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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ul 21. 2022

토란대 껍질은 각자 알아서 하기로  


아파트 단지 상가 코너에 자리 잡은 사무실 앞은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이 탐내는 공간이다.

양지바른 턱이라 야채 말리기 딱 좋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허리도 제대로 못 편 채로 문을 열고는


"나 여기다 토란대 좀 말릴게."


라고 했다.

이분 수시로 뭘 가져다 말리는 분이다.

거절 못하는 성격이라


"그럼 제발 출입문 앞은 피해 주세요. 손님들이 불편해해요"

했더니 큰 선심 써주듯 그러마고 했다. 간혹 출입구 앞까지 가득 펼쳐놔서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생기기 때문이다.



출입구 쪽을 피해 준 것은 고마웠는데, 해가 저물어 별이 반짝 떴는데도
토란대를 거둬가지 않았다.  퇴근하려고 문을 닫을 때마다 참 신경이 쓰였다.

나는 야채를 말려본 적이 없지만, 왜 한 번 널어놓으면 밤이고 낮이고 내다보지도 않고 거둬가지도 않는지 이상했다.  온갖 먼지와 지나가는 차들의 매연과  국적 없는 비바람,  형체 없는 밤이슬을 맞고 갈곳 없이 널브러진 토란대.




그런데 귀찮은 일은 따로 있었다.

이튿날부터 지나가던  행인들이 문을 열고 잔소리들을 해댔다.

"이거 껍질을 안 까고 말리면 안 돼! 못 먹어"
"젊은 양반이 알뜰하네 바쁜데 이런 것까지 말리고?"
"이거 길바닥의 먼지 달라붙어서 어떻게 먹을 거야?"
"토란대 나물 어떻게 볶으면 맛있는지 가르쳐 줄까요?"

일일이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또 한 번 깨달았다. 한국 사람들은 남의 일에 참 관심이 많다.  누가 야채를 말리든 말든 그 야채로 집을 짓든 김치를 담그든 볶음밥을 하든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아는 것은 꼭 안다고 '척'을 해줘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고,,,,,

그래서 알게 모르게 모두의 인생이 힘들다.

계약서를 쓰고 있든 짜장면을 먹고 있든 하루에 한 두 사람은 꼭 내다보고
토란대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 지팡이를 진 꼬부랑 할머니는 화까지 냈다.

"이거 껍질을 안 까고 말리면 어떡해!  이거 못 먹어!  여편네가 일을 뭐 이딴 식으로 해!"

하... 문밖에다가  "이 토란대는 부동산과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써놓을까 말까 고민까지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토란대 껍질을 안 벗기면 질겨서 못 먹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이 아주머니는 토란 나물을 한 번도 안 먹어봤나 왜 껍질도 안 벗긴 거야. 저거 먹지도 못할 걸 괜히 나만 귀찮게 여기다 널어놓고 말이야...

정말 이상해. 먹지도 못할 걸 왜 이 고생을 하는 거지?

토란대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자, 그동안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갈 음식재료라서 부담스러웠던 토란대가 한낱 폐기물로 느껴졌다.




여러 날을 말려대니 밤 별빛과 아침이슬, 탁한 매연과 중국에서 떠돌다 온 먼지, 그리고 동네 할머니들의 잔소리와 눈초리까지 낱낱이 받아먹은 토란대는 바삭바삭 말라서 부피가 줄어들었다.

어차피 껍질 때문에 못 먹을 거라는데 확 가져다 버려버릴까? 괜히 사무실 앞만 지저분하고 말 상대하느라 귀찮기만 하네...


비가 흠뻑 오는 날에 진하게 목욕까지 한 토란대...  정말 저건 지나가는 개도 안 먹겠다. 정말 이상한 아주머니네 왜 비가 와도 내다보질 않는 걸까... 여기다 널어둔 걸 잊어버린 걸까?




토란 아주머니는 사무실 바로 옆 동에 사는 분이라 아무리 못해도 이틀에 한 번씩은 우리 사무실 앞을 지나다닐 텐데 기척도 없었다.

"아니 비 오면 얼른 거둬놔야지 이게 뭐야. 그래 안 봤는데 부동산 사장 게을러터졌네.."

아니 내가 뭔 죄냐고...  사실 처음 몇 번은 날이 궂으면 덮었다 안으로 들여놨다 했는데 어차피 껍질 때문에 못 먹는다 하니 신경이 꺼졌다.

드디어 2주가 넘었을 무렵 토란 아주머니가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인기척을 느끼고 달려 나갔다.

"사람들이 그러는데요. 이거 껍질 안 벗기고 말려서 못 먹는데요. 모르셨어요? "

했더니 괜찮다고 껍질 안 까도  부드럽게 요리하는 법이 있다고.... 일부러 안 깐 거라고... 

헐... 내친김에 한마디 더

"그런데 비도 맞고 먼지에다 매연에다 아무튼 그래서 오염이 많이 됐을 텐데 드실 수 있겠어요?"

했더니 역시 괜찮다고... 그렇게 비 맞고 햇빛 쬐고 그래야 더 맛있다고.. 그러면서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며 들고 가셨다.

역시 세상사는 데에는 정답이 없고 각자의 기준과 원칙은 참 다르다.

누가 뭘 어떻게 하든 내버려 둬야 한다. 각자 살아가는 방법은 다 다르니까.

토란대 나물도 껍질을 까든 말든 각자 알아서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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