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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Oct 03. 2021

새벽 4시 2분의 전화 한 통


띠리리링


깊은 잠에 빠진 새벽녘 정적을 깨는 벨 소리에 깜짝 놀라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았다. 새벽 4시 02분. 친정엄마. 엄마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뚝 끊겼다. 비몽사몽이라  의지 없이 눈을 감았다가 잠시 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뭐야 엄마가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해서 말없이 끊어?


엄마는 올해 만 84세, 고향집에 홀로  기거하고 계신다. 오빠가 30분 거리 인근 도시에 거주하는데  합가 하자고 권하여도 "아니다 동네 사람들하고 여기 사는 게 편하다"라고 고집하셨다.


그간에는 공기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니 건강하셨지만, 아무리 건강체라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어느덧 보청기 없이는 대화가 잘 안 되는 순간이 왔다. 엄마랑 통화하거나 대화할 때는 싸우듯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러다 2주 전에는 어깨가 눈에 띄게 구부정해지고  손이 가벼이 떨리는 증세가 보여병원에 모셔갔더니

"파킨슨 병이 의심되니 정밀 검진을 받아보아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종합병원에서 3~4시간을 이리저리 대기하고 다니느라 지칠대로 지친 엄마는, 또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거부 선언을 했다.


"파킨슨이가 그 치매 아니냐? 내가 치매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원. 내가 가는 귀가 먹어서 잘 안 들리긴 해도 노망은 안 났어. 그런 돌팔이 병원에는 안 가!"


파킨슨과 치매의 차이점을 설명해도 완강했지만 겨우 설득을 할 무렵에,  올케언니 손을 잡고 영양제를 맞으러 간 동네병원에서 심장이 안 좋다며 심장약을 처방해주었다.


여러 사건을 거듭하면서 기세 좋던 엄마는 기가 꺾였다.


"오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는가 보다. 이것도 안 좋고 저것도 안 좋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심장도 안 좋다고 하고 치매도 곧 온다 하고 너무 오래 살았다 너무 오래."


이것저것 먹는 약으로 배부를 지경이니 얼른 죽는 게 속 편하겠다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하셨다.


더구나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노인정에도 못 나가고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고독함이 더해지는 듯했다. 우린 모두 그걸 알지만 언제나 그렇듯 연로한 부모를 배려하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바빴다.


더구나 가장 만만한 셋째 딸인 나는 중개업을 하다 보니 하루 종일 전화상담이며 임장활동 등으로 엄마가 수시로 걸어오는 전화를 응대하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 엄마는 내가 통화가 잘 안 되는 딸이라고 생각하여 조심스럽게 전화벨을 울렸다가 빨리 안 받으면 바로 포기하고 끊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4시 2분에 걸려와 말없이 끊어진 전화라니..


정신이 번쩍 나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숨이 턱 걸렸다. 집 전화로도 했으나 역시 끊길 때까지 받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기를  손 가까운 곳에 두기 때문에 안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불안감이 몰려와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이 새벽에 전화한 적이 없잖아. 새벽 4시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리고 왜 전화를 해서 아무 말도 없이 끊은 거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웠다. 의사가 심장이 안 좋아서 혹시 수술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갑자기 경련이라도 생긴 건가?  그래서 내게 알리려고 전화를 하신 건가?


불안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세상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혹시 새벽녘에 심장마비 증세라도 나타나서 나한테 신호를 보내신 건가?  아님 노인 분 혼자 기거하시니 강도라도 침입한 건가?


그럼 지금 상태는? 혹시 쓰러져 계신 거 아냐? 혹시 심장마비?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심정지도 골든타임이 있다는데 엄마가 나에게 보낸 생존 시그널을 내가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무심히 넘겨서 엄마한테 문제가 발생하면?


