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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ul 31. 2020

소파를 보관해줄 수 있나요?

누구에게나 취하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그 무엇이 있다.

"혹시 소파를 보관해줄 수 있는지 물어봐줄래요?"

살고 있던 임차인이 나가게 되어 새로 전세계약을 했는데,  

잔금을 열흘 앞두고 임대인이  와서  뜬금없이 소파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 전까지 직접 입주해 살다가  운영하던 식당을 다른 도시로 옮기게 되어 집을 세놓고 이사 나갔던 60대 후반의 임대인.  세를 놓는 30평대 아파트에다 자기네 소파를 다시 가져다 놓고 싶다는 이야기다.


간혹 임대인이 에어컨이나 붙박이장을 두고 가는 경우는 있지만, 주인집 소파를 다시 들여놓겠다고 하면... 글쎄,,,,,


''소파 때문에 죽겠어 아주.. 돈을 수억 까먹고 있어.''

소파를 물류 창고에 보관 중인데,  연세가 삼백만 원이 조금 넘는단다. 헐....


돈 먹는 소파... 사연이 있다.

함께 식당일을 하는 사모님이 수년 전 동창네 집엘 다녀와서는  그 집 거실에서 본 으리번쩍한 소파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잠을 설치셨다.


"그런 소파 하나 거실 가운데 놓아두면 집 자체가 빛이 날거야~"


일주일이  다 돼가도록 소파 이야기만 하더란다.  
결혼 30여년 동안 사치 한 번 안 하고 덧없는 욕심 안 내던 사모님이 그러시니  큰 맘먹고 백화점, 가구점 돌고 돌아 비슷한 분위기의  수입 고가 브랜드 소파를 샀는데....


그렇고 그런 세간살이 사이에 버티고 앉아 유세 부리던 소파였지만 그나마 좋았던 것은 딱 6개월... 갑자기 식당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어  이사 가서 살 집에 가보니 거실이 너무 좁아 소파를 둘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가게 자리 잡고 나면 금방 다시 큰 집으로 이사 가겠지 하면서 그때까지 먼지 타지 않게  물류창고에 비싼 임대료를 내고 수년째 보관 중이란다.  
일 년에 나가는 임대료만도 수백만 원인데,, 아무리 관리비 내고 보관한다 해도  통풍이 잘 안 되는 창고에 오래 두다 보니 가죽이 상해서 최근 다시 천갈이 하는데 그것만도  350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제대로 앉아보지도 누워보지도 못하고 소파 하나에만 수백만 원의 목돈이 들어가는 게 속이 쓰려서 누구 줘버리자 해도 사모님이  절대 안 된다고 강경하단다.


"안된대요. 절대 못 버린대... 어쩔 수 없지 뭐...."

언뜻 체념한 듯한 표정 속에서  단순히 '어쩔 수 없는' 것 이상의 묘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고...

그동안 들어간 보관 비용만으로도 새 소파 사고도 남는 거 아닌가...


냉정한 머리로 계산을 해보니,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있나 한심한데... 임대인이 돌아가고 난 뒤 정리하고 퇴근하는 머릿속에서 그놈의 소파가 떠나질 않았다.


간절히 원했으나 원했던 것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그 어떤 것.

내 소유이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어떤 것.

그런 것이  누구에게나 한 가지씩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간절히 원했으나

취하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사이 급기야 거추장스러워져서 그 자체로 가슴 쓰라린 어떤 것이 있는데,  

내 눈에만 귀해 보이고 남들 눈에는 한심해 보이는 어떤 것이 나에게도 있지 않을까.....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났다.


뭐더라.......

'' 아~  싫어요.. 그럼 우리 소파는 어떡해요
그리고 주인 물건을 썼다가 나중에 망가졌니 어쩌니 배상하라 하면 어떡해요.  

부담스러워서 안돼요''

신혼부부 임차인은 단호히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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