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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r 26. 2021

그런 부동산 계약은 안합니다!

업계약서  쓰고 안심 전세 놓고

"혹시 빌라 매매 물건 있나요?"


웬 남자가 전화를 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공식 정보망인 '한방'에 올린 OO신도시 역세권 부근의 빌라 매물 광고를 봤다고 한다. 당장 보러 오겠다 해서 매도인과 시간을 맞추고 있는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다시 여러 차례 전화하여 역세권의 다른 빌라라도 보여달라고 했다.

사무소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다 보니 빌라 매물이 별로 없어서 다른 중개사무소 매물까지 확인해보는 와중에도 서너 차례 더 전화하여 매물의 지번과 동호수까지 물었다. 미리 로드뷰로 보고 감정가도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뭔가 대중없이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지 적극적인 손님이네...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 관리비도 절약할 겸 부담 없는 가격대의 빌라를 사서 살겠다는 경우는 있지만, 젊은 남자가 아직 보지도 않은 빌라를 '웬만하면 계약하겠다' 고 적극적으로 덤비며 대출 시세와 감정가까지  따지는 경우는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다.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지방의 경우 빌라는 인기 매물이 아닌데다 막상 팔고 싶을 때는 수요자가 없다 보니 자꾸 매매가만 낮아져서 솔직히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는 편이다.

아무튼 물건을 찾아 문자로 보내주었는데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전화가 왔다.  브리핑해준 물건들을 당장 볼 수 있느냐고 해서 '성질도 급하네' 하고 11시에 빌라 앞에서 만났다.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가족 없이 달랑 혼자 보러 왔길래   '실입주자는 아니구나' 생각했다. 집을  나름 꼼꼼히 훑어보는가 싶더니 두 번째 빌라를 보고 나서 집주인한테


"이거 팔아도 양도세 안 나오시죠?"


라고 물었다.

집을 보러 와서 양도세에 대해 묻는 손님은 없다. 매매 계약 시 공인중개사에게도 집을 살 때 부과되는 취득세에 대한 설명 의무는 있지만,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세에 대한 설명 의무는 없다. 집 사러 온 매수인이 매도인의 양도세가 궁금해야 할 이유는... 정해져 있다.

밖으로 나와서 물었다.

"부동산 법인 만드셨나요?"

흠칫하면서 그렇다고  했다. 부동산 22번째 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법인을 만들어 갭 투자를 하는 부동산 법인들이 득세했다.

나: 전세 놓으실 건가요?  
남자: 네. '안심전세' 해줄 거고 계약서 써주는 부동산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안심전세: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전세보증금 반환을 책임져주는 전세대출 방식)


나: 미리 말씀드립니다. 아까 양도세 어쩌고 하시던데 저는 업계약서 (up 계약서- 실제 거래가보다 금액을 높여서 쓰는 계약서)  안 씁니다. 혹시 단돈 100만 원이라도 업계약서 써서 진행하실 거면 더 이상 물건 보실 필요 없습니다.

매도인의 양도세를 걱정하는 매수인은 업계약서를 써서 후일에 되팔 때 양도차익을 보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황하더니 사무실로 들어가서 차분히 이야기하자고 했다. 사무실에서 남자가  자랑스럽게(?) 설명한 내용은 이러했다.

빌라들을 분양할 때는 대부분 업계약서를 작성한다. 빌라 분양 시 분양사무소에서 강조하는 강점이 '소자본으로 내 집 마련' 한다는 것으로써, 금융권과 연계해 대출을 최대한도로 뽑아주는 것이 분양팀의 역할이다. 대출을 최대한도로 뽑으려면 분양가를 그만큼 높게 책정해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분양가가 높아야 대출한도가 조금이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수요자의 자기 부담금을 줄이기 위한 편법이다.

