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콩 Apr 12. 2021

혹시 결혼 안 하실래요?


"너는 어째 그리 무관심하냐고 고모가 섭섭해한다.

서방 회사 직원이라도 하나 소개해라"


그날따라 친정엄마의 전화는 집요했다.  
내용인즉슨 30대 중반인 사촌 여동생  지윤이의 신랑감을 소개하라고...

지윤이는 큰고모의 셋째 딸인데 장나라 닮은 미모에  초등학교 보건교사여서 나름 1등 신붓감인데도 어쩐 일인지  혼기를 놓치고 있었다.

애가 탄 큰고모는 여기저기 중매를 부탁하셨는데,
숱하게 맞선을 보아도 결혼까지는  연결되지 않았다.

일가친척들은 고모 등쌀에 너나없이 한 번씩 소개팅을 주선했던 모양인데..
무관심했던 우리 부부에게도  손길을 뻗치신 거다.

아무튼 고모의 특명을 받은 친정엄마가 책임지고 선자리를  주선하라고 잔소리를 해대시는 와중에,

마침 손님이  들어와서 억지로 전화를 끊었다.

방문한 손님은  인근 아파트 소유자인데 몇 번  세를 놔준 적이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어느 대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한다고 했던가...
임대조건을 상의하다 말고 나는 문득 남자를 쏘아보았다.


........!!


" 왜요...?"

"... 결혼 안 했다고 하셨죠? "


어리둥절한  남자..

네에..

나는  '얻어걸린'  계약을 하게 된 사람처럼 다소 흥분되었다.

 
"혹시 결혼 안 하실래요?"


다시 어리둥절한 남자... 집 내놓으러 왔다가 결혼이라니... 이 아줌마가 약을 먹었나..

어쨌든 왜 여태 결혼을 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남자는 담담히 대답했다.


"여자들이 안 좋아하더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그동안 집 세 놔줄 때는 남자로 안 보고 '임대인'으로만 봐서  미처 생각 못했는데..

이 남자  작고!  뚱뚱하고!  못생겼다!... 이런...

일단 남자를 돌려보내고 친정엄마한테 전화했다.

나: 엄마!  어쨌든 지윤이 선 한 번만 보게 해 주면 되지?


엄마: 그랴 한 번만 해줘라 고모 소원이란다.


나: 한 번 만이야~ 근데 남자가 좀 작아.. 그리고  못생겼어..


엄마: 괘안타~  괘안타~ 인물 뜯어먹고 사나~

그래서 집 세 놔달라고 온 남자와 사촌 여동생은 맞선을 보게 되었다.

'난 분명히 말했어.. 작고 못생겼다고!'

혹시나 사촌동생 지윤이가 자길 뭘로 보고 이런 남자를 소개해주었냐고  쫓아올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

그런데 웬일!!  

일주일 후 지윤이가 좋은 사람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전화했고,

또 일주일 후 친정엄마가

"고모가 너무 고맙단다~  숱하게 선봐도 깨지더니 이번에는  잘 만나고 있다고.. 고모가 엄마  옷 한 벌 해준단다."


라고  신나서 전화하셨다.

어라?

그러나 한 달 후,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혼기를 놓친 노처녀 노총각인지라 둘이 서로 좋다 하니 앞뒤 안 가리고 바로 날부터 잡은 후  결혼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형식적으로  양부모 상견례를 하게 되었는데,  상견례장 입구로 마중 나온 신랑감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모가

오매~

라고 외친 후 픽 쓰러지셨다.

일가친척들의 비난이 중매쟁이인 나에게로 쏟아졌다.
난 분명히 작고 못생겼다고 사전고지(?)했었는데, 순식간에 집안의 역적이 되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상견례도 안 하고 결혼 날짜랑 식장 예약, 청첩장 배포부터 먼저 한 것일까...

머리 싸매고 앓아누운 고모는 사촌 언니를 통해

"혹시 너 그동안 고모한테 섭섭한 게 있었니?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니!"


헉...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친정엄마는

"아무리 인물 안 본다 했다고 너무 한 거 아니냐?  너 때문에 고모랑 의 상하게 생겼다."

고 나무라셨다.  억울했다.


아니 누가 결혼까지 하랬나 그냥 밥 한번 먹고 말 것이지! 소개했다고 다 결혼하나!  그동안 수십 번 선 봐도 결혼 안 했다면서 도대체 왜!!!


결국 나는 사촌동생한테 전화로 사정했다.

"헤어지면 안 되겠냐? 다른 사람 찾아볼게, 나를 봐서 헤어져주라"


그러나 사촌동생은  이 남자 아니면 평생 노처녀로 늙어 죽겠다~ 고 선언했고,

결국 고모의 폭풍오열 속에  결혼식이 치러졌다.

중매쟁이인 나는 축의금만 보내고 식장에도 못 갔다.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았다. 결혼식장을 다녀온 언니가

"너 안 오길 잘했다. 다들 누가 중매했냐고 묻더라."

쓸데없는 짓을 해서 집안을 뒤집어 놓았다고  남편한테도 무지 혼났다.

그리고 10년 후..

고모가 엄마한테 옷 한 벌을 해주셨다. 중매 직후 해주기로 한 옷을 10년 후에야 해준 것이다.

사촌동생 부부는 금슬 좋은 닭살부부로  잘 살고 있다.  양쪽 부모들에게도 서로 얼마나 잘하는지, 고모도 사위 중에 최고라고 칭찬이 마를 날이 없으시단다.

얼마 전 두 사람을 엮어준 그 집이 팔려 잔금을 하러 온 제부는, 일이 다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처형 덕분에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있네요.. 제 친구 중에 아직 혼자인 놈들이 있는데 자꾸 처형 부동산  소개해달래요~~"


아파트 상가 토지만  중개하다 사람 중개도 한번 해봤는데,
이 정도면 중개가 내 적성에 맞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더덕 도둑 잡아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