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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ul 29. 2021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인생

" 104동 204호 발코니 타일이 깨졌다는데 가서 수리 좀 해주세요"

" 수도꼭지에서 물이 뚝뚝 샌데요. 수전을 다른 걸로 교체해주라네요"

" 변기가 막혔다네요. 뚜러펑 사다가 뚫어도 잘 안된대요 부탁 좀 드려요"


그는 10여 년째 우리 사무소의 만능 해결사다. 콘센트 커버 교체하기 등의 아주 사소한 일거리부터 누수탐지, 변기 교체, 하수구 정화조 청소 등의 전문기술이 필요한 분야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마법의 손 맥가이버.


10여 년 전 그를 만나기 전에는 의뢰인들로부터 민원이 접수되면, 여기저기 설비업체에 문의하고 철물점에 의뢰하고 관리실에 부탁하고 등등 많이 난감했다. 돈도 안 되는 귀찮은 일을 흔쾌히 해주려는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명함을 발견했고 연락했더니 그가 왔다. 그는 다소 마르고 왜소한 체격이지만, 눈은 언제나 반달로 웃고 있었고 목소리는 그가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지 요구하면  '곤란하다' 거나 '못한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고 '알겠다' '해보겠다'라고 했다.


덕분에 끊임없이 크고 작은 민원이 발생하는 중개사무소 업무가 한결 간편해졌다.

첫 번째 업무를 마치고 난 뒤 그가 봉투를 들고 왔다.


"일거리를 연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비라도 조금 넣었어요, "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한데 무슨 전화비.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닙니다. 일만 잘해주세요.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그에게 주로 맡기는 일은 '품'이 많이 가는 대신 '돈'은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소요되는 시간과 수고에 비해 클레임도 많고 대접받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손대기 귀찮은 허드렛 일이었다. 닦아내고 쓸어내고 교체하고.... 그렇게 일해주고 재료값+a를 받는 정도.


누수 문제만 해도 탐지해서 정확한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고 겨우 찾아서 수리해놓아도 또 다른 곳에서 누수가 터지기라도 하면 원망을 듣기 일쑤이고, 기껏 땀 뻘뻘 흘리고 작업해놓으면 가격 흥정하느라 열심인 사람들 때문에 그는 늘 쓴웃음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정직하게 일 잘하기로 소문나서 점차 여기저기서 콜이 오고 심지어 관리사무소에서조차도 "그때 몇 동 몇 호 작업하셨던 분 잘하시던데 번호 좀 주세요~"라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나는 내일처럼 기뻤다. 야 잘됐다. 아저씨 돈 많이 버셨으면 좋겠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에게 일을 연결해주기가 미안해졌다. 세상이 각박해진 탓인지 기껏 일을 해놓고도 제 품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인근 아파트 누수 문제로  이 무더위에 3일 넘게 붙어서 처리했는데, 위층 아래층 분쟁이 생겨서 본의 아니게 몸싸움이 생겼다. 한쪽에서 작업을 하던 그는 갑자기 달려들어 싸우는 사람을 말리다 밀쳐져서 부상을 입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호프집이 치킨 튀긴 기름을 화장실 변기에 붓는 바람에 상가 정화조가 역류하자, 기계를 넣고 기름을 뽑아내다가 견고히 굳은 폐기름 사이에 기계가 끼어 손가락이 부러질 뻔한 부상을 당해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랬는데도  사람들은 "조심했어야지" 라며  개인의 무능 탓으로 돌리기 바빴다.


사람들은 그렇다.

누군가가 하는 일 '직업'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한다. 그는 정말 우리 생활 속에서 중요한 일들을 쉽게 처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대가가 약소한 만큼 그의 가치도 약소하게 평가절하됐다.  


그가 뛰어와서 처리해주지 않으면 화장실 사용을 못하기도 하고, 누수로 집 자체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보일러 배관이 터져 추위에 떨지라도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만약에 그가 멋진 양복을 입고  안경 너머로 전문용어를 사용해가며 비싼  비용을 요구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나는 10여 년을 거래해온 그에게 미안해져서 점점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사무실 등이 툭 떨어져서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남편한테 연락했더니 회의 중이라 했고, 상가의 다른 업주들에게 sos를 청했으나  천장이 높아서 사다리도 있어야 한다는 둥 딱 맞는 등을 찾기가 어렵겠다는 둥 고개를 흔들면서 팔짱만 바꿔 꼈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연락했고 그는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짬을 내 한달음에 달려와주었다.


이미  조명 가게에 들러 등도 구입해왔고 접이식 사다리를 척척 펴며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작업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요새 일하기 힘드시죠. 고생만 하시고 돈도 안되고 그런데 이런 일까지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노래를 부르며 등 교체 작업을 하던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사는 게 즐거워요~~"


그는 평생을 잡일을 하며 살다 보니 먹고 사느라 바빠서 병원 한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단다. 국가 검진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이상증세가 느껴져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위암 초기.. 다행히 조기발견이라 간단한 시술로 끝이 났다고 한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그날 이후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이해되고 모든 것이 용서되고 즐거워요. 콧노래가  저절로 나와요. 생각해보세요. 중개사님!  제가  병들어 눕지 않고 여전히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운이 좋은 거예요!"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얼마 전 상가 하수구 작업을 하다 기계에 끼었던 손가락에는 아직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시종여일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가 작업을 마쳤을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하는 사이에  준비해놓은 커피를 든 채 인사하고 가려고 해서, 나는 잠시 통화를 멈추고 소리쳤다.


"잠깐만요~ 등 값이랑 작업비 받아가셔야죠?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쫓아가서 메모지를 내밀었다.


"금액이랑 계좌 적어주고 가세요. 그냥 가시면 안 돼요"


그는 잠시 콧노래를 멈추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단지 재료값과 멀리서 달려와 작업해준 비용을 받는 것인데 뭐가 고민인 걸까. 그는 한참을 서서 나와 메모지를 번갈아보았다. 나는 그냥 갈까 봐서 손짓으로 빨리 적으라며 눈을 부라렸다. 드디어 그가 웃으며 뭔가를 메모하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가는 뒷모습에서도 익숙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  메모지를 보니,


등 값 5,000원 + 작업비 5,000원 - 커피값 10,000원= 0원


led 십자등 값이 5000원이라니... 자기 맘대로 쓰셨군. 나도 내 맘대로 입금했다.


그가 새로 달아놓은 등을 쳐다보았다. 유난히 환하고 예뻤다. 문득 led 등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 부럽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새로 얻은 삶이라서가 아니라,

이 땡 더위에 접이식 사다리까지 들고 와서 붕대 감은 손으로 등을 교체해줄 때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다.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삶보다 부러운 삶이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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