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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r 29. 2021

공인중개사도 사기당하고 투자에 실패한다.

아침 일찍, 낯익은 똠방(?) 어르신이 들렀다.
똠방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없지만 지역에 토박이로 오래 살면서 지주들과의 친분을 매개로 토지 등의 거래를 연결해주는 일명 ‘거간꾼’을 의미하는 비속어이다.

요즘에는 부동산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무등록 중개 행위를 단속하고 있어서 똠방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지역마다 한 두 사람씩은 꼭 있었다.

"인천 시 ○○구청 근처의 나대지가 공시지가보다 싸게 나왔어.
매도인이 돈이 엄청 급하대~ 이거 완전 대박이야 손님 좀 붙여봐~"

16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아마 중개사무소마다 다니며 물건을 뿌리는 모양이었다. 마침 차 마시러 와 있던 옆 사무소 중개사가

"어머 그래요? 한번 가보죠~"

하더니 그 길로 쫓아나갔다. 당시 중개업 초보이던 나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우르르 다녀오더니 분위기가 술렁술렁했다.  소곤소곤하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언니 돈 좀 투자해봐. 구청 바로 옆 땅이 시세 반도 안 되게 나왔어. 샀다가 바로 팔아도 두 배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하여 돈을 끌어 모으더니 당장 계약을 하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왠지 내키지가 않았다.

"그렇게 싸고 좋은 땅이 왜 그 지역에서 안 팔리고 여기까지 왔을까요~. 뭔가 이상하네요~ 서두르지 말고 신중히 생각해보심이... "

그녀는 똑똑하고 일 잘하기로 소문난 중개사였다.  특유의 흡입력 있는 언변으로 나를 설득했다.

"내가 이 바닥 선수야~ 이런 기회는 흔히 오는 게 아니야~ 특별히 끼워 줄게. 당신도 같이 사자~"

나는 쉽게 버는 돈은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너무 싼 물건, 유난하게 좋은 조건의 매물은 오히려 경계하는 소심쟁이다.

무림에는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좋은 물건이 내 차지가 되겠어.

혹시라도 복권이 당첨되면 내게 올 모든 행운이 단지 돈으로 퉁쳐질까 봐 복권도 사지 않는 사람이라 우린 서로 설득할 수 없었다.  대신 다소 흥분한 그녀에게 꼭 해야겠으면 잘 알아보고 하라고 신신당부했더니,  확실하게 하려고 계약서를 법무사 사무소에서 다고 했다.

"법무사님이 직접 서류 확인 다 하고 계약서 써놓으신대~ 그러니 확실하지 뭐."

계약하러 가는 날은 정말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게 퍼부어댔다.  기대에 차서 법무사무소로 가는 그녀의 옷깃을 나도 모르게 잡아당겼는데, 미소 지으며 살짝 털어내던 따뜻한 손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차가 출발한 지 30분 후, 비가 너무 와서 일찍 집에나 갈까 하던 참인데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어머 그냥 안 하기로 했나 보다 잘됐네. 일순 반가운데, 그녀는 깜빡 서류를 놓고 갔다며 사무실에 뛰어 들어가 서류봉투를 챙겨 들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나는 우산도 안 받치고 다가가 차문을 열고

“그냥 계약하러 안 가면 안돼요?”


했고 그녀는 에구.. 겁쟁이~하고 낄낄대며 액셀을 밟았다.

3억 원의 계약금을 걸고 계약이 체결되었다.  법무사가 직접 작성한 계약이었고 매도인은 2인의 공동명의였는데 위임장과 함께 대리인이 참석했고 계약금은 현금으로 전달되었다.  그날 밤 파티가 열렸다.  물건을 가져다준 똠방도 함께였다.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다.

일주일 후, 중도금도 지급되었다. 언니, 동생네가 탈탈 털어 보내준 돈이라 했다.  다시 일주일 후 잔금대출 관련해 매도 대리인에게 연락했으나 착신이 정지된 번호라는 멘트가 나왔다.  법무사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그날 내내 통화가 되지 않았다.  밤새 잠을 설치고 법무사무소로 쫓아갔다.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사건은 후일 토지사기단 사건으로 기사화되었다.

  

법무사와 토지사기단이 짜고 같은 땅을 여러 사람에게 팔아먹고 잠적한 사건이다.  법무사는 연세 많은 분이었는데 이 사건을 함께 공모하고 건당 5000만 원씩 챙겼다고 한다.  공인중개사가 법무사를 믿고 계약했는데  법무사가 토지사기단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2년쯤 후 법무사를 비롯해 토지사기단 일부가 검거되었지만,  형사 구속되었을 뿐 돈은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중개업계를 떠났다.  가족 형제들에게 무리하게 모은 돈이라서 그 좋던 우애에도 금이 갔다. 돈은 사람 사이를 좋게도 하지만 나쁘게도 한다. 아니 나쁘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당당하던 중개사였는데, 한순간에 빛을 잃은 꽃처럼 시들어갔다.  순간의 판단이 남은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똠방이 우리 사무소에 들르지 않았다면.....

그날 비가 더 많이 왔더라면.....

서류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더 강하게 만류했더라면....


그 후로도 나는 직업 특성상 투자와 투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공인중개사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나이 고하, 직업 여하를 막론하고 돈 앞에 자유로운 영혼은 없더라.  돈 싫어하는 사람도 없더라. 그런데 돈은 원한다고 해서, 좋아한다고 해서 따라오지도 않더라.

원하는 대로 잘 되면 '투자'가 성공한 것이지만, 뜻대로 안 되면 '투기'가 실패한 것이다.

부동산  투자는 '올라주면 좋고 안 올라도 그만이다.'는 생각으로 덤벼야 한다.  많이 오른다면 내가 그만큼 돈복이 있는 것이고, 안 오른다면 내 운이 딱 그만큼이라고 편히 마음먹어야 한다. 


10여 년 전 어느 날

한 번의 기회로 인생역전을 꿈꾸던 그녀는 떠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쉽게 버는 돈은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한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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