다급한 마음으로 핸드폰과 집 전화로 연속하여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이상해 진짜 이상해 엄마가 집에 없을 리가 없고 있다면 안 받을 리가 없다. 분명히 무슨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아까 4시 2분에 전화 왔을 때 바로 119에 연락해 구조요청을 했어야 하는 게 아냐?


엄마 엄마...

어떡해 우리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떡해..

주변 소문과 뉴스 기사를 보면 연락이 안돼 찾아가 보니 혼자 쓰러진 채 방치돼 세상을 떠난 불쌍한 독거노인도 많다는데.. 설마 우리 엄마가.. 설마 우리 엄마도..


나는 그 새벽 몇 시간 동안 미치고  팔딱 뛸 만큼 괴로워지고 만신창이가 돼서 7시가 되자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는 이른 아침 게으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오빠. 엄마가 새벽 4시에 전화를 하셨는데 받으니까 끊어졌어. 그리곤 아무리 해도 안 받아. 집 전화도 안 받고 휴대폰도 안 받으셔"


나는 이미 반죽음 상태로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오빠는 담담하게 '알았다 가볼게'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그럼 이제 엄마를 다시는 못 보는 건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최근에  몸이 아픈 문제로 전화가 자주 걸려왔는데 내가 바쁘다고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어. '손님 계시니까 나중에 해요.'하고 끊고선 다시 하진 않았어. 엄마니깐 뭐 특별한 내용도 없을 거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라고 항상 생각했잖아.  근데 엄마에게 내일이 무슨 의미가 있어. 80대 중반 노인한테 내일이 항상 있으란 법이 없잖아.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손으로는 연신 전화벨을 눌러대면서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내가 며칠 사무실을 비우면 안 되는 일이 뭐뭐가 있지?

손이 달달 떨리고 눈앞이 혼미했다.


나는 이제 엄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다.  나는 천하에 나쁜 딸이었다. 이렇게 경황없이 가실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미처 예단하지 못했는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 어떡해 불쌍한 우리 엄마...


그때였다. 기계적으로 누르고 있던  휴대폰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음.. 여 보 세... 요'


누구지?  엄마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세요? 저는 이 핸드폰의 주인인 문 OO 씨 딸인데요?


"응? OO이냐?"


엄마였다. 엄마는 잠에 취한 목소리였지만 내 목소릴 알아듣고 반색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오늘은 출근 안 하냐? 안 바빠?"


엄마 집이야? 무슨 일 없어?


엄마는 밤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소변이 마려워 깨신 뒤에 잠이 달아나버려 새벽녘 다 될 때까지 혼자 앉아계셨다고 한다.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갑자기 아들 딸들이 생각났고 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하나씩 딸 이름을 찾아서 괜히 번호를 한번 읊어보고 넘기던 중 셋째 딸인 내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왜 막내 꺼는 없지? 하고는 이름을 입력해서 눌렀더니 전화번호가 떴다.  번호를 한번 읊어보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후 바로 누워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가 새벽 4시경. 엄마는 내 번호를 확인하느라 전화번호를 한번 누른 후 끄고 잠이 들었고, 나는 그 벨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7시까지 혼자 온갖 소설과 드라마를 쓰고 영화를 찍었다.


그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길 없는 엄마는  늘 바쁘다던 딸년이 웬일로 아침 일찍부터 전화한 게 마냥 반갑기만 한 듯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얼른 일어나서 식사하세요


하고 끊은 뒤 오빠에게 전화해서 엄마랑 통화됐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오빠는

"그래  나도 이상타 했어. 엄마가 무슨 일이 생기면 가까운데 있는 장남한테 하겠지 멀리 있는 막내한테 하겠냐. 그나저나 시간 나면 한번 내려오기나 해라"


그래 시간 내서 한번 내려갈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새벽 4시 2분에 걸려온 전화로 3시간 반 동안 비극의 주인공 코스프레를 하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해졌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엄마에게 내일은 의미가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듯  뼈저린 후회로 눈물 콧물 쏟던 나는,  다시 기약 없는 내일로 떠넘기며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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