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콩 Jul 25. 2022

없는 사람은 더 구하기 힘든  LH 전세임대의 허와 실

집중호우와 찜통더위가 교대로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혹시요..    LH 전세 할 만한 집 있나요?"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세물량이 귀한 시점에도 하루 두세 번씩 걸려오는  LH 전세임대 문의.  그러나 그 기준에 맞출 수 있는 전셋집이 없기 때문에 때론 귀찮기까지 하다.  전세 물량이 귀할 땐 더더구나 없지만, 전세 물량이 남아돌 때에도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LH 전세임대의 기준이 언제나 시세를 밑돌기 때문이다.



LH전세금 지원 한도액이 수도권 12,000만 원, 광역시 8,000만 원, 그 밖의 지역은  6,000만 원에 불과하다.(2022년 3월 기준. 공동생활 가정은 수도권ㆍ광역시 1억 2000만 원, 그 밖의 지역은 8,000만 원).

 수도권에서 12,000만 원으로 전셋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눈 씻고 봐도 눈만 아플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전화가 걸려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없다" 하고 끊기 마련이다.


LH 전세임대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주택도시 기금으로  진행하는 주거 복지 정책이다.


해당 입주자가 먼저 조건에 맞는 집을 고르면  LH가 지원 범위 안에 드는지 심사하여 승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승인이 떨어지면 LH가 주택 임대인과 전세 계약을 한 뒤 입주대상자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입주자는 지원받는 전세보증금의 2% 또는 5%만 부담하면 되고, 나머지 보증금에 대해서는 연 1~2%의 금리를 적용받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크게 절감된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무주택자로서 수급자, 보호대상 한부모가족, 주거지원 시급 가구, 장애인 등이 그 대상이다.


물론 LH의 전세임대 기준이 시장의 시세를 못 따라가는 바람에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단계적으로 지원 한도액을 상향하였다. 하지만 전세시세가 뜀박질할 때 지원액은 걸음마를 하는 수준이라서 집을 얻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전화를 끊고 난 1시간 후 사무실 문이 열리고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수줍게 들어섰다.


"아까 전화 한 사람이에요. LH."


그런 집 없다니까요! 라고 말하려던 찰나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알아요  없는 거. 그래도 왔어요. 8월 말까지 집을 비워야 하는데 몇 주째 집을 구하러 다녀도 집이 없어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와봤어요.


그녀는 의자에 잠시 앉아서 숨을 골랐다.


"반전세 (일부는 보증금으로 하고 부족한 부분은 월세로 계 하는 임대 방식)도 좋아요. 월세는 어떻게든 낼 수 있어요. 물건 나오면 꼭 연락 좀 달라고 얼굴 보고 부탁하고 싶어서 왔어요."


그녀는 이야기하다 말고 한 번씩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 모습이 신경 쓰여 내다보니 사무실 문 앞에 전동차가 있고 역시 60~70대로 보이는 남자분이 땡볕 아래 앉아 있었다.


아... 이 무더운 날... 전동차를 타고 집을 보러 다니나?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전동차를 타고 오신 건가요? 여기까지? 이 땡볕에?"


"아니요. 저는 버스를 탔고요. 남편은 전동차로 왔어요. 제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죠"


갑자기 온몸에 무더위가 엉겨 붙었다. 몇 주 동안 장애인인 남편은 전동차로, 아내는 버스로 함께(?) 다니며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결론은 어디에도 조건에 맞는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매물이 나오면 연락하마고 꼭꼭 약속하고 돌려보냈다. 그런(?) 매물은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도 그런 약속을 해주는 것이 다시 전동차를 타고 어느 곳인가를 헤맬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다.


LH 전세임대는 저소득층을 위한 좋은 취지로 출발한 복지정책이지만

부동산 시장의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여,  누군가에게는 발품을 팔다 말고 결국 집을 못 구해 포기해야 하는 희망고문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자금을 유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몇 년 전, 40대 남자가  방문했다.

방문 시부터 밝은 미소를 보여서, 어디서 봤더라  갸우뚱했다. 그는 부모님 명의로 전세입자가 있는 아파트를 매입했다. 일종의 갭 투자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후 그가 말했다.


"저 기억 못 하시나 봐요? 얼마 전에 LH 전세임대 계약했는데요. 다른 부동산이랑 공동중개로요"


아.. 그제야 기억났다. 바로 1주일 전 다른 부동산을 통해  LH 전세임대로 계약한 사람이다.  그는 본인은 LH 전세임대로 혜택을 받아 입주를 하고, 본인의 자산으로는 부모 명의를 빌려 갭 투자를 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LH 전세임대는 한마디로 "소득이 아주 낮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월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소득이 잡히지 않도록 조정한 후에 혜택을 보고, 본인의 자산은 투자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사례는 비단 LH 전세임대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LH 전세임대주택은 모집하는 주택의 종류에 따라 세부적인 자격 조건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월평균 소득 70%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형편에  처한 서민들을 위해 마련된 주거 안정 복지 정책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모든 복지정책이 마찬가지겠지만, 주거복지정책은 소득이 없어서 집 한 칸 얻기도 어려운 사람이 1순위 대상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제도의 허점으로 인하여  없는 사람들이 더한 소외감을 느끼며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이 필요할 때다.


없는 사람에게는 여름이 더 낫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라고 한다. 혹한도 견디기 힘들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푹푹 찌는 혹서도 역시 괴롭다. 그리고 그 보다 더 힘든 건, 계절 상관없이 언제나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