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지는 것과 쉽게 사라지는 것.
시골에서 조그맣게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도대체 어찌하여 내가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내가 쓰는 나의 연대기랄까?
이 촌구석은 나의 고향이자 부모님이 살고 계신 터전이다.
이웃집이 두 세 곳 밖에 없고 온통 비닐하우스와 논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 인지라
나는 줄곧 혼자 노는 걸 잘했었다.
책을 읽기도 하고 토끼. 고양이. 개를 키우며 또래 친구들 보다는 키우는 동물들. 그리고 하나뿐인 누나와 어릴 적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나는 논산 출신이지만 논산을 잘 모른다.
그나마 공부는 어지간히 해서 기숙사가 있는 사립고와 서울로 대학을 갔던지라 더더욱 논산을 모른다.
어릴 적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살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부지런히 일하시는 부모님을 옆에서 보며 살았던 덕택으로 누나와 나 둘 다 서울대를 나온
시골의 흔치 않은 집안이다.
누나는 지금 연세대의 교수로 있고 학계에서 제법 잘 나가는 듯하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
누가 읽을지 모를 이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그래도 잘하고 있어'라는 자기 위안과 자기 최면을 위한 글인 것 같다.
대학시절 나는 취업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으리라..
그래서인지 토익이니 토플이니 하는 시험도 봐본 적이 없다. 딱 한번 카투사 지원을 위해 대학에서 한 번은 봐야 하는 텝스라는 영어시험 빼곤..
군대를 전역하고는 대학생 창업을 하겠다는 포부로
창업동아리를 재밌게 했다.
당시에 인터넷으로 식품을 판다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그 시절 쿠팡이나 티몬은 말 그대로 할인쿠폰을 팔던 때였다.
나는 식품공학과 후배 한 명과 친구 한 명을 모아 식품사업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날뛰고 다녔고 학과장님 도움으로 건물지하 구석의 실험장비 공간을 빌려서 창업을 하겠다고 까불고 다녔다.
그때는 컴공정도 되어야 대학생창업을 하던 시기였기에 오프라인에 가까운 사업을 하겠다는 우리들은 제법 특이한 아이들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돈이 없었고 머 대단한 사업아이템도 없었기에 이리저리 깨지고 실망하며 일 년을 보내다
어쩌다 보니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다행히도 함께하던 후배는 지금은 어엿한 온라인 식품회사의 대표이다.
회사에서 나는 제법 하드워커였다. 머릿속은 온통 회사일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롭게 할 만한 프로젝트 구상하는 걸 좋아했다. 꼬박 9년을 다녔는데 한 번도 이직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직을 할빠엔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는 이상한 오만함?
그래서인지 나는 회사에서 제법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고 입사 8년 차가 되던 해에는 매출 육천억쯤 하는 법인의 CFO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다.
그 해는 2020년 코로나...
외식업을 하는 당시 회사는 거의 부도직전이었다. 부도 직전 회사의 CFO...
나는 그 당시 아침 한번 저녁 한번 통장의 잔고를 보고 받고 그 달 그 달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는 돈을 마련하느라 별의별 요상한 짓을 다 했었다..
그리고 남겨야 할 조직과 버릴 조직을 냉혈한처럼 분류했고.. 엑셀에 빼곡히 없앨 대상과 시점별 계획을 적어놓고 말그대로 칼춤을 추었다..
일도 일이지만 마음은 더 피폐해졌었다.. 정말 애정하고 친했던 공장장님과 브랜드장님들.. 회사의 오랜 선배들이 고작 그 엑셀 한칸으로 계획하에 떠났다..
조직의 생존을 위해선 어쩔수 없었으리라.. 어찌되었든 그 칼춤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달에 백억을 적자로 날리던것이 차츰 오억. 일억 적자 수준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성과라고 포장되어질수도 있는 그 칼춤들은 내 개인에게는 하등의 쓸모없는 것이었다.
에잇. 나가야겠다.
그렇게 나갈지말지 오랜고민도 없이 나는 대뜸 퇴사통보를 했다. 이만하면 나도 할만큼은 했자나? 그래도 회사와의 구년간의 의리는 지켰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미안하진 않았다.,.
다행히 그 회사는 코로나를 넘기고 살아남아서 요새 돈도 아주 잘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회사에서 추었던 칼춤때문이었을까?
나는 시간이 지나도 무언가 남겨지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예술가나 소설가처럼 미술이나 글. 음악같은 재주가 없으니 자연스레 아버지가 하고 계신 양조장이 생각났다.
술을 만드는거는 이상하게도 예술작품같은 면이 있다.
더군다나 세월이 지나 오래된 술은 더욱 귀해지지 않던가?
그렇게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으로
어쩌다보니 아버지의 작은 와이너리를 맡게 되었다.
내가 맡은 와이너리는 내려올 당시
연매출이 천만원이 되질 않았다. 월이 아니고 1년.
거기에 재무제표상에는 완전자본잠식.
사실 나는 아버지와 그렇게 사이좋은 아들은 아닌지라 서로 대화조차 잘 없는 편이다.
그래서 이곳에 내려올때까지도 나는 와이너리 매출이 얼마인지 모르고있었다.
맡은지 일년정도가 되었을 즘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너무 미안해하셨다. 이런걸 물려줘서 미안하다고... 그런 모습은 생전 처음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아버지를 알아가고 있는듯 하다.
여전히 지금도
어느 아들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대성공을 이루는 유퀴즈에 나올법한 이야기에는. 그 축에도 못끼는ㅎ
매우 작은 와이너리 신세이다.
그치만 지금도 남겨지는 것에 대한 개똥철학으로 사부작사부작 와이너리를 꾸려나가고 있다.
다행히도
혹시나 이 글이 발행되어 끝까지 읽은 요상한? 분들이 있다면 연락하시라. 기회가 되는데로 와인한잔 하고 싶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