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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r 11. 2021

저 가출했어요!

가출 초등학생 귀가시키기

"아줌마 물 좀 주세요~"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초등 4학년 남자아이.
물 한 컵 마시고 슬그머니 소파에  앉더니, 슬슬 말을 건다.

녀석 : 저 가출했어요~
나:  왜?  
녀석 : 누나랑 싸웠거든요 엄마가 누나 편만 들어서 집을 나왔어요.
나: 누나랑 왜 싸웠는데?
녀석 : 에이 머 사소한 이유죠. 머.

스스로 사소한 이유로 싸웠다고 말하는 넉살 좋은 녀석..

나: 근데  가출했는데  왜 아직 이 동네에 있어?

잠시 서운한 눈빛을 보이더니 좔좔 쏟아놓는다.

3남매 중 중간에 끼어 있다 보니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치이는데 그래도 존재감 세워보겠다고 열심히 누나한테 대들었다. 그런데 싸울 때마다 왠지 누나 편만 드는 것 같은 엄마한테 서운해서 이젠 이 집을 떠나리라 결심하고 배낭에 필요한 것을 쓸어 담았다.  옷도 몇 가지 챙겨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나오는데, 엄마도 누나도 전혀 신경을 안 쓰더란다.

초등학생이 가면 어딜 가겠는가... 일단 집안의 여성들은 뭔가 본인한테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으니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빠가 퇴근하실 때까지 버텨보자 생각했다. 아빠는 장남의 빈자리를 살펴주시리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목말라서 물 마시러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랑 누나랑 만둣국을 끓여먹고 있었다. 아 배고파...

만둣국을 쭈뼛쭈뼛 쳐다보는데 엄마가 퉁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출한 애가 왜 들어왔니?
집 나갔으면 발도 디디지 마! "

아~~ 아무리 죽고 못살던 남녀도 돌아서면 남이라더니, 엄마의 냉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퐁퐁 솟았다.  싸나이가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지. 물도 안 마시고 바로 휑하니 돌아 나와서 부동산 사무실로 왔다고 한다.

"이제 절대 집에 안 들어갈 거예요. 엄마가 사과할 때까지요 "

ㅋㅋ 엄마가 사과할 때까지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요즘  가출 초등학생의 위용이다.

그런데 놀기도 지쳤는지 이 녀석이 갈 생각을 안 하고 소파에 앉아서 멀뚱 거리고 있다. 아이스크림 사 주면서  슬슬 떠보니, 딱히 갈 데도 없고 배도 고파서  집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데, 엄마가 들어오지 말라 했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어떡하나...

나 : 아줌마가 너네 엄마한테 전화해줄까?


녀석: (잠깐 흔들리는 듯하다) 됐어요!
      엄마가 만둣국 먹어보란 소리도 안 했어요. 그냥 놀이터에서 잘래요.


나: 놀이터에서 자면 옷도 더러워질 텐데...  학교는 어떡하고?

녀석: 학교도 안 가면 되죠 뭐. 저 공부도 별로 못해요.

ㅎ 센데?

나: 그래라 그럼...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찔러야지.

녀석:....

나: 근데  너 어제 혹시 109동 11층  이사 나가는 거 봤니? 너네 옆 동.

무슨 소리냐는 눈빛... 내친김에  소설 써본다.

거기 사는 애가 동생이랑 싸우고 집을 나갔잖니.. 그니깐 그 엄마가  애가  다시 들어올까 봐 바로 집 팔고 이사 가드라?  가출한 사람이 손해야. 너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뭐 이런 말 들어봤지?

녀석: 네....(느리게 끄덕끄덕)


요새 집 잘 팔린다~
너네 엄마가 만둣국도 안 덜어줄 정도면 네가 속 좀 어지간히 썩인 모양인데,
너 오늘 안 들어가면 너네 엄마가 집 팔고 이사 가지 싶다..
그럼 아줌만 돈 버니까 좋고~!!

녀석: (시무룩)....

급 우울해진 모습... 굳히기 돌입.

나: 너네 집 애들이 좀 많긴 해.. 누나. 너. 동생 셋이나 되잖아?
더구나 넌 공부도 못한다고?  음... 공부 못하는 아들이라..... 음.... (일부러 고개를 절레절레)

녀석:...... 머리가 좋아서 하면 잘할 거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머리 좋아도 가출했으니 공부는 잘 하기 틀렸지 뭐.  그리고 가출 그런 거 막 할거 아니야. 너 세 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 는 속담 들어봤니? 한번 가출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밥먹듯이 가출해야 할 수도 있어. 가출 자주 하면 나중에 장가 가기도 힘들걸?  생각해봐라 가출 자주 하던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다고 하겠냐...

녀석: 하....

그런 것 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 얼빠진 표정.


나: 쯧쯧... 장가도 못 가고...

근데 아빠가 퇴근하셔서 너 찾으러 나오실 것 같니?

흠... 아줌마가 보기엔 너네 아빤 거의 너네 엄마 말 따르시는 스타일인데... 여자 이기는 남자 없다 너~

(아 하하... 애 데리고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진짜 ㅎㅎ)


녀석 : 후... 우리 엄마 전화번호 아세요?.. 아까 전화해 주신다고....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하소연이 늘어진다.

그 녀석 때문에 못살겠어요 진짜 ㅋㅋㅋ

10분 후 누나가 와서 한 대 쥐어박고 끌고 갔다.

녀석 부모가 신혼집 구하러 온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아들놈의 가출 상담까지 해주다니... 세월 참 빠르다

선한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는 지친 삶에 활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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