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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Apr 12. 2021

맘은 있어도 맘충은 없다.

혐오에 고통받는 엄마들에게

학부시절 스페인어를 배웠다. 물론 지금은 다 까먹어서 거의 또 백지상태가 되었다. 나는 2023년 4월이 되면 스페인에 가서 와인과 음식을 파는 타파스바를 운영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물론 코로나 때문에 계획이 좀 많이 밀리게 될 것 같지만, 아무튼 언젠가 스페인에 가서 타파스바를 운영하다가 돌아올 거다.) 스페인어는 못하지만, 아무튼 가서 술 팔면서 술 먹다보면 잘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일단 술을 먹으면 말이 술술 나오고 똑같은 말만 계속하니까 반복학습도 문제 없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늘 재미있고 흥미롭다. 언어에는 많은 힘이 있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느끼고 배울 수 있다.


많은 외국어 수업이 그러하듯 첫수업은 자기 소개로 시작했다. 스페인어 이름을 하나씩 지으라고 해서, 루씨아(Lucia인데 i위에 점을 위로 휙 긋는다. ㄹ루씨이~아 같은 느낌으로 읽으면 된다.)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지어주었다. 


올라. 미 놈브레 에즈 루씨아. 뗑고 베인티도스 아뇨스. (안녕하세요, 저는 루씨아이고 22살입니다.)


이름과 나이까지는 너무 쉬웠다. 문제는 나를 설명하는 형용사였다.

교수님은 키가 크다, 아름답다, 똑똑하다, 재미있다, 착하다, 돈이 많다, 깨끗하다, 새롭다, 등등 온갖 단어들을 알려주었는데, 그런 단어들로 나를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재미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았고, 돈도 별로 없었고, 아무튼 그냥 별로인 사람이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긍정적인 단어로 나를 묘사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일어서서 나를 소개하는 발표를 해야했기에 생각나는 단어 중에 그나마 나랑 어울리는 것 같은 단어를 열심히 쥐어짜서 내 소개를 했다.


요 소이 보니따, 인떼리헨테, 이 디베르띠다. (저는 예쁘고, 똑똑하고, 재밌습니다.)


말하고 보니 그럴듯했다. 나는 예쁘고 똑똑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부정적인 언어들을 걷어냈더니, 그제서야 나의 본질이 보였다. 나는 정말로 예쁘고 똑똑하고 재밌는 사람인데, 왜 스스로를 보잘 것 없이 삶에 치여서 살아가는 노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언어가 결국 나를 좀먹고 있었다. 






맘카페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보거나 이혼 상담을 하다보면 정말 많은 엄마들이 자녀양육에 고통받고 있음을 느낀다. 다들 자녀를 너무 사랑하는데도 그렇다. 아니, 너무 사랑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엄마들은 퇴근하고 힘들어서 아이한테 유튜브를 틀어줬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미안해한다. 식당에 가서 아이들이 떠들어서 너무 혼냈다고 죄책감을 가진 엄마들도 많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같이 탄 엄마는 "쉬이잇! 엘리베이터에서는 조용히 해야지!"라고 한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시끄럽게 굴면 '맘충' 소리를 들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매일 부족함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하면서 뭐 하나라도 실수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뭐 하나라도 실수하는 순간 그 동안 노력한 건 온데간데 없고 '맘충'이 되어버리니까. 늘 죄책감을 느끼고, 늘 괴로워한다. 


우리 사회에는 혐오표현이 넘쳐 흐른다. '맘충'처럼 일상에서 너도나도 쓰는 표현은 물론이고 '앰뒤(애미 뒤진)XX'라는 쌍욕도 있다. 아동혐오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이 조금만 시끄러워도 참지 못하고 '애새끼들'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쓴다. 카페나 식당에서 '애새끼들 떠드는 것도 안 말리는 맘충'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모든 사람이 엄마에게서 태어나서 유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뛰고 떠드는 소리는 시끄럽다. 하지만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 취객들도 정말 시끄럽지만 우리는 취객이라 그러려니 하고, 그들을 '취충'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는 원래 그러려니 하지 못하고 애새끼니 맘충이니 욕하면서, 취객들에겐 '손님 객'자까지 붙여주며 더 관대한지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가 모든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더 관대해지면 좋겠다. 맘충 같은 단어는 없어져야 한다. 이 세상에 맘은 있지만 맘충은 없다. 


<82년생 김지영>이 해외에 번역되어 나갈때 해외에는 '맘충'이라는 단어로 쓰일 단어가 없었다. 영국에서는 Mum-Roach(바퀴벌레의 Cockroach)라고 의역했고,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는 각각 마마충(ママ虫), 마충(妈虫)이라고 직역했다. 세계로 수출된 K-혐오표현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를 좀 부끄러워 했으면 좋겠다. 




언어는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너도 나도 쓰는 사회에서는 엄마들이 스스로에게 결코 관대해질 수 없다. 안 그래도 힘든 육아가 고통이 된다. 내가 맘충이 아닐까, 내가 자녀에게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가는 것도 꺼리게 된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마 지금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은 아이들을 혐오하고, 엄마들을 혐오할 것이다. 인식의 변화는 지각변동만큼 느리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라도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당신이 들은 혐오표현들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세상 모든 엄마들이 외국어를 하나씩 배우면 좋겠다. 혹시나 맘충 같은 혐오표현이 당신을 좀먹는 것 같다면 그 외국어로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뚜 에레스 보니따, 인떼리헨떼, 이 디베르띠다. (당신은 예쁘고, 똑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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