분양받은 후 몇 년 살다가 되팔려고 내놓을 때는 우울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빌라들이 분양가보다 하락해 있다. 빌라 수요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는 더 그렇다. 아파트는 부동산 경기나 정책에 따라서 상승과 하락 반등을 반복하지만 (지금까지는..) 빌라는 대부분 하락세만 이어진다.

간혹  운이 좋아서 분양받은 금액보다 몇천만 원 오른 가격에 팔더라도 양도세가 발생할 확률은 낮다. 위에 설명했듯이 분양 시에  대출을 최대한도로 뽑아내기 위해 미리 업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올려 쓴' 금액만큼은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것이다.

이 남자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현재 시세는 분양가보다도 낮은 금액이지만 최초 분양 시 업계약서를 썼던 그 금액으로 계약서를 써달라는 것이다. 매도인이 어차피 양도세를 낼 부담이 없으니 그 금액에 써주는 조건이면 바로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인이 이렇게 하려는 의도가 뭘까?

간단하다. 예를 들면 매도인이 이 빌라를 분양받은 분양가가 2억이었다고 치자. 2억짜리 빌라를 분양받을 때 대출을 많이 받기 위해 25,000만 원으로 분양가를 올려 썼다. 그런데 현재 내놓은 가격은 분양가보다 낮은 18,000만 원이다.


 18,000만 원에 실거래를 하지만 매매계약서는  25,000만 원으로 써달라는 것이고  25,000만 원짜리 계약서로  전세는 18,000만 원~20,000만 원에 놓는다. (물론 매매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안심 전세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빌라 감정가를 미리 알아본다.)

예상되는 그림은 이렇다.
빌라는 매매가 쉽지는 않지만 신축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경우 전세 수요는 많다. 전세 물량이 부족하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임차인들에게 '안심 전세 대출' 해주겠다고 하면 임차인들은 어차피 나중에 임대보증금을 반환받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쉽게 계약한다.  

이렇게 전세를 18,000만 원에 놓는 경우에 법인은 자금 한 푼도 안 들이고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물론 취득세는 별도이다.) 전세를 맞춘 후  임차인 승계 조건으로 매수하려는 사람한테 1000만 원이라도 차익을 보고 팔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그림은 전세를 20000만 원에 맞춘다 그러면 전세가 만으로도 2,000만 원의 차익을 본다.  최악의 경우 2000만 원만 '먹고' 법인을 해산해버릴 수도 있다. 일종의 먹튀다.  그런 경우에도 임차인은 '안심전세'로 보증금을 반환받아 나가면 되니 손실은 보증회사의 몫이다. 쉽게 말하면 돈 안 들이고  소액이라도 차익을 노리는 행위이다.    

단번에 거절했다. 실제 거래가로 체결하는 게 아니면 매매진행을 안 하겠다 했더니

"저는 이 일을 2~3년 정도 해온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중개사님은 뭘 잘 모르시는 듯하네요.  어차피 분양 시에 업계약서를 썼으니 그 금액에 맞춰 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라며 설득하려 하길래

"겨우 2~3년 하셨나요? 저는 중개업 17년 했는데 그런 계약은 절대 안 하고 주위에 한다는 중개사가 있으면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말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했더니

중개사한테는 피해가 없다 연결만 시켜달라 계약서 작성 등은 알아서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래서 다시 공인중개사가 중개해놓고 계약서를 다른 곳에서 쓰게 하는 것도 역시 법에 저촉된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 했더니

"중개보수 100만 원씩 더 드릴게요. 연결만 해주세요~"

헐....

그러지 말고 1억 주실래요?  그럼 그 1억 매도인한테 드리고 1억 올린 금액으로 계약 체결하자고 하고 계약서 예쁘게  작성해드릴게요~

했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휙 돌아서 갔다.

이런 이상한 꾼들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혼탁해지고 선량한 공인중개사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국토부는 이런 비정상 투기꾼들을 단속해야 하는데 그걸 가려내지 못하고 공인중개사들만 동네북처럼 두들겨댄다.

화창한 날 오전이 코로나 19 같은 손님 때문에 덧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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