉히 주고 가면 될걸.. 왜 굳이 꼬박꼬박 들르는 거지?


그를 특별히 기억하는 건 불편한 걸음걸이 때문이다. 한쪽 다리를 끌며 절룩절룩 걸어 들어오면 이유 없이 미안해진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고야 이삿짐 명함 아무거나 집어주지 말고 이 업체 것만 따로 챙겨줄 걸....'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사실 평소에는 손님이 이삿짐센터 소개해달라 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명함을 몇 개 집어서 건네주고 만다. 이삿짐센터마다 견적이 다 다르니까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겠지 하고.


영업사원(?)들은 몇 번 드나들다가 별로 소득이 없다고 판단되면 발길을 끊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1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드나드니 어느 순간 참 대단하다, 이삿짐 영업을 오래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업체 명함은 빠트리지 않으려고 신경 쓰게 되었다. 물론 누락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쓸 뿐 특별히 추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몇 번 연결이 되었는지 어느 날은 슬그머니 봉투를 놓고 갔다. 쫓아가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어느 손님을 이사시켜주었는데 우리 사무소에서 연결해주었다고 하길래 소개비를 넣었다고 했다.  '이런 거 필요 없다 이사만 잘해주셨으면 된다'라고 해도 한사코 돌려받지 않았다.


그는 '덕분에 이사를 해주게 되었으니 인사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라며 불편한 걸음걸이를

재촉해 사라졌다. 봉투에는 20,000원이 들어있었다.


아무튼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방문하는 그를 마주칠 때마다 부담감이 솟구쳤다. 영업으로 연결시켜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음료수로 대신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오늘 방문하여 봉투를 내밀었다. 소개비?... OO아파트 ♤동 ♧호 이사 손님을 연결해준 중개사무소를 찾으러 여기저기를 헤매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도  나는 그 집에 딱히 이삿짐 업체를 소개한 기억이 없었다. 왜냐하면 손님이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내쪽에서 권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 집에 이삿짐센터를 소개한 기억이 없어요. 어느 중개사무소가 소개했는지 모르겠으면 그냥 넘어가면 되지 왜 그걸 굳이 찾아다니시나요?"


내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아니죠. 저는 소개를 받아 이사를 하면 무조건 봉투를 만들어서 들고 다녀요. 이 많고 많은 이삿짐센터들 중에 우리 사무실로 연락하려면 누군가는 명함을 줬어야 하잖아요. 나는 이 일을 시작할 때 광고를 따로 안 하는 대신 소개해주는 사람한테는 감사의 사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나 하고 한 약속이지만, 이것도 나름 저의 영업 방침인 것이니 지켜야죠"


이사 계약 시에 손님한테 어디에서 소개를 받았는지를 못 물어봤는데, 그 뒤로는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아파트 주변 중개사무소를 돌아봐도 그 집을 중개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큰맘 먹고 조금  떨어진 중개사무소를 돌아다녔는데 그곳에서 이 아파트라면  OO부동산에서 관리하는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아마 그 중개사무소도 불편한 다리로 중개사무소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제가 중개한 게 맞지만 이삿짐센터를 소개한 기억은 없어요. 그러니 그냥 우연한 손님이겠거니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문제 될 일도 없잖아요."


했더니


"공동중개 아니시라면서요 단독 중개이시면 중개사님밖에 없어요. 저는 이미 드리려고 준비했으니 남의 돈을 보관하고 있는 셈이에요. 받아주세요."

*단독 중개-중개사무소 한 곳이 거래를 완성하는 것.  *공동중개-중개사무소 2곳이 공동으로 거래를 완성하는 것.


그의 순수한 마음이 드러날수록 내 마음은 봉투에서 멀어져 갔다.


"저도 받을 자격이 안 되는 돈은 받고 싶지 않아요.

광고비 대신이라면서요. 누가 광고 역할을 했는지가 명확치 않다면 지불할 이유도 없고 받을 명분도 없어요. 그냥 누가 소개했을까 신경 쓰지 말고 잊어버리세요"


이쯤 하면 포기하고 가겠지 했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세요. 중개사님이 그 집을 거래하셨기 때문에 제가 이사를 해줄 수 있었어요.

거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더니 기어이 봉투를 놓고 갔다. 열어보니 역시 20,000원이 들어 있었다.


10여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절룩이며 방문하던 그의 고집 아닌 고집이 고스란히 봉투에 담겨 있었다.


뭔가를 저렇게 성실하고 한결같이 한다면?  그리고 처음 먹은 마음, 누군가와의 약속 아닌 약속도  지키려고 애쓴다면 어떤 일에서고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그가 10여 년 동안 놓고 간 명함들은 사무실 어딘가에 놓여있거나 일부는 쓰레기통에 처박히기도 했다.


나는 그 명함들을  찾아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으로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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