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데 폰이 울렸다. 지인들이 우르르 경찰서로 연행됐다고 한다.
일주일 전, 지인 A가 열댓 명을 카톡으로 불렀다.
인근 산 밑에 있는 더덕밭의 주인이 A한테 더덕 캐가고 싶으면 캐가라고 했단다.
"소풍 겸 더덕 캐러 갈 사아람~~!!"
사 먹기도 귀한 더덕을 공짜로 맘대로 캐가라니...부지런하고 알뜰한 더덕 전사 아홉 명이 모아졌다. 나는 안 갔다. 나는 더덕요리를 할 줄 모른다. 언젠가 더덕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선물 주는 사람이
"더덕요리는 왕 쉬워. 똑똑하니깐 레시피 찾아서 해봐. 술안주로도 딱이고 별미야"
솔깃해서 레시피를 뒤져서 낑낑대며 한 상 차려내놨지만 가족들은 시큰둥했다. 가족들은 나의 요리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덕 채취 소풍에서 빠졌다. 더덕요리를 해먹을 시간에 차라리 낮잠을 자는 것이 건강에 좋았다.
9명이 채비 단단히 하고 아침 일찍 모여서 더덕 밭으로 갔다. 정말 더덕 천지였다.
"밭주인은 더덕을 캐서 내다 팔지 왜 우리를 주냐.. 천사네"
한창 공짜 더덕 캐는 재미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누군가 소리소리 지르며 뛰어왔다.
도둑 잡아라~도둑! 더덕 도둑 잡아라~
다들 뭔 소리지? 우리한테 하는 소린가? 하는 사이에... 삐뽀삐뽀 경찰차가 왔다. 모두 경찰서로 끌려갔다.
신고한 사람은 더덕을 심은 경작자였다. 그는 수풀이 우거진 빈 밭이 있길래 더덕을 심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더덕밭이 나날이 듬성듬성해졌다. 누군가 몰래 캐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괴이하게 생각하던 중, 이날은 맘먹고 잠적해있다가 더덕 소풍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
모두 1:1로 조사를 받았다.
-난 그냥 친구가 밭주인이 더덕 캐가라고 했다고 해서 따라온 것뿐이다. 주인이 따로 있는 줄 몰랐다~ 고 사실대로 진술한 순진파~!
-난 저 사람들 모른다. 등산 가다가 더덕을 캐고 있길래 그냥 한 개 뽑은 것뿐이다~고 계획범죄를 부인하는 지능파~!
-그 틈에도 더덕을 몰수당할까 봐 점퍼 속에 둘둘 말아놓고 모르쇠로 일관한 실속파~!
모두 특수절도죄로 기소되었다.
(혼자 가서 더덕을 캤다면 그냥 절도이지만, 2인 이상이 합동하여 계획적으로 채취하러 간 것이라 특수절도죄에 해당된다고 한다.)
경작물은 경작자의 것!이라는 슬로건은 어쩌면 누구나 아는 명제이지만! 울타리나 펜스가 쳐져 있지 않은 노상에서는 까짓 거 한 두 뿌리쯤이야~ 하고 공짜에 눈 어두워 덤비거나, 내 밭인데 누군가가 허락도 없이 심은 것이니 밭 임자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하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낭패당하는 경우가 있다.
각종 농작물은 토지의 일부이지만 정당한 권원(권원: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법률적인 원인)에 의하여 다른 사람의 토지에서 경작, 재배하면 그 농작물은 토지에 부합하지 않고 토지로부터 독립한 별개의 부동산으로 취급된다. 토지주의 허락을 받거나 임대료를 내고 경작하는 경우가 해당되겠다.
그러나 정당한 권원 없이(!) 다른 사람의 농지에 경작한 경우에도 그 농작물의 소유권은 농사를 지은 경작자에게 귀속된다. 누군가가 내 땅에 몰래 파종하거나 경작한 경우에도 이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농작물 재배의 경우 파종 시부터 수확까지 불과 수개월밖에 안 걸리고 경작자의 부단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록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땀 흘린 노고(?)를 인정해주는 셈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임야에 권원 없이 나무를 심은 경우, 농작물과는 달리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민법 제256조에 의하여 임야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농지의 점유는 구분이 비교적 명백한데 비해 임야의 경우는 나무의 성장이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고 누구 것인지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권원 없는 사람이 나무를 심은 경우에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먹고살기도 힘들고 경작할 수 있는 땅도 많지 않았던 1963년도에 나온 판례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남의 땅에다 몰래 농작물을 경작해도 괜찮은가 와는 별개로, 비록 남의 땅에 몰래 심은 농작물이라도 허락 없이 채취하면 절도죄로 처벌받는다는 건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겠다.
기소된 더덕 절도 일당은 옥신각신 하기도 하고 변호사의 자문을 받기도 하며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막상 재판 당일 신고자(경작자)가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피하는 바람에 사건이 유야무야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