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평인 줄 알고 계약했는데 20평이라니...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오후, 30대 남자가 주저주저하며 들어왔다.
"중개사님! 상담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라 뱃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왠지 간절해 보이는 낯선 손님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쥐고 있던 폰 사진을 뒤척여 '이것 좀 봐주세요' 하는데, 다세대 5층 건축물대장이었다.
5월 초 어느 날, 어린 딸들과 나들이 나갔다가 빌라 분양사무소를 구경겸 들르게 되었는데, 요새 유행인 복층 빌라가 아주 넓게 좋아 보였다. 개구진 어린 세 딸도 팔랑팔랑 뛰며 좋아했다.
그렇잖아도 좁은 전셋집에서 이사할 계획이 있었던 그는 세 딸이 마음껏 뛰어놀게 하려고 4억이 넘는 높은 가격에도 덜컥 계약했다.
사실 모델하우스의 모든 집들은 참 좋아 보인다. 바닥이고 창문이고 천장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데다 인테리어 소품은 얼마나 멋드러진지.. 그러다 보니 모델하우스에 반해 충동 계약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예정됐던 날보다 준공이 계속 늦어져서 애가 탔는데 기일을 넘겨 겨우 나온 건축물대장을 확인해 보니 전용면적이 70m²가 채 안됐다. 실제 전용면적이 20평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분명히 70평대라 했고 실제로도 그 정도 넓이로 보이는데, 왜 건축물대장은 20평밖에 안 되는 거지...?'
이상해서 분양팀에 항의했더니 70평 맞다, 면적도 다 포함되어 있다고 아리송한 말만 했다. 도면도 보여주는데 도면상으로 보면 분명히 현장에서 봤던 거랑 같아 보였다.
20평대라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두배 이상 높은 거지만, 진짜 70평대가 맞다면 그 금액 정도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감수할 순 있었다.
혹시 말로만 듣던 불법 확장인가 싶어 문의했지만, 분양팀은 불법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잔금 날은 다가오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세 딸 아빠는 결국 중개사무소를 수소문하여 찾아온 것이다.
"불법건축물 맞아요!"
나는 두 번 볼 필요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놀란 남자가 물었다.
질문: 그런데 왜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이라고 안 되어있죠? 분양팀이 불법이면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이라고 표시될 텐데 없지 않냐고 큰소리치던데요?
대답: 보통 그런 경우 일단 준공 심사를 받은 후에 불법 구조변경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적발이 안되죠. 추후 민원이 제기된다든지 해야 현장 확인해서 위반건축물로 표기되지요
질문: 만약 불법 건축물로 적발되면 어떻게 되죠? 분양팀은 혹시 적발돼도 벌금 한 번 내면 끝이라든데요?
대답: 불법건축물이 원상복구 이행될 때까지 이행강제금이 계속 부과돼요. 계~속 (2019년 개정)
질문: 헉... 그런데 혹시 불법 건축물이어도 어차피 곧 양성화? 양성화된다는데요.
불법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으면 사용, 수익과 권리행사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혹시 전세임대를 할 경우 임차인이 전세대출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간혹 한시적으로 특별법을 시행해서 불법건축물을 합법화시켜주는 양성화 제도가 시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주 오지 않는 양성화 기간이 되더라도 모든 불법건축물이 양성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조례에서 허용한 건폐율과 용적률을 모두 소진한 경우에는 양성화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그 외 방법으로는 무허가 건축물 추인 제도가 있다. 건축 승인에 필요한 절차를 다시 진행하여 합법적인 건축물로 추인해주는 제도이다. 물론 이 역시도 법령 규정에 저촉되지 않을 경우에만 전환시켜주기 때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설명을 듣던 남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휴.. 그런데 저는 어떡하나요? 불법 아니라고 큰소리만 치는데요. 계약금을 그냥 날려야 하나요."
분양 건축물을 매입할 때도 꼼꼼히 따져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대개의 사람들은 유창한 분양팀의 말만 믿고 덜컥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남은 문제는 모두 개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 된다.
물론 신축 복층 빌라라고 모두 불법인 것은 아니다.
빌라도 복층이 합법인 경우가 있다. 빌라 기준층과 복층의 전용면적이 모두 등기부등본상에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합법적으로 기재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닌 경우도 있다.
복층을 다락방으로 허가받는 경우인데,이럴 경우에는 층고제한(평지붕 1.5m, 경사지붕 1.8m.)이 있고, 화장실, 배관시설, 주방 등의 설치가 제한된다.
그러니 복층 면적이 합법적으로 기재되지 않았는데 배관시설이나 화장실 등이 설치되어 있다면 불법건축물에 해당된다.
"앞으로는 분양 빌라든 뭐든 중개사무소를 통해 확인하고 계약하세요."
세 딸 아빠는 나의 설명을 들은 후 결심을 하고 분양사무소로 찾아갔다.
여전히 분양팀은 불법이 아니라고 우겼지만
"중개사무소에서 설명 다 들었다. 정말 불법이 아니면 도면을 달라, 건축과에 가서 확인해보겠다."
고 하자 바로 계약금을 환